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수의 뒷방이야기] 예술에 담긴 정보는 소풍날 보물찾기
[박정수의 뒷방이야기] 예술에 담긴 정보는 소풍날 보물찾기
  • 박정수 미술평론가(정수화랑 대표)
  • 승인 2012.07.02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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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수 미술평론가(정수화랑 대표)
매일 매일 우리는 반복된 일상을 살아간다. 눈뜨고 세수하고 매일 연속된 일상에 지쳐 한잔 술로 마음을 다스린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기대하고, 오늘보다 훨씬 나은 내일을 희망한다. 벗어날 수없는 사회적 인간이다.

소풍날 선생님이 숨겨놓은 보물을 찾아본 일 있을 것이다. 지금은 야외나 실내 놀이공원이 생겼기 때문에 소풍에 대한 희망이 별로 없지만, 한 두시간 걸어서 도착 가능한 모래톱이나 산기슭의 소풍은 한학기의 희망이었다. 사이다와 사탕, 칼질 안한 김밥이 전부였어도 가난한 초등학생 주머니도 이날만은 부자였다. 그러는 한편으로 소풍날에는 꼭 비가 내린다. 소풍가방을 싸 놓고 하염없이 문밖을 바라보기도 했다.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나 학교 마당에 자라는 커다란 느티나무에서 승천하는 이무기를 낫으로 잡은 소사아저씨도 참 많이 원망했다. 그런데 왜! 그런데 왜! 소풍날만 되면 비가 올까. 비가 내리기 때문에 소풍에 대한 기억이 생생하다. 소풍날 아무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냥 그러한 야외 놀이정도에 그칠 뿐이다.

작품전을 하는 그날은 작가에게는 소풍날 비오는 것과 같다. 그림이 잘 팔리지 않기 때문에 어떠한 이유나 천재지변을 갖다 붙인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에게는 매일 있는 특별하지 않는 일상에 불과하다. 그러기 때문에 보통사람에게 어떠한 대가를 받아야 한다. 그들의 소풍날이 되어야 한다. 전시장에서 발견한 작품의 정보는 누군가에게 특별한 날에 특별한 선물을 받은 보물이어야 한다. 소풍날의 보물찾기는 연필 한 자루, 한권의 노트지만 노동력과 기대심과 열심에 의해 취득된 소중한 보물이다. 운동회 날 100미터 달리기에서 3등 안에 들어서 받은 연필과 비교할 수 없다. 달리기는 운동 잘하는 1등과 2등은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 달리면 3등은 가능한 것과는 개념이 다르다.

미술계에는 일상적으로 활용하는 전시장이 있다. 그 일상의 공간은 얼마 전 까지만 하더라도 그룹 기획 초대전이 많았다. 누군가 주도적으로 회비를 거두어 약간의 대가를 지불하고 전시를 하였다. 하지만 비가내리지 않는 소풍이 되었다.

돈이 드는 문화 활동 중에 영화를 생각해 보자. 영화는 누구나 쉽게 간다. 신문이나 텔레비전 광고에 현혹되어 영화를 본 일이 있을 것이다. 재미가 없었다 할지라도 누구를 원망하지 않는다. ‘광고에 속았어’ 정도로 끝을 맺지 광고회사를 고발하거나 신문사에 연락하는 일은 없다. 스스로 돈을 지불하면서 정보를 취득했음에도 자신의 결정이라 생각한다. 전시는 영화가 아니다. 예술작품으로서 전시는 불특정 다수와 밀고 당기는 ‘밀당’ 게임도 아니다. 영화는 스토리 전개상 등장하는 다양한 장면을 축출하여 소개할 수 있다. 연령별, 조건별, 계층별로 입맛에 맞는 장면을 보유하고 있다.

보통사람들이 선호하는 검색순위나 텔레비전 뉴스로 등장하기 전까지 어떤 화가의 이름을 인터넷으로 검색하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특별한 마케팅이 필요하다. 그것은 특별한 그림을 그리는 방법이다. 잘 그리는 방법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어떤 무늬를 재현하거나, 색을 재현하거나 자연을 따라 그리거나 하는 기본적 기술 이외에 아주 어려운 현대 사회의 개념이 포함되어야 한다. 여기에 덧붙여 예술의 개념을 지속적으로 공개하여야 한다. 푸념하듯이 줄기차게 사회를 향해 삿대질 하여야 한다. 한번 각인된 이미지는 아주 오래가기 때문에 힘들어도 가야한다. 다만, 시간이 걸릴 뿐이다.

예술가의 작품에는 보물이 있다. 이번 주말에는 가까운 곳에 보물을 찾으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