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칼럼]편견과 오해
[미술칼럼]편견과 오해
  • 박정수 / 미술평론가
  • 승인 2011.09.01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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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쟁이는 가난하다>는 말을 하지만, 이는 가난한 화가가 무척 많다는 의미일 뿐이다. 작품이 거래되는 시기에 이르는 기간에 다른 경제활동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르기 까지 너무 오래 걸린다는 사실이다. 40중반의 데미안허스트라는 작가는 작품 한 점에 1천억이 넘어가고, 우리나라 작가들 중에서도 몇 천만 원이 넘는 화가들이 많다. 중국의 쩡판츠라는 화가는 한 점에 1백억이 넘어가기도 한다.

 이들의 작품은 <비싸기 때문에 유명한>것이 아니라 유명하기 때문에 비싸게 거래된다. 시간과 열정과 사회적 여건이 잘 맞아 떨어져야 한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흔히 말하는 <화가는 죽어야 값이 오른다>는 속설은 이치에 맞지 않다. 살아서 유명하지 않으면 죽으면 아무것도 없다.

 정보 확산이 느렸던 과거에는 유명한 화가를 보통사람이 알기까지 오래 걸렸을 뿐이다. 死後에 가격상승이 작용하는 경우는 이미 비싼 작품으로서 더 이상의 미술품이 생산되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生前의 작품가에 비해 턱없이 낮아지는 경우도 있다. 생존당시 명성과 사회적 위치가 작품가에 포함되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정승집 개가 죽으면 사람이 몰려도 정승이 죽으면 개 한 마리 얼씬 않는다는 속담과도 비슷한 경우이다.

 피카소의 그림을 보고 <발가락으로 그려도 그보단 낫겠다>는 말을 한다. 추상화가 아님에도 그러한 말을 하는 것은 미술작품에 대한 접근을 눈으로 시작하기 때문이다. 붓질 몇 번 한 것만 같은 추상화는 작품에 대한 접근을 눈이 아니라 마음과 가슴으로 접근하여야 한다. 코끼리가 그린 그림이 몇 천만 원에 팔렸다는 뉴스가 간혹 들리지만 인간의 정신적 사유가 담긴 추상화를 코끼리와 어찌 비교하겠는가.

 

 어떤 젊은 화가는 <팔리는 그림은 절대 안 그리지 않는다>는 결심을 하기도 한다. 만일 그 화가가 팔리는 그림을 그릴 줄 아는데 그리지 않는 것이라면 온갖 감언이설로 그를 설득하고 싶다.

‘제발 팔리는 그림 좀 그려주세요. 화가님의 인생 핍니다.’라고 말이다. 이와 비슷한 경우로 미술시장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지 않는 이들은 미술품 거래가 일어나는 곳에 대해 <상업 화랑과 기획화랑>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그러나 화랑의 개업 자체가 영업이익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모든 화랑은 상업 화랑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비싼 작품을 거래하는 화랑과 저렴한 작품을 매매하는 화랑이 있을 뿐이다.

 이들은 간혹, 돈 많은 화랑에서 광고하고 대학교수급 평론가가 이론을 구축하면 작품성과 예술성과 대중성을 확보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미술시장에 직접 들어오면 몇몇 <돈 있는 화랑과 명성있는 평론가에 의해>화가가 뜨고 지는 구조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또한 우리나라 미술시장은 <화가가 그림만 잘 그리면 된다>는 말도 잘 맞지 않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마케팅의 중요성은 개인전의 횟수가 증가할수록 이해도가 높아진다. 미술에도 마케팅과 휴먼네트워크가 중요한 수단일 수밖에 없다. 

 화가는 자신의 작품을 거래하면서 생존한다. 그림을 판다는 사실에 머쓱해 할 필요도 없다.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이 겸하는 직업이기도하다. 그런데 주변에서는 간혹 <버린 그림 하나만 줘!>라는 말을 쉽게 한다. 버린 그림을 줄 턱도 없겠지만 ‘아는 화가’의 작품을 갖고 싶다면 차라리 음주거래가 편리하다. 그의 그림은 ‘단 한 개’만 있기 때문이며, 화가의 자존심에 의해 버린 작품은 절대로 남의 손에 넘기지 않는다. 술값과 교환이 가능하다. 친하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