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수의 뒷방이야기] 우리사회는 치유(治癒)할 곳도 많고, 선무당도 많다.
[박정수의 뒷방이야기] 우리사회는 치유(治癒)할 곳도 많고, 선무당도 많다.
  • 박정수 미술평론가(정수화랑 대표)
  • 승인 2012.11.01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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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평론가 박정수
옛날,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에는 오른쪽 아랫배가 아프면 무조건 맹장염이었다. 눌러서 아프고 땔 때 더 아프면 의사보다 더 잘 아는 맹장염이었다. 의사말도 필요 없다. 무조건 수술해 달란다. 배를 열고 보면 아닌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이미 열린 배를 닫고 ‘수술 아주 잘 되었습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라고 말하는…. 자가진단은 선무당이 사람 잡는 일이다. 우리가 대충 알고 있는 맹장염은 맹장염이 아니라 맹장 끝터리에 달린 충수돌기라는 염증이 생기는 것으로 충수염이라 해야 옳은 말이다. 지금이야 비슷한 증상의 다른 병이 있음도 알기 때문에 병원에 가면 초음파나 CT촬영을 하고 수술한다.

우리 사회에는 선무당이 너무 많다. 정치와 관련해서는 최고의 주치의가 된다. 누가 어떠한지 누구를 뽑으면 왜 안 되는지, 누구를 반드시 뽑아야 하는지를 말한다. 과거 누구 때문이 현재가 이 모양이라고 설파한다. 사회를 치료하는 최고의 의사임을 자처한다. 그것이 아니라면 무척 흥분한다. 외면이 최고의 방편이다.
병을 고치는 치료(治療. therapy)와 병은 낫게 하는 치유(治癒. heal)는 많은 차이가 있다. 치료는 약이나 의학적 치료를 말하지만 치유는 자연적인 방법의 방법으로 병을 낫게 하는 것이다. 사회가 아프면 치료와 치유가 동시에 일어난다. 전쟁으로 아프고 폭동이나 혁명이나 여타의 시위로 곪지 않은 곳이 없다. 오존층 파괴나 얼음이 녹고 물 부족 국가가 늘어나는 것도 사회를 아프게 한다. 세상이 아프다. 아픈 곳을 도려내고 환부를 치료하는 일도 해야 한다. 하지만 사회를 운용하는 이들은 치유가 아니라 환부에 대해 숨기거나 삭제와 격리를 주로 사용한다. 환부를 도려내고 만다. 어떻게 보면 그러한 행위가 병원의 치료행위와 흡사하다 할지 모르지만 사회의 아픔을 고치진 못한다. 여기에 예술이 존재한다.

전쟁이나 폭동이나 사회 격변이 일어나는 시기에는 다양한 예술이 형성된다. 많은 예술가들이 자신의 임무를 위해 결과물을 양산한다. 서양으로 보면 교권과 왕권이 무너진 이후의 르네상스, 시민 혁명과 함께한 인상주의, 1차 세계대전과 함께한 유럽의 다양한 예술들, 2차 세계대전과 경제공황, 동서 냉전속의 예술가들이 현재까지를 감당해 왔다. 사회가 격변하고 있음에도, 아픈데도 안 아픈 척한다. 돈이라는 약재가 워낙 강한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새로운 치유방안을 찾아야 한다. 돈이라는 신약(新約)의 약발이 다해간다. 이제는 융합(融合)과 치유(治癒)의 시대다. 사회의 어디가 아픈지를 살펴서 그곳에 대한 아픔을 호소하거나 아픔에 대한 치유의 공간이 필요하다. 정신이 혼미한 사회를 위한 추상으로서 평이함이나 편안함만을 가지고서는 치유가 어려운 지경이다.

치유(healing)미술(미술치료와는 별개의 것)이 대세다. ‘개념미술’이라는 것이 더 이상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집단 증후군의 결과물이었기 때문에 벌써 구시대의 것으로 취급되고 있다. 여럿이 모이면 특정의 개념이 형성되는 시대가 지났음이다. 이제는 ‘치유미술’이다. 미술은 사회를 향한 불만이나 이야기를 던지는 것이 아니다. 배고픈 아이에게 젖은 물리는 것과 같이 항상 유아임이 확인되는 사회의 자양분이다.
사회는 언제나 신생아다. 사회는 절대로 성인이 되지 않는다. 지나간 시절로 커가는 것이 사회이기 때문이다. 과거는 늙고 병든 것이 아니라 차츰 쌓여지는 중년의 모습이다. 지금에서 영양을 공급받지 못하면 연약해 지거나 아프게 된다. 여기에 예술이 존재한다. 사회는 지금 이 순간에 갓 태어난 신생아다. 지금 이 순간의 사회는 아프다. 아픔에 대한 근본적인 근원을 치유하여야 한다. 미술가는 자신의 아픔이 곧 사회의 아픔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