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수의 미술시장 이야기]지금은 아무나 시대.
[박정수의 미술시장 이야기]지금은 아무나 시대.
  • 박정수 미술평론가/정수화랑 대표
  • 승인 2016.08.01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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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수 미술평론가/정수화랑 대표

아무나 예술가인 시대다. 물감으로 대충 그리고 대충 꽃을 그리고 대충 풍경을 그리면 예술가가 된다. 그러다보니 아무나 예술가들 중에 화가인 경우가 많다.

아무나 예술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과거의 어느 고견의 예술가님들이 아무나 할 수 있는 작품을 예술품이라 칭했거나 우겼기 때문일 것이다. 과거에도 취미삼아 그림 그리는 이들이 많았다.

지금과 같이 전시만 하면 화가가 되고, 개인전 두 서너 번이면 전문가라 칭해질 수 있는 것은 인터넷의 힘이다. 페이스북에다 그림 그리는 사람이라고 알리고, 작품을 올리면 ‘좋아요’ 숫자가 탄생한다. ‘좋아요’는 품앗이기 때문에 남의 포스팅에 끊임없는 마우스 클릭‘질’이면 화가가 된다. 나쁜 말 절대 없다.

아무나 예술작품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예술작품을 탄생시켰다고 무조건 예술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대중스타들 중에도 그림 그리는 이들이 많다. 이들 또한 예술작품을 전시하고, 각종 전시회에 초대 받기도 한다. 가수나 탤런트가 그림 그린다고 뭐라 할 일은 없다. 가수의 예술작품이고 탤런트의 예술작품이면 그만이다.

이들은 예술가가 아니다. 예술작품이 사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들을 예술가라 부른다. 작품을 제작한 이들의 활동과 이들을 통해 생산된 작품이 사회활동을 하고 있을 때 모두를 합하여 예술 활동이라 부른다. 따라서 예술가로 호칭하기 위해서는 다음 몇 가지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첫째, 작품을 제작한 이의 과거가 있어야 한다. 현재의 작품이 탄생하기까지의 전력이다. 어쩌다 실수로 탄생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인증되어야 한다. 과거의 전적을 통해 미래의 작품 활동이 지속될 것이라는 믿음이 형성된다. 예술가는 나이순이 아니다. 미술을 전공하고 있는 대학생이나 대학원생을 예술가라 잘 칭하지 않는 것은 이들의 과거가 없기 때문이다. 전시경력이나 예술 활동의 기록이 필요하다.

둘째, 예술작품 스스로가 사회활동을 하고 있어야 한다. 작품 스스로의 사회활동은 몹시 어려운 일이다. 짧게는 수십 년 많게는 수백 년이 지나도록 다른 예술가들 손에서 연주되거나 인용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작품의 활용도가 많다는 의미다.

예술가의 손에서 예술작품 탄생되는 순간 그것은 자연물로 취급된다. 소설가의 소설작품이 사회의 일부로서 스스로 자생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음악에서 클래식을 연주할 때 ‘어떤’ 작품을 ‘누가’ 연주하였다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은 과거 누군가의 작품이지만 이미 누군가는 사라졌다. 작품 스스로가 연재에 까지 스스로 존속된다.

셋째, 전문가들이 전문가라고 칭해야 한다. 인터넷의 블러그와 페이스북과 같은 사회관계망 서비스 덕에 혼자만 예술가일수도 있는 시대를 살고 있지만 예술의 가치는 적당히 판결되고 있다. 예술작품이 좋다 나쁘다를 결정지을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다. 하지만 ‘작품의 가치’라고 하는 것에는 적당한 이바구가 가능하다.

가치는 값어치가 아니라 쓰임새이기 때문에 어떤 쓰임새가 있는지는 평가 가능하다. 예술전문가(예술가)들은 예술 아마추어(취미)와 구분되길 원한다. 미술협회나 예술동호회, 미술인 단체가 형성되는 것이 이런 이유다. 아무나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들의 영역을 수호하기 위한 방편이다. 아무나 화가가 된 것에는 한국미술협회의 방만한 회원 늘리기가 많은 작용을 한 것도 사실이다.

아무나 예술가가 많이 늘어나는 것에 불만은 없다. 이들이 많을수록 좋은 작품은 더 많이 생겨날 것이고, 이들 덕에 전문예술가와 비전문 예술가의 구분이 확실시 된다.

작품이 없는 예술가는 없다. 과거에 작품이 있었던 이를 예술가라 할 수 있는 것은 앞으로 언젠가는 예술작품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예술가의 끈을 연결시켜 둘 뿐이다. 스스로 아무나가 아님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활동과 정신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