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칼럼] 박정수의 뒷방 이야기-남는게 없는 장사
[미술칼럼] 박정수의 뒷방 이야기-남는게 없는 장사
  • 박정수 미술평론가
  • 승인 2011.10.07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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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대전에 대한 화랑과 화가, 남는 게 없다.

▲박정수 정수화랑 관장

없어 못 파는 작품을 제작하는 화가도 있겠지만, 소문만 무성하고 판매가 거의 없는 화가도 많다. 그림 무척 잘 파는 화랑도 있겠지만, 소문만 무성하고 판매가 거의 없는 화랑도 많다. 화랑은 화가의 지인판매를 믿고, 화가는 화랑 손님의 숫자를 믿고 전시를 하면 반드시 서로 손해 본다.

 “초대전 받아서 전시했지만 도록 내가 만들었지, 화랑에서 그림 팔아주길 했나. 한 점도 못 팔았지. 그래도 좀 미안해서 그림 50호 한 점주고 왔어.”

 작가의 역량과 활동성을 보아하니 초대전 해주면 작품 두어 점을 팔듯하고, 화가 역시 작품 몇 점은 반드시 팔릴 것이라 확신하여 전시를 개최한다. 팜플렛이야 화가가 만들었지만 손님 초대하고 리셉션이나 기타 홍보비 등등이 만만치 않다. 그런데 작품이 팔리지 않는다. 화가의 입장에서는 화랑이 팔아주지 않았다 생각한다. 화랑에서는 화가의 지인이 어느 정도는 작품을 소화하리라 믿었다. 결과는 아무것도 없다. 서로 겸연쩍다. 그래도 초대전이라는 입장과 전시장 임대료를 생각해서 화가는 그림 한 점을 인심 쓴다. 여기서부터 문제가 발생한다. 화가는 자신의 작품 가격을 외형으로 계산하고, 화랑은 화랑가로 생각한다. 그렇다고 그 작품이 판매가 된다면 뭐 할 말 없겠지만, 이건 도무지 팔리지도 않는다. 이럴 때 화랑에서는 두고 간 작품이 아주 부담스럽다. 싸게 팔수도 없다. 금 새 소문난다. 악성재고다. 도대체가 정답이 없다.

 판매가 수월한 작품을 그리는 화가는 목에 힘이 들어간다. 수수료도 절대 50%하지 않는다. 손님이 많은 화랑은 화가에게 문턱이 너무 높다. 초대전 아무나 하지 않는다. 누구의 편을 들 수도 없다. 개인손님이 많은 화가는 초대전 하느니 차라리 전시장 임대하고 만다. 접점이 없다. 문제는 화가나 화랑의 적당한 명성과 적당한 작품판매, 적당한 시장성을 지닌 이들이 문제다. 외관상 대관보다는 초대전이 좋다. 자신의 명성정도면 화랑에서 몇 점정도 팔리리라 믿는다. 그것도 아니면 지인이 어느 정도 소화해 주리라 믿는다. 어림도 없다! 화랑에서는 화가를 믿고 화가는 자신의 적당한 명성과 지인을 믿는다. 누구도 절박하지 않다. 주체적으로 노력하지 않는다. 반드시 남는 게 없는 장사(?)다. 예술성이나 작품성보다 절박성이 부족해서 만족스러운 결과를 갖지 못한다. 어쨌거나 마케팅은 언제나 절박한 심정이어야 하나 보다.
     
 요즘 40대 전후한 화가들의 작품이 수면으로 떠오르고 있다. 잘 팔려서가 아니라 판매가 멈춰졌음에 대한 수면이다. 그림 그릴 시간이 40년 이상 남은 젊은 화가의 작품 가격이 몇천 만원하면 50살 되는 십년 후에는 이 삼천은 올라야 한다는 생각이 팽배하다. 쉬운 일은 아닌 듯싶다. 말들이 많다. 작가는 화랑에서 장난쳐서 가격을 그렇게 올린다음 치고 빠졌다고 하고, ‘화랑은 화가들이 여기에 동조하지 않으면 되지 않느냐’고 비난의 화살을 쏜다. 화랑의 과도한 마케팅에 가격은 많이 올랐고 앞으로 그림 그릴 시간은 가격보다 더 길게 남았다. 도대체가 답이 없다. 컬렉터도 아무리 그림이 좋아 샀지만 본전 생각이 없지는 않겠지만 화가나 화랑도 언제나 본전생각 하며 산다.
결론은 늘 비슷하다. 화가와 화랑이 함께 이익 보는 그날까지 <더 열심히 해야지?> 작업 활동? 지인확보? 마케팅? 하여간 어려운 것만은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