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킹하면서도 슬그머니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왠지 모를 통쾌함이 펑!하고 가슴을 뚫어준다. 내 안에 억압된 것들이 무대 위 외부로 향한 창을 통해 빠져나간 것 같았다. 이 장면은 두고두고 머릿속 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본지 서울문화투데이 이은영 편집국장(2012.09.22)은 이경의 안무와 춤 <ZERO>에서 발산하는 통쾌한 에너지를 이렇게 표현했다. <ZERO>는 정중동의 춤언어가 전달해 주는 그 귀결점은 춤을 통해 관객에게 카타르시스를 안겨준다.
당시 언론과 평단의 호평을 받았던 안무가 이경은만의 독특한 발상과 구성의 리케이댄스 레퍼토리 작품인 <ZERO>를 다시 무대에서 만난다.

오는 12월2일(금)~3일(토) 양일간(8시,3시) 서강대 메리홀 대극장에서 올려지는 <ZERO>는 리케이댄스가 2000년대 초반부터 진행해왔던 숫자 프로젝트의 완결판이다. 2003년 평론가가 뽑은 젊은 무용가 초청공연 최우수 안무가상을 받은 <ONE>, 2005년 프랑스 르와요몽 재단 제작으로 키프로스 작곡가와 공동작업 <TWO>에 이어 2012년 창단10주년을 기념해 야심차게 올린 작품으로 그 기대치를 충족시켰다.
<ZERO>는 비워진다는 의미보다는 빈 공간 속에서 연속되는 자연의 파동, 즉 생성과 소멸, 성장과 귀환을 담아 채워질 때마다 비운다는 의미를 담아 무대에 올렸으며, 이 작품은 삶의 철학과 아름다움, 에너지 그리고 신비함이 깃들어 있는 보기 드문 수작(秀作) 이라는 평을 받으며, 리케이댄스의 저력을 보여준다.
기존의 무용작품들이 몸을 통해 다른 세계를 그리려 했다면, 리케이댄스의 <ZERO>는 우주의 질서가 담긴 몸의 세계 그 자체를 그려낸다. 숫자 0이 내포하고 있는 역사적 기원과 의미 등을 인문학적으로 탐구해 <공(空)의 세계>가 갖는 철학적 함의를 춤으로 말한다.

<ZERO>는 리케이댄스의 숫자시리즈 완결편에 걸맞게 한층 더 진지해지고 진정성 있는 춤의 세계에 다가간다. 다른 장치에 기대지 않고 ‘몸’이 중심이 되며, 텍스트의 설명 보다는, 이미지의 시적 표현, 몸의 조형미와 에너지 완급 조절로 보다 정교하고 과감한 표현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리케이댄스의 10주년을 기념해 만들어졌던 작품 <ZERO>는 2017년, 15주년을 앞두고 단체의 색깔과 나아가야 할 방향을 더욱 견고히 하는 공연이 될 것이다.
순수와 도발성, 중성적 매력, 적극적인 무대매너로 평단과 관객으로부터 예술성과 대중성을 두루 갖추었다는 평가를 받아온 이경은의 춤은 매 작품마다 진정성과 완전함을 보여주며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독창적인 안무발상과 파워풀한 춤이 특징이며 삶의 경험을 재치 있고 상징적으로 투영하며, 유쾌하면서도 사색적인 취향을 작품세계에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이경은은 관계, 숫자, 꿈, 우주 등의 주제를 동시대적 감각으로 그려내며, 여러 장르와의 공동작업을 통해 다양한 예술 요소의 혼재와 충돌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리하여 관객들에게 무용극, 음악극, 인스톨레이션이란 이름으로, 융복합 예술에 대한 경험을 선사하고 있다.
세계 무대는 이경은의 춤을 ‘불가사의하며 독특한 세계를 창조하고 있어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을 저절로 들게 했다(일본 월간 BALLET, 2002.9월)’, ‘절대적인 밀도, 진정성, 일관성, 명쾌함!(유럽 월간 DANCE EUROPE, 2004.5월)’ 으로 평한 바 있다.
격렬한 움직임들 뒤 객석을 등지고 다시 한 명이 가부좌를 틀고 고요의 세계로 침잠하며 막을 내리기까지 한 시간 동안 집중력을 요하면서도 색다른 장면들로 단조롭거나 지루하지 않게 구성했다. 이경은을 비롯해 신종철, 권령은, 나연우, 장혜주, 윤가연 등 무용수들 모두 개성있는 춤으로 완성도 있는 공연을 보여주었다.
문화평론가 강일중은 “작품 속에 삶의 철학과 아름다움, 에너지 그리고 신비함이 깃들어 있다. 극의 구성, 무용수들의 움직임, 조명, 배경 음악 및 음향, 의상 등 여러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요즘 보기 드문 수작(秀作)이다”이라고 이 작품의 완결성을 매듭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