[갤러리스트 박정수의 미술이야기] 최초는 최고가 아니다
[갤러리스트 박정수의 미술이야기] 최초는 최고가 아니다
  • 박정수 / 미술평론가 (신의손 갤러리 관장)
  • 승인 2011.06.10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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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작품 내꺼 베낀거야!”

 

“내 작업실에 놀러 와서 이것저것 묻더니 내꺼랑 똑같이 그리고...”


미술계에 있다 보면 이런 말을 심심찮게 듣는다. 없던 물건을 만들거나, 없던 사건을 그리면 좋을 일이지만 창작이라는 것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누구껄 베꼈네, 똑같네 해 봤자 아무 소용없다. 이런 말 하는 작가님치고 잘나가는 분 별로 없다. 자기보다 못난 사람이 비슷한 그림을 그리면 그냥두지만 경쟁이 되거나 비슷한 명성이 형성되어야만 말이 많아진다. 같은 모델을 두고 그려도 베꼈다하지 않고, 장미꽃이나 사과를 그려도 그러하지 않는다. 독특한 형식과 작화(作畵)방법에 목숨 걸 듯 하는 것을 보면 창작이라는 이름이 무섭긴 무서운가 보다.   

인사동 중심거리에서 종로구청 방향으로 조금 떨어진 ‘화신먹러리 촌’이라는 포장마차 군집시장이 있다. 예년에 인사동 이곳저곳 흩어져 있던 포장마차를 한자리에 모았는데 밤이면 약간의 명소로 자리 잡았다. 포장마차가 있던 예년 그 자리는 새로운 포장마차가 진을 쳤다. 이곳에 가서 두세잔의 술잔이 오가면 어김없이 계란후라이 서비스가 나온다. 앉은 숫자만큼 후라이를 내어오는데 올 초까지만 하더라도 없던 서비스 품목이다. 이 서비스를 최초로 만든 사람은 쥔장이지만 아닐수도 있다.  

이곳에는 10여년 째 단골로 애용(?)하는 외상도 가능한 ‘영희네’라는 가게가 있다. 출출하면 라면 먹고 막걸리 마신다. 지난겨울 라면 먹으면서 라면에 계란 넣지 말고 후라이로 달라 부탁한적 있다. 그러다가 출출하면 아주 가끔씩 서비스로 부탁했다. ‘이래서 단골이야. 나만할 수 있어’라는 으쓱한 기분에 말이다. 동석한 이들에게는 단골 좋다는 기분을 팍팍 쓰면서 말이다. 그러던 것이 한집 두 집 퍼지더니 지금은 거의 대다수 가게의 서비스 품목으로 자리 잡았다. 눈도장 많이 찍은 사람들만의 특혜다. 누군가에 의해 최초의 서비스 품목이 만들어 졌지만 최초에 대한 궁금증은 아무도 없다. 단골과 라면과 인심과 즐거움이 버무려진 서비스일 뿐이다. ‘내가 시작 했어’라는 말에는 누구도 관심 두지 않는다.

미술품의 형식은 계란후라이가 아니라 후라이 ‘서비스’와 비슷하다. 계란후라이 자체가 서비스는 아니다. 서비스 정신에는 계란후라이가 아니라 쥔장의 마음이 담겨져 있다. 형식에 정신이 담겨져 예술이 되는 것이지 형식만을 가지고서는 예술이라 하지 않는다. 누군가 없던 색을 만들어 그림을 그렸는데, 누군가 그 색을 따라 칠한다고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떤 것이든 최초가 있다. 그 최초는 최초일 뿐이지 최고가 되는 것은 아니다.

최초는 기록과 경쟁의 것이지 창작의 것은 아니다. 미술에 있어서 최초는 중요하지 않다. 최초로 인물화를 그린사람은? 최초로 인간의 감정을 표현한 사람은? 최초, 최초... 최고로 잘 표현한 화가나, 어떤 최초의 것을 최고로 그린 이만을 기억할 뿐이다. 최고의 인물화를 남기거나 최고의 종교화를 남기거나, 전쟁의 참상을 최고로 잘 표현한 사람은 기억한다. 

‘내꺼 베꼈어’라고 하는 사람은 분명 유명한 사람이 아니다. 본인이 최고라면 자신의 작품을 베껴주길 바라기 때문이다. 비슷한 형식은 오늘도 내일도 전국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로 창작된다. 미술작품에 있어서 최초는 내용과 관련된 사유적 측면이 밑단에 깔린 창의성이지 새로운 색이나, 새로운 형태나, 기기묘묘한 스타일의 우선이 아니다. 알고 지냈으면 좋겠다.

이 칼럼 들고 ‘영희네’를 찾자. 계란후라이 준다고 약속했다. 최초에 대한 특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