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대란_무한 자유경쟁시대 “최고가 최초가 되는 세상”
한복대란_무한 자유경쟁시대 “최고가 최초가 되는 세상”
  • 박정수 미술평론가/정수화랑 대표
  • 승인 2016.05.16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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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수 미술평론가/정수화랑 대표

전화기를 발명한 이가 그레이엄 벨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안다. 초등학교 때부터 그렇게 배웠고 그렇다고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벨보다 더 먼저 발명한 이가 있다는 사실은 잘 알지 못한다.

이탈리아 안토니오 무치라는 사람이 전화기를 먼저 발명하였지만 특허등록에 늦어 전화기에 대한 부와 명예를 잊었다는 사실이 최근에서야 알려졌다. 당시 특허에 늦은 안토니오 무치는 당시에 소송을 제기 했지만 패소하였다가 120년이 지난 2002년에서야 전화기의 발명자라고 미국 의회에서 인정해 주었다.

그렇지만 전화기에 의한 부와 명예는 그레이엄 벨의 독차지다. 과학이나 발명계에서는 특허가 전쟁이다. 이런 것들을 보면 최초가 최고가 되는 일은 없는 것 같다.

세상이 죽음과 생존이 난무하는 전쟁이라면 살아남은 자가 승리한 것일까, 아니면 돈이나 땅을 후손에 물려주고 장렬한 최후를 맞은 이가 승리자 일까. 바라보는 관점에서 차이가 있겠지만 뭐라 딱 잘라 말하기 곤란한 질문이다. 세상을 살아감에 ‘자신보다 더 중요한 것 없다’는 말이나 ‘살아서 영화를 누려야지 죽어서 명예를 얻으면 뭐해!’라는 것이 명예나 명분보다 중요시 여기는 세태에서 말이다.

경복궁 담벼락 건너편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인근 골목에는 한복을 대여해 주는 가게가 있다. 1년 전을 전후해서 <삼삼오오>라는 가게가 생겨 대여 성황을 이루더니 최근에는 골목 초입에 <경복궁 한복이야기>와 <옛길 한복>이라는 가게가 연달아 문을 열었다.

외국인을 주 고객으로 한 것인지 내국인을 대상으로 한 것인지는 알지 못하지만 장사가 되니까 생겨난 것만은 분명하다. 비슷한 업종이 한 골목에 있으니까 시너지가 일어날지 무한 출혈 경쟁으로 서로 손해를 볼지 또한 두고 볼 일이다. 상호 담합이 있지 않은 다음에는 겉으로 경쟁이 있을 것이고 서로의 특색을 홍보하기 위해 다양한 이벤트를 마련할 것이다.

미술계에도 이런 비슷한 일들이 왕왕 일어난다. 누가 누구 것을 배꼈느니 따라했느니 하는 말들이 무성하다. 누가 누구를 따라 그린다는 것은 누가 아주 유명하거나 세계적 거장일 경우에 일어난다. 대충 엇비슷한 수준에서, 고만고만한 이들끼리 일어날 일은 없다.

우리나라 미술계 한 켠에서도 삼청동 한복가게와 비슷한 작은 논란이 일고 있다. 본인들이야 상관없다고 하겠지만 이미 많은 이들의 수군거림의 대상이 되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소위 말하는 한복그림 삼파전이다. 누가 일찍 시작했고 누구의 작품이 누구 것과 비슷하다는 등의 말들이 무성하다. 엄밀히 따져보면 굳이 이들 세 명을 한자리에 붙여줄 이유도 없음에도 말이다.

한복을 소재로 그림을 그리는 이들의 이름을 알뜰히 밝히지는 않겠지만 후발주자라 할 수 있는 젊은 화가의 마케팅 약진에 의한 논란으로 비약되었다. 2015년과 2016년 인사동에서 벌어진 일련의 마케팅 활동은 앞으로도 관심의 대상이 될 것임에는 분명하다.

누군가는 실력으로 견주겠다는 자신감으로, 누군가는 그들과 다른 자신만의 세계구현으로 누군가는 마케팅으로 자신의 입지를 확보하려 한다.

세 명의 화가 모두 개별의 특색을 가진 작품을 생산해 내고 있다. 10년이 지난 즈음에는 세 명의 화가 모두가 우리미술시장에 존재할 수도 있고, 아무도 없을 수도 있다. 누가 누구의 작품이냐를 말하기 전에 미술작품에 대한 미학적 가치나 사회적 효용성, 미술시장 장악력과 같은 본래 의미가 다루어져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이므로 마케팅 전쟁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작품에 대한 진지한 미학적 논의를 중심에 두어야 한다. 무엇을 그릴 것인가를 배우기 이전에 어떻게 그릴 것인가를 먼저배운 우리네 풍토에서 더 이상 누가 먼저시작 했느냐와 같은 수군거림은 종식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