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수의 미술칼럼]95%의 다른 길을 준비하자.
[박정수의 미술칼럼]95%의 다른 길을 준비하자.
  • 박정수 미술평론가/ 정수화랑 대표
  • 승인 2014.12.07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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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수 미술평론가/ 정수화랑 대표
팔리는 그림을 안 그린다는 그들은 여전히 전시장에서 작품 호객행위를 하고, 예술이 삶의 전부인 냥 살아오던 그들 중의 많은 이들이 치킨을 튀기거나 그림 그리는 재주를 팔아먹고 산다.

미술대학을 다닐 때 ‘여기 인원 중 10년 후에 2명만 작가활동해도 선생으로서 성공이다.’라고 교수님들이 항상 말했었다. 여느 전공도 마찬가지겠지만 말 그대로 100명중에 5명이 살아남기 힘든 곳이 미술계다. 교육과 나왔다고 다 선생님 하는 것 아님에도 유독 예술계는 자존이 강하다. 지금 예술 활동을 시작하는 대학생이거나 대학원생이거나 하는 분들의 95%는 다른 일을 하게 될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그러면서 자신은 늘 5%에 속할 수 있다고 믿는다. 교육이 문제라거나 예술을 학습하는 이들의 문제만은 아니다.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예술은 이 사회의 특별한 것이며 대중과 한 호흡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예술이 대중화 되면 그것은 이미 문화다. 그래서 예술은 애초부터 고급의 성향을 벗어날 생각이 없다. 예술은 예술가의 것이며, 예술작품은 죽고 나면 비싸지는 그들의 것이다.

1980년대 이전까지 초등학교 가정(환경)실태조사는 “재봉틀 있는 사람”, “신문 보는 사람”, “텔레비전 있는 사람 손들어”정도였다. 1970년대 새마을 운동에 동참하는 ‘부역’시대를 갓 벗어난 시대였다. 초등학교 장래희망 란에 가수 혹은 탤런트라고 적는 것이 현재형이라면 30년 전 즈음의 초등학교에서는 60명 정원에 화가라고 쓰는 이가 두 세 명은 있었었다. 판검사와 의사는 그들의 리그이므로 평민의 신분상승을 위한 유일한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현재에 와서도 예술은 여전히 사회지도층의 정신적 영역을 담당하는 분야임에 분명하다. 예술가로 가는 길에 험난한 고역이 따르는 것이지만 95%를 위한 또 다른 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다. 2007년 미술시장 빅뱅 이후가 되면 미술가들의 정체성이 많이 달라진다. 돈 되면 좋은 미술품이 되었다. 미술품으로 이윤을 획득하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미술가의 도덕과 미적 취미의 변화에 자본이 영향력을 발휘한다.

지금도 이를 부정하거나 거부할 수는 없지만 적당한 미적 감흥과 적당한 장식, 적당한 교육수준, 적당한 정신에 대한 배고픔이 있는 적당한 시민들을 향한 미술형식의 짝사랑이 시작된다. 아무나 화가하고 아무나 기회가 닿으면 스타가 될 수 있다고 착각한다. 10년 후의 5%가 아니라 현재의 95% 전부가 예술작품으로 오인 받기도 했다.

장식을 위한 재료는 화려해지고, 특별한 인물이 각광받는 듯 만화적 상상력이 미술시장을 장악한다. 구매자는 품위를 잃지 않았지만 미술가는 훌떡 벗고 덤벼드는 시기도 있었다. 여기에 미술장사치들도 한몫 거든다. 더 많은 이문을 남기기 위하여 별스럽지 않은 만화적 상상력을 우리시대의 표본이라고 포장한다. 미술에 대한 기준이 사라지고 상업에 몰두하는 경향이 자리 잡는 시기가 90년대 중후반 이었다.

이제는 우리도 스스로 95%를 준비할 때다. 누군가는 그 자리에 서야한다. 지역적 특색이나 지역 후원 등에 따른 개인적 체계에 대한 적당한 예술가적 아첨을 벗어야 한다. 지방자치단체에서 제공하는 문예진흥기금에 줄서는 양태도 벗어야 한다.

대중예술이라는 이름을 사랑하는 이들 또한 자신의 길을 가야 한다. 아직도 대중과 함께 호흡한다고 그들의 미적감흥에 도움을 주고 싶어 하는 이들이 새로운 세상을 꿈꾸고 있다. 더 이상은 예술의 대중화라는 거창한 이름하에 예술의 가치를 격하시키지 말아야 한다.

예술가는 자신의 영역을 지키는 범위에서 사회를 주도하는 거만을 유지하여야 한다. 예술창조가 자본의 힘에 굴복되지 않아야 한다. 95%의 준비는 새로운 직업이 아니라 95%의 다른 생각을 만들자는 의미다. 새로운 생각이 필요한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