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수의 미술시장 이야기] 정치와 예술, 그리고 창작의 자유
[박정수의 미술시장 이야기] 정치와 예술, 그리고 창작의 자유
  • 박정수 미술평론가/정수화랑 대표
  • 승인 2014.08.14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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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수 미술평론가/정수화랑 대표
2014년 8월 현재 광주가 시끄럽다. 광주가 시끄러운 것이 아니라 광주 미술계와 창작의 의미를 이해하는 미술인들만 시끄럽다.

박근혜 대통령을 풍자했다는 이유로 광주비엔날레 20주년 특별전에 전시될 홍성담의 ‘세월오월’이라는 작품전시를 유보했다고 한다. 이런 일이야 이번뿐만 아니라 수시로 발생하는 미술계의 슬픔이다.

미술계가 시끄럽다보니 현 정권을 수호하고자하는 많은 이들이 글을 쏟아내고 있다. 현 대통령을 풍자하는 것은 국제적 망신이라고 한다. 심지어 누군가는 홍성담 작가에게 붓을 꺾으라고 한다. 정부예산을 썼으니 정부를 비난하면 안 된다고 한다. 정부예산이라니? 그것은 국민의 세금이다. 국민은 호도하고 미술인의 창작의 자유를 국민의 세금으로 막는다.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우리나라 미술계가 아무리 대통령을 풍자하거나 헤프닝을 한다 해도 백남준을 따라잡기란 멀고도 험하다. 1998년 백악관 만찬에서 클린턴이 악수를 청하는 순간 백남준의 바지가 스르르 흘러내린다. 아무것도 입지 않았다. 클린턴 대통령은 물끄러미 바라보다 다른 일을 한다. 르윈스키와의 부적절한 관계를 조롱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전세계 언론이 지켜보는 가운데의 헤프닝이다. 우리나라에서라면 큰일 날 일이지만 백악관에서는 헤프닝으로 그냥 넘어갔다.

2013년 11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개관할 때, 시대정신을 잘 읽고, 시대정신에 부합하고, 시대정신을 잘 이해하는 이들의 작품전이 있었다.

임옥상의 <하나됨을 위하여>, 이강우의 <생각의 기록>이라는 작품과 서용선, 전준호의 작품이 외압에 의해 전시직전 제외되었다는 의혹을 믿지 않는다.

다만, 이들 작품은 시대정신이 잘 반영되지 않았을 뿐이다. 2009년 12월에는 광주 5.18기념문화관에서 열린 '江강水원來'란 전시에 김병택 작가의 ‘삽질 공화국’이란 작품이 논란이 되었었다.

삽 모양으로 만들어진 종이 부조에 이명박 전 대통령의 얼굴을 모자이크 형식으로 붙였다. 그때도 그랬다. 철수하라 말라는 말이 많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청와대나 기타 정치적 외압은 전혀 없었다고 믿고 싶다.
예술작품에 있어 창작의 자유를 어디까지 두어야 하는가. 예술에 있어서 창작이라는 것은 일련의 이론가들이나 미술가들은 기존의 형식과 내용(사회의 질서나 이념)을 부정하거나 긍정하면서 새로운 형식과 내용을 만들어내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예술뿐만 아니라 모든 사회적 장르에 관여되는 의미다. 과학이나 의학도 기존의 형식을 타파하고 새로운 방식의 과정을 만들어내지만 사회질서를 반영하지 않기 때문에 창작이라 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는 창작의 자유가 조금밖에 없다. 창작은 무형을 유형으로 만드는 일이다. 없던 것을 있게 만들기도 하지만 이것은 무척 어렵다. 있는 것을 모두 알아야 한다.

그 이후에 불편하거나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 있다. 기존에 있는 사상이나 개념이나 사실들은 답습하는 일은 아니다. 그래서 예술에 있어서의 창작은 부정적이거나 거부성이 강하거나 낯설거나 어색할 수밖에 없다. 예술은 무엇보다도 정치에 있어서만큼은 자유로워야 한다. 비난하거나 힐책하는 이들이 있는 반면 옹호하거나 수호하는 이들도 있다.

정치권에서 외압이 없었다고 주장한다지만 뭔가 구리지 않으면 표현하지 않거나 정치권 스스로가 무시하고 마는 이들이다. 한나라의 수장을 비난하고 풍자하는 것을 저해하기 이전에 이런 일이 왜 일어나고 있는가를 먼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예술 표현의 자유를 억지스럽게 협소화 시킬 일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