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수의 미술시장이야기] 파는 그림과 팔리는 그림
[박정수의 미술시장이야기] 파는 그림과 팔리는 그림
  • 박정수 미술평론가/ 정수화랑 대표
  • 승인 2015.03.12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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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수 미술평론가/ 정수화랑 대표
거의 매달 아트페어가 열린다. 호텔이건 전시장이건 상관없이 기회와 가능성만 주어진다면 무조건 미술장터다. 개인화랑에서 구매자가 찾아들지 않고, 전시장 임대로 근근히 유지하던 군소 화랑들의 생존이 막막하다. 작가들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초대전도 잘 없다.

돈을 벌 목적으로 예술을 하는 이들이 거의 없다시피 한 이곳에는 예술만 있고 예술품이 잘 없다. 발명가처럼 물건을 만들고 거기에 장식을 위한 치장만 있을 뿐이다. 발명가는 없던 물건을 만들고 예술가는 없던 생각을 만든다는 본래의 목적이 무색할 지경이다.   

2011년에는 아엘리타 앙드레라는 호주에 사는 4살짜리 여자아이의 작품이 미국전시에서 2,600만원에 판매되었다는 토픽도 있었다. ‘사십년을 그려도 이 모양인데 평생이 4년인 아이보다 못하단 말인가.’라는 누군가의 푸념이 귓가에 맴돈다. 드라마 ‘최고의 사랑’에 나온 독고진의 대사처럼 “평생이 7년인 넌 벌써부터 사물에 감정이입하고 그러지 않아도 돼 .하지만 37년을 산 나는 감정 이입이 돼서 도넛을 먹지 못 하겠다”는 식의 드라마 대사가 무색해 진다.

아트페어에서 누군가의 그림이 팔리면 어떤 그림이 얼마에 누가 샀는지가 궁금해진다. 팔린 그림이 인맥이건 아는 사람이건, 지나가던 사람이건 상관없이 한없이 부러울 따름이다. 예술작품이 팔리지 않으면 예술가는 생명의 지장을 받는다. 그렇다고 자존심을 버려가며 파는 예술가는 별로 없다. 최소한의 자존심(?)을 지키는 범위에서 영업행위를 한다. 그래봐야 ‘그림 한점 사줘!’라는 말을 직접적으로 하지 않을 뿐이지만 말이다.

예술작품을 판매하기 위해서는 전시가 종료될 때까지 온갖 설명을 다해야 한다. 돈을 최고의 것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예술작품으로 설득하기란 여간 힘들지 않다. 말로는 돈이 최고가 아니라고 돈 있는 이들은 내심 그것으로 잘난 체하고 그것으로 품위가 유지된다고 믿는다. 예술가도 겉으로는 우아하고 품위 있는 모습인 냥 최선을 다한다. 팔기위한 작품제작이 아니라 예술 활동을 하다보면 작품이 자연스레 팔린다고 말한다.  

자신의 작업실을 미술공장이라고 칭했던 앤디워홀의 일부작품은 1천억이 넘어간다. 그는 미술상품을 생산해 내면서 미디어를 통해 유명해진 보통의 이미지를 사용하여 사회를 공격하고 일침을 가한다. 포름알데히드(방부제)에 죽은 상어를 넣은 데미안허스트의 상어는 140억이 넘는다. 여기다 진짜 해골을 백금으로 주조한 뒤 다이아몬드를 촘촘하게 박아 940억 정도에 매매되었다. 말 그대로 팔기위한 목적으로 제작한 미술품들이다. 

앤디워홀이나 데미안 허스트와 같이 팔기위한 목적으로 자신의 작품을 생산해 낸다는 것은 이미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지금이야 컴퓨터를 활용하여 프린트하거나 프린트 한 이미지 위해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여 작품을 생산하고 있다만 십 수년 전만 하더라도 어떤 미술가가 슬라이드 환등기를 활용해 사물의 외관을 스케치 한다는 것조차 밝힐 수 없는 비밀로 취급되는 시절도 있었다. 미술작품은 손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기계를 활용하는 것은 어떤 비겁한(?)일로 간주되기도 하였다. 현대미술은 보는 것, 느끼는 것을 포함한 장식까지 염두에 두어야 한다.

예술가는 돈을 그리지 않는다. 다만 돈과 교환할 뿐이다. 돈을 그린 그림과, 돈과 교환하는 그림의 차이는 ‘살아 지느냐와 살아가느냐’와 비슷하다. 예술은 살아지지만 예술가는 살아가야 한다. 의지와 개척과 창의 정신으로 아무도 모르는 미래를 미리 맛보고 설명한다. 살아지는 데도 돈이 들고, 살아가는 데도 돈이 든다. 예술가로서 살아가는 것에 드는 돈까지 개척해야 하는 어려움을 가까운 사람들이 많이 알아줬으면 좋겠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