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수의 뒷방이야기] 미술품 매매, 화맹(畵盲)퇴치가 먼저다.
[박정수의 뒷방이야기] 미술품 매매, 화맹(畵盲)퇴치가 먼저다.
  • 박정수 미술평론가(정수화랑 대표)
  • 승인 2012.09.28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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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평론가 박정수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미술시장인 KIAF(Korea International Art Fair 한국국제아트페어)가 끝이 났다. 모두가 많이 팔리진 않은 것 같다. 그래서 세상은 공평하기도 하고 불공평 하기도하다.

요즘 은행 금리가 4~5%정도니까 키아프는 그럭저럭 승률이 높은 편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전체를 100으로 봤을 때 대충 어림잡아 30여개 이상 갤러리에서는 미술품 매매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거래를 전혀 하지 못한 60여개의 갤러리에서 발생한다. 외국화랑 들러리라는 둥, 작가들 작품이 비싸다는 둥, 경기가 나쁘거나 미술애호인들이 안 나왔거나 주최 측에서 광고를 너무 하지 않았다는 등의 이야기를 한다.    

미술품 매매는 1년에 한번씩만 만나는 견우와 직녀가 아니다. 미술품 매매는 사회적 약속이다. 사회에서 구매하고 사회에서 판매된다. 따라서 미술가는 국가의 자산이다. 미술품이 판매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죽지 않을 정도로 먹고 살게는 해 준다. 미술품을 생산하는 것도 사회를 위한 것이며, 미술품을 구매하는 것 또한 사회를 유익하게 하는 일이다. 미술품 구입은 사회의 정보를 사는 것이며, 문화를 살찌우는 행위다.

세계 경제규모 순위가 15위 내외이기 때문에 시장경제구조나 여건상 미술품 판매는 지금보다 두서너 배는 많아야 한다. 그렇지 못하는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우리나라는 이념과 경제라는 이름하에 문맹퇴치에만 힘을 썼지 문화 창조나 화맹(畵盲)이나 예맹(藝盲)퇴치에는 아무런 힘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먹고살기가 힘에 겨워 ‘이름 석자면 되었지 무슨 공부냐’는 고달픈 삶을 살아왔다. 그건 그때의 일이다. 먹고 살만 한데도 화맹(畵盲)이나 예맹(藝盲)퇴치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이거 문제 많다.  

미술을 그리면 화가고, 미술을 만들면 조각가다. 미술을 볼 줄 아는 이가 많아야 좋은 미술품이 생산된다. 우리나라는 너무 오랫동안 미술 볼 줄 모르게 하였고, 미술을 다루는 것은 방치하였다. 일제 강점기에는 민족성을 말살 당하고, 통일 이후엔 남북한의 이념, 전쟁이후에는 정치적 공세를 통해 볼 줄 모르게 만들었다.
사회가 발전 하려면 다양성과 표현의 자유가 있는 미술이 양산되어야 한다. 읽을 그림이 없었기 때문에 읽을 필요가 없다는 말은 듣지 말아야 한다. 미술품 매매는 미술품을 읽으면서 시작된다. 구매자는 소파와 어울리는 그림을 사지 않는다. 온전히 장식을 위해 몇백만원 투입하는 이는 거의 없다. 

눈이 편하고 마음이 편한 미술품은 익히 알고 있는 과거형 미술품이다. 몹시 비싸다. 적당한 가격에 눈이 편하고 마음이 편한 미술품은 항상 보아왔던 것 중에서 불편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은 상황의 정경이다.

여행을 가면 마음이 넉넉해진다. 집 떠나서 만나는 풍경은 사건과 무관하기 때문에 편안한 미술품이 된다. 꽃을 선물 받아 기분 나쁜 이 없다. 과일을 먹는다는 것은 후식이거나 명절이거나 한가로울 때다. 그래서 착한 미술가들은 여행지에서 만나는 풍경이나 꽃이나 과일을 잘 만들어 낸다. 그러나 보니 읽을거리가 없다.

미술품 매매를 생각한다면 화맹(畵盲)퇴치, 예맹(藝盲)퇴치 운동부터 시작 하자. ‘나는 미술 볼 줄 몰라’는 말이 너무 쉽게 나온다. 볼 줄 모르는데 무엇을 구매하라는 말인가. 국어책에서 영희와 철수가 퇴출당했다. 바둑이는 복날에 즈음하여 사라졌다. 그러나 미술시장에서는 여전히 씩씩하게 돌아다닌다. 의미 없는 오양으로, 그냥 아무생각 없는 사과와 복숭아, 장미꽃으로 변신하여 잘 산다. 늦지 않았다.

지금부터 예맹(藝盲)퇴치 운동을 시작하자. 그러기 위해서는 미술가들은 자신의 미술품을 지인에게 먼저 팔자. 부모님께, 이웃집 아저씨께, 삼촌이나 이모를 먼저 설득하자. 가족이 사주지 않는 미술품을 남에게 사달라고 강요할 순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