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수의 뒷방이야기] SHOW를 하라!
[박정수의 뒷방이야기] SHOW를 하라!
  • 박정수 미술평론가(정수화랑 대표)
  • 승인 2012.12.17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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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수 미술평론가(정수화랑 대표)
세상은 요지경. 요지경 속이다. … 야이야이 야들아 내 말 좀 들어라 여기도 짜가 저기도 짜가 짜가가 판친다. 벌써 20년 전이 되어간다. 어눌한 춤사위로 우리사회에 대한 냉소적 풍자로 히트했던 노래가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거기서 거기다. 그때도 가짜가 판을 쳤고 지금도 짜가가 판을 치고 있다. 진짜로 믿었던 사업자금 대신 받았던 골동품이 진품명품 나간후 갑자기 가짜가 되었다. 가보로 모신지 20년 만에 쫑 났다. 

세상은 이미 본 얼굴이 어떤 것인지 삭제 당했다. 진짜 얼굴이 어떤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인터넷 상의 가상공간의 캐릭터가 죽임을 당했다고 실재로 보복을 행하는 시대다. 악풀에 상처 받는 것은 가짜가 진짜이기 때문이며, 가짜로 감정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예인(藝人)은 상처가 많다. 자신의 본 모습을 숨긴 채 대본이 주는 자리에, 역할이 주는 자리에 최선을 다하다 보니 감정기복이 심하고 마음의 상처가 많다. 예술가는 상처에 민감하다. "너 보통 사람이지!"하는 순간 치유 어려운 상처를 입는다.

만일 어떤 정신 나간 사람이 당신에게 ‘1억 줄테니 작품 하지 마시요!’라고 하면 콧방귀 끼고 만다. 더 정신 나간 사람이 당신에게 ‘10억을 제안한다.’ 약간 흔들린다. 하지만 작품 활동에 무게가 실린다. 다시 묻는다. ‘30억을 주겠소!’ 환장하는 일이다. 하지만 이런일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세상은 성공한 자와 성공할 자에게 관심을 둘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쇼를 한다. 미술가의 무대는 전시장이며, 사람들의 무대는 세상이다. 미술가에서, 예술가에서 갑자기 예인(藝人)이 된다. 사람은 사회에 노동력을 제공하고, 미술가는 사회에 정신을 제공한다. 예인은 몸으로 세상을 보여준다. 여기에 예술작품은 사람들의 미래를 예견한다.

쇼를 하자. 작품을 주인공으로 만들기 위해서 미술가는 쇼를 하여야 한다. 남들이 모르는, 남들이 생각하지도 않는 새로운 생명체를 만들어야 한다.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보다 더 힘찬 생명체를 만들어야 한다. 작품을 만들면서 미술가는 조물주가 된다. 생명을 넣고 성격과 개성까지 주어야한다. 수많은 복제를 하자. 모양은 비슷해도 성격이 틀리다. 이들 중 한 놈만 떠도 다 뜬다. 미술가가 생산한 생명체는 아바타 영화에 등장하는 나비족의 대지와 같이 서로가 연결되어 있다.

생명체의 왕성한 활동을 위해 인사동에서 청담동에서 코엑스에서 쇼를 하는 배우가 된다. 신인 그룹의 성공을 생각하는 YG나 SM, JYP의 심정으로 바라본다. 하나만 뜨면 다 뜬다. 호강의 시작이다. 그래서 미술가는 자신의 작품이 판매될 때 "시집보낸다고 말한다." 미술가는 작품이 시집가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무한책임이 발생한다. 외면해도 상관없다. 이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한 녀석이 외면당하면 나머지도 힘을 잃는다. 그들은 미술가의 쇼를 먹고 산다. 쇼를 하지 않고 그냥 그림만 그리면 죽지는 않지만 활기가 없다. 미술가가 죽으면 함께 죽는다. 유족에 대한 무한 부담이 시작된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쇼를 시작해야 한다.

미술가가 쇼를 하기 참 쉬워졌다. 무대도 넓어 졌고, 마케팅도 편리해 졌다. 무료 전시장이나 온갖 아트페어가 생겨났다. 온라인 홍보는 돈도 별로 안 든다. 다만, 한 번에 무엇인가를 기대하지 말라. 누군가 벼르고 별러서 십 수 년 저축하고 저축해서 코엑스를 통째로 빌려 개인전 한다 해도 그것 또한 한 번의 쇼일 뿐이다. 미술가라면 꾸준히 쉬지 않고 쇼를 해야 한다. 의상을 추레하게 입어도 좋다. 특이한 성격의 소유자라도 좋다. 남에게 불편을 끼치지 않는 범위에서 무조건 쇼를 하라. 한 놈이 뜰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