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칼럼] 박정수의 뒷방 이야기 - 2012, 문화 권력을 쟁취하라
[미술칼럼] 박정수의 뒷방 이야기 - 2012, 문화 권력을 쟁취하라
  • 박정수 미술평론가
  • 승인 2012.01.05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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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수 정수화랑 관장

세기의 목적이다. 권력이 있는 한 세상은 자신의 것이다. 예술을 중개하던 이들의 힘이 약화되었고, 기획전 초대전 해주마! 했던 갤러리스트의 말빨(?)도 먹히지 않는다. 공무원이나 줄타기 하던 문화예술관련(국립이나 시립 기관은 잘 모름을 밝힌다) 요직은 시민의 감시가 높아져 예전 같지 않다. 지방자치단체장의 비용에 맞먹는 선거자금이 들어가던 미술단체장도 예전의 권력과 영화와는 다소 멀어져 있다. 하지만, 2012년의 문화 권력은 어딘가에 여전히 존재한다.   

아주 먼 옛날에는 이런 일들이 있었다. 전시장에 들어선 어느 두 분이 소근 거린다. ‘이것도 그림이야? 잘 모르겠어…’ 하는 순간 재떨이가 날아왔었다. “그림 볼 줄도 모르는 것들이 어디와서!!”라고 막말한다. 아주 먼 옛날에는 화가가 권력자인 시대도 있었다. 그 작가의 작품을 사고 싶으면 어느 화랑으로 가야 한다고 화랑도 그 작가에 묻어갔었다.

이제는 문화 권력의 소재가 불분명하다. 그러나 보니 아무나 <문화권력>을 갖고 싶어 한다. 억눌렸던 사람은 울분을 토하고 싶고, 맘에 들지 않는 작품을 보고 "맘에 들지 않는군"이라고 말하고 싶고, 맘에 차지 않는 전시장에 가서는 “전시장이 왜이래!”라고 속삭이고 싶다. 그런데 현실을 영 딴판이다. 무조건 칭찬만 해야 한다. 이러한 문화예술계의 바른말은 ‘벌거벗은 임금님’의 전형이고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와 같은 우화다.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다. 누구도 그 예술작품에 대해 바른말을 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문화예술계의 권력은 돈에 있다. 비싸면 좋은 것, 좋아도 값싸면 좀 덜 좋은 것으로 치부되고 있다. 옛날 수십억에 거래되던 골동도자기에 ‘위작일 수...’라는 말을 했다가 칼침 맞았다는 이야기가 회자되고 있지 않은가. 누군가 수억에 작품을 구입하기 직전 그 작품에 대해 의견을 물어오면 개인의 의견을 전달하지 못한다. 그냥 좋다고 해야 한다.

돈은 누구나 좋아한다. 초등학생만 되어도 어른이 주는 돈 액수를 통해 친척집을 가늠한다. 5만 원 권이 가득한 가방을 들고 미술품을 쑴풍쑴풍 사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어디를 가더라도 최고의 대접을 받는다. 작품을 보고 고개만 갸웃해도 다음날 그림이 바뀐다. 가난한 화가는 부자 화랑에 맹종한다. 부자 화랑의 눈에 들어야 전시도 하고, 그림이 팔린다. 부자 화랑주 눈에 들기 위해 열심히 들락거린다. 아는 척이야 하지만은 ‘언제 전시한번 하시죠.’라는 말을 주야장천 기다린다. 공공미술관 학예사들과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갤러리 큐레이터도 권력자다. 그곳을 떠나면 힘도 못쓰면서 있을 때는 목에 힘준다. 미술관 전시문의 하면 문적박대 당하기 일쑤다. 우리나라에 비평이 없다 하는 것은 비평가가 없는 것이 아니라 비평가에게 권력이 없기 때문이다.

권력을 인정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바쁘다. 화랑주에게 눈도장 찍기, 기업에서 운영하는 갤러리 큐레이터 밥 사주기, 규모 있는 전시장 주인에게 술 사주기, 이것도 못하는 사람들은 매주 수요일 전시 오픈 때 전시작가와 아는 척이라도 해야 한다.

2012년 올 한해 ‘돈’에서 문화 권력이 조금만 멀어져 있으면 좋겠다. 권력은 백성에게서 나온다는 말이 있듯이 권력이 문화예술생산자에 있었으면 좋겠다. 문화예술 생산자는 예술가 자신이며, 이를 감사하는 많은 사람이며, 이를 마케팅하는 이들이다. 이들이 잘 먹고 잘사는 올 한해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