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수의 뒷방이야기] 미술에 대한 이해 - 드로잉
[박정수의 뒷방이야기] 미술에 대한 이해 - 드로잉
  • 박정수 미술평론가(정수화랑 대표)
  • 승인 2012.12.07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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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수 미술평론가

해외 아트페어에 수묵 작품을 선보이면 가벼운 드로잉 작품으로 취급한다. 종이위에 단색 수채 물감으로 그냥 그린 작품이란다. 무식한 인간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말이 안 통한다. 속으로만 욕하고 만다. 그런데 우리 미술인 스스로도 드로잉을 가벼운 스케치 정도로 이해하고 있다.

드로잉이란 소묘 또는 데생 등의 이름으로 불리지만 단순히 말하자면 종이나 어떤 재료 위에 선으로 표현하는 것을 지칭한다. 드로잉이란 무엇을 정확하게 따라 그리는 것에 그리는 것이 아니다. 때문에 스케치나 크로키, 에스키스와는 구분된다. 움직이는 동물이나 사람, 순간의 기분 등을 짧은 시간에 스케치하는 것을 크로키(croquis)라고 하며 스케치(sketch)는 어떠한 미술작품을 제작하기 위한 밑그림이나 대상의 요점을 간략하게 그리는 것을 의미한다. 흔히 구도라고 하는 구성과 배치 등을 중점으로 그리는 작업이다. 미술용어 중에 에스키스(esquisse)라는 것도 있는데 이는 작품 제작을 위한 밑그림의 의미로 작은 종이 위에 미리 그려보는 ‘단상 잡기’를 의미한다.

드로잉은 모양의 간략화가 아니라 개념의 간략화 작업이다.

drawing은 sketch와는 개념을 달리한다. 스케치는 사물의 외양을 단순화 하는 것이지만 드로잉은 사물을 통한 개념의 단순화를 의미한다. 또한 드로잉은 색채에 의한 면보다는 선에 의한 접근을 사용하는 회화의 한 분야이다. 시각예술이거나 건축예술이거나 상관없이 드로잉은 모든 형상의 기초 위치를 선점한다. 이러한 입장에서 보면 드로잉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같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드로잉이 온전히 예술의 독립 장르로 인정되는 것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 하였다. 신문이나 여타의 잡지를 보면 연재되는 소설이 늘 있다. 연재소설에는 소설의 이해를 돕는 삽화가 들어가 있는데, 이것 또한 드로잉의 개념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그러나 글이 없는 순수 이미지로서 드로잉이란 일러스트와는 또 다른 상태를 지닌다. 

드로잉에서 한국성을 찾는다.
드로잉은 입체적일 수 없는 시각예술이다. 그러나 동양회화의 시각에서 본다면 그것은 충분히 입체적이며 사상의 함의를 충분히 지니고 있다. 선을 주로 사용하지만 동양에서의 선은 line이 아니라 space로 이해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구획을 정하고 사물간의 경계를 만드는 서양의 선(線)과 달리 동양에서는 여백과 사유적 개념으로서 사용되기 때문에 우린나라 미술인들이 더 즐기는 것 일런지도 모른다. 물론 시각예술로서 드로잉은 종이나 캔버스위에 연필이나 물감, 크레용, 목탄 등을 사용한 2차원적 매체를 활용한다. 때로는 입체로 만들어진 면적에 그리기도 하지만 결국 평면이라는 질료를 벗어나지 않는다. 가장 일반적으로 종이를 사용하지만 합판이나 가죽, 캔버스 등을 사용하기도 한다. 간혹 유리나 금속위에 긁거나 붙이는 방식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시각적 아이디어에 대한 조건 선택일 뿐이다.

드로잉은 시각예술의 한 부분으로 특별히 그리는 방법을 규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선을 사용하면서 선과 선의 이어진 부분에 다른 용재로서 칠을 잘 하지 않을 뿐이다.

새삼스럽게 드로잉을 이야기 하는 것은 시대가 너무 오만하고 무거운 것들만 작품으로 취급하기 때문이다. 가벼운 생각과 즐거운 마음으로 미래를 간략하게 그려지는 그림들이 많아야 할 때다. 많은 이들이 드로잉을 회화작품을 위한 기초 수단이거나 기술 습득을 위한 교육과정으로 오인하고 있다. 다양한 장르와 표현양식이 자리하는 현대미술에서 드로잉의 적합한 위치를 고양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