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수의 미술시장이야기]충고와 지적질
[박정수의 미술시장이야기]충고와 지적질
  • 박정수 미술평론가/ 정수화랑 대표
  • 승인 2015.07.30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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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수 미술평론가/ 정수화랑 대표

좋은 기분과 비싼 거금으로 오랫동안 벼르던 머리염색을 정성스레 하고 모임에 나갔는데 친한 친구가 “으아~ 염색했구나. 머리 색깔이 이게 뭐야, 좀 더 밝았으면 좋았을 걸”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화를 낼 수는 없어도 패죽이고 싶도록 미운 것 사실이다. 충고를 가장한 지적질이다.

충고(忠告)란 타인의 잘못이나 부족한 점을 진심으로 타이르거나 부탁의 의미가 강한 말을 일컫는다. 충(忠)에는 공평(公平)하다는 의미가 담겨있기 때문에 충고하는 이의 잘못됨을 감내하는 범위에서의 충돌이 일어난다. 또한 충고는 어떤 일을 행하기전이거나 일의 결과에 대해에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감정의 것이다.

그런데 사람 사는 세상에는 지적질에 능숙한 이들이 있다. 이들의 지적질은 아주 교묘하여 충고를 가장하고 있기 때문에 화를 내거나 다른 반박을 하게 되면 머리가 나쁘거나 진심어린 충고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쫌생이가 되고 만다.

“아, 그런데 이 작품 색상이 좀 더 밝았으면 좋겠어요.”

미술계에서 흔히 듣고 말하는 말이지만 장소와 의미에 따라 상당한 차이를 지닌다. 대학에서 교수가 학생에게 하는 말은 지극히 정상적이다. 학원이나 교습소에서 또한 마찬가지다. 그러나 신작연구나 학위 청구전을 위한 개인전이라면 몰라도 판매를 위한 개인전이나 아트페어에서 일어난다면 아주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이 말이 진심어린 충고라 할지라도 하자있는 작품을 팔아야 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판매를 위한 개인전이나 아트페어에서는 절대적으로 하지 않아야할 말들 중에 하나다. 판매를 위한 현장에서는 충고가 아니라 심각한 지적질(?)이 된다. 지적(指摘)은 허물이나 잘못된 점을 꼭 집어서 폭로하는 것을 말한다.

젊은 예술인들 혹은 젊은 이론가(평론)들이 예술계의 저명인사의 작품세계나 그들의 사회적 여건이 맘에 들이 않는다고 흉과 비난을 하더라도 그들은 어떠한 대응이나 효과가 일어나지 않는다. 젊은이들은 어른들을 비난하거나 지적하면서 새로운 세상을 꿈꾸기 때문이다. 다만, 흉과 지적질은 세대나 사회나 집단을 대상으로 해야 한다.

개인에 대한 부정과 지적질은 충고를 가장한 부러움의 현재표현일 뿐이다. 지적질 당한 개인이나 집단은 습관적 지적질 인들에게 가급적 대응하지 않는다. 않음이 아니라 필요를 못 느낀다. 지하철이나 공공장소에서 선교활동을 하는 이들에게 약간의 충고(그들에게는 지적질)를 하게 되면 그 순간 당신은 ‘사탄’이 된다.  우리는 그것을 잘 알기 때문에 그냥 모른 척 한다. 그들 역시 모른 척 한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더욱 신나서 소리를 친다.
 
간혹, 갤러리 개업하겠다고 조언을 구하는 이를 만날 일이 있다. 그러면 돈만 버리고 돈도 안 된다고 하면서 개업하지 말라고 먼저 말문을 연다. 이렇게 말해도 갤러리 접은 이 거의 없다. 이미 결심하고 찾기 때문이다. 이미 결심했는데 왜 조언과 충고를 물어오는지 모를 일이다. 그래도 여러 가지 조언 중에 “아는 작가를 멀리하라!”는 말을 잊지 않는다.

갤러리를 개업하는 입장에서 아는 화가는 그다지 쓰임새가 없다. 이익보다는 손해가 더 많다. 어떻게 어떻게 해야 한다고, 예술은 어떠하고 운영은 어떠하고 끊임없는 충고와 지적질이 이어진다. 다 필요 없다. 그냥 작품 잘 팔면 장땡이다. 작품도 매입해야 한다고 종용한다. 그러면서 자신과 자신이 아는 작가들을 추천한다. 개업 때 산 작품치고 잘 팔리는 작품 별로 없다. 금새 거래가 되는 작품은 몹시 비싸서 개업하면서 구매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다.

세상은 부정이 가장 쉽다. 잘되게는 힘들어도 남 흉보기는 간단하다. 자신의 목소리가 자신이 지적하는 이들의 과거형일 수 있음을 기억하자. 잘못된 과거는 현재의 자신이 불편한 부분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