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특정 작가 띄운’ 영국 한국문화원, 상처 입은 ‘아방가르드 선구자’김구림
①‘특정 작가 띄운’ 영국 한국문화원, 상처 입은 ‘아방가르드 선구자’김구림
  • 이은영 기자/임동현 기자
  • 승인 2017.07.10 19: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24초의 의미> 원로작가 김구림은 왜 ‘고별 인사’를 전했는가?

"이 나라에 올 때마다 저는 짓밟혔습니다. 뼈를 묻을 생각으로 고국에 와도 짓밟혔습니다. 80이 넘으면 이런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또다시 짓밟혔습니다. 이 나라는 왜 그리 저를 못살게 구는 겁니까? 내 나라가 싫어졌습니다. 지금이 고별인사가 될 지도 모릅니다"

▲김구림 화백이 주영 한국문화원이 개최한 '아방가르드 리허설' 전시의 부당성에 대해 기자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한국 아방가르드의 선구자'로 불리며 미술사의 한 획을 그었고 한국 최초의 실험영화 <1/24초의 의미>를 만들었던 김구림 화백. 80이 넘은 원로작가가 지난 10일 종로의 한 까페에서 기자들에게 이같은 말을 했다. 힘겨운 삶 속에서도 아방가르드에 대한 도전을 멈추지 않았던 김구림 화백은 왜 이런 하소연을 했을까? 대체 무엇이 그로 하여금 "내 나라가 싫어졌다. 지금이 고별 인사인 것 같다"는 비통한 말을 하게 한 것일까?

두권의 전시 안내 책자 중 한권은 김구림 이름 아예 빠져, 나머지도 무성의한 짦은 소개만

지난달 27일부터 영국 런던한국문화원에서는 한국 행위미술의 역사를 새롭게 조명하자는 취지로 런던 한국문화원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공동으로 기획 전시하는 <Rehearsals from the Korean Avant-Garde Performance Archive >전이 열리고 있다.

▲'아방가르드 리허설' 전시를 하고 있는 주영한국문화원 전경. (사진제공=김구림 화백)

주최 측은 보도자료를 통해 "60년대 후반과 70년대 한국 공연 예술 현장의 발전을 탐구한다. 한국 아방가르드 공연 아카이브의 리허설은 라이브 이벤트, 아카이브 자료 및 현대 예술 관행을 통해 비 서구의 공연 예술 역사를 다루는 방법에 중점을 둔다"고 전시의 의의를 설명하고 있었다.

이 전시에는 김구림, 이건용, 성능경, 이강소, 이승택 등 아방가르드 대표 작가들의 이름이 올라가 있었다. 그러나 정작 전시장에는 특정 작가들의 작품 위주로 전시가 됐고 퍼포먼스도 한 작가가 독점으로 진행하는 프로그램으로 이뤄졌다. 이들 중에는 작품이 전시됐는데도 불구하고 초청장조차 오지 않은 작가들도 있었다. 김구림 화백도 그 중 하나였다.

당시 김 화백은 전시초대는 받지 못한 상태에서 다른 개인적인 일로 영국에 온 상황이었다. 당초 문화원 측으로부터 아카이브 전시만 한다는 것으로만 들었던 그는 전시 현장을 둘러보러 갔다가 작품전시도 함께 이뤄지고 있는 상황과 마주하게 됐다. 더구나 자신과 단 한차례도 협의가 없었던 자신의 아카이브 관련 사진이 전시돼 있는 것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자신에게 작품을 출품해 달라는 말을 전혀 듣지 못했던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김구림 화백과 사전 협의가 되지 않은 '현상에서 흔적으로' 작품의 아카이브.(사진제공=김구림 화백)

이런 상황도 어처구니 없는데, 특정 작가 두 사람의 작품은 책자 표지와 앞면, 센터 두면에 걸쳐 퍼포먼스와 작품을 소개하고 개인전을 방불케할 정도로 넓은 공간에 수 많은 작품이 전시되고 대형 스크린을 통해 작가를 소개하고 있었다. 우연의 일치인지 이 두 작가는 국내의 내로라하는 3대 갤러리 중 한 곳이다.

김구림화백은 영국 테이트모던 미술관에 2점이나 소장 전시가 되어 있을 정도로 영국의 미술관계자 및 관련 전문가들에게 작품성을 인정받는 인물이다.

전시기획 단계부터 이 전시는 논란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전시 추진 당시 자료전을 한다는 구두 통보가 있었지만 작가들에게 전시 계획과 절차에 관한 아무런 공문이나 전시계약서가 없었고 이 때문에 작가들이 전시 오프닝에서 비로소 자신의 어떤 자료가 전시됐는지를 알게 됐고 실제 개막식에는 많은 작가들이 현장에 참석하지 않아 지금까지도 자신의 어떤 자료가 전시되고 있는지 모르는 상황이라고 한다.

이에 더해 개막식에 참석한 김 화백은 바로 그날 큰 충격을 받는다. 전시장에는 한국의 행위예술을 개척한 그의 작품세계에 대한 언급이 하나도 없었다. 한국의 아방가르드의 선구자라는 중요한 미술사적 의미는 축소되고, '백남준을 국제적으로 소개한 작가'라는 것을 부각한 내용이 눈에 크게 들어올 뿐이었다. 문화원에서 제작한 전시 안내 소책자에도 그의 이름은 딱 한 번 뿐이고 작품 이미지조차 한 장 실리지 않았다.

▲주영 한국문화원에서 제작한 전시 안내 소책자 중 1권. 특정작가의 작품으로 앞뒤 표지가 구성돼 있다. 이 책자에는 김구림 화백에 대한 소개는 작품 이미지 한 장 없이 간략히 소개돼 있을 뿐만 아니라 김구림 화백을 폄훼하는 확인되지 않은 내용까지 실려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타 작가에는 다 있는 약력과 소장처 조차 없는 안내책자, 허위 사실만 담겨

문화원이 제작한 소책자는 두 권으로 그 중 한권에는 김구림이란 이름은 아예 빠져있다. 나머지 한권에는 겨우 참여작가 소개에 나오지만 그의 작품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나 그가 한국의 아방가르드에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구체적으로 끼친 것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없다. 그 당시의 그가 아방가르드를 개척하기 위해 받았던 탄압의 역사에 대한 내용은 물론, 테이트모던 미술관에 작품이 소장됐다거나 초대 전시를 한 이력이나 약력 등은 일체 나와 있지 않았다.

대신 그 소책자에는 특정 한 작가의 작품 소개는 표지 앞 뒷면(무슨 이유에서인지 용호성 원장이 기자에게 보내온 책자 PDF자료에는 표지 사진은 빠진 채 보내왔다)과 내지 앞 면 두페이지에 걸쳐 퍼포먼스 안내는 물론 큐레이터의 글 내용에도 그 특정 작가를 부각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한국 작가들 속에 김구림이라는 이름은 그저 활자에 조그맣게 적힌 글자에 지나지 않았다. 더군다나 그의 작품은 작가의 동의도 없었던 아카이브 사진과 잡지에 난 기사들만 진열장에 전시돼 있었다.

▲주영 한국문화원에서 제작한 소책자 2권 중 1권. 심지어 이 책자에는 김구림 화백에 대한 소개는 단 한줄도 들어가 있지 않다. 표지 앞 뒷면 또한 위에 소개한 책자의 센터면을 차지한 특정작가의 작품이다.

그나마 작가소개가 나온 소책자에는 <1/24초의 의미>가 김구림의 작품이 아니라는 주장을 편 한 평론가의 글을 공공연히 실어, 이 전시의 목적을 의심케 했다. 이 책자에는 김구림의 작품이 최원영, 정찬승, 반대규, 정강자 등이 공동작업한 것을 김구림 화백이 그 필름을 가져와서 재편집해 자신의 작품으로 만들었고 저작권도 김 화백이 가지고 있다고 소개해 이 작품이 김구림 화백의 실제 작품이 아닌 것처럼 비쳐지게 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전시장에 소개된 <1/24초의 의미>에는 버젓이 작가명에 김 화백의 이름이 올라있다. 소책자에는 김 화백의 작품이 아니라고 하면서 정작 전시장에는 김 화백의 작품이라고 소개하는 모순적인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1/24초의 의미>가 김구림의 작품이 아니라고 주장했던 이는 미술평론가였던 故 김미경 교수. 문화원에 따르면 김 교수는 지난 2003년에 출간한 책 <한국실험예술>을 바탕으로 2015년 뉴욕 현대미술관과 도쿄 모리미술관에서 이미 이 내용을 발표했고 그 글을 전제로 책자에 실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김 교수도 작품의 저작권이 김구림 화백에게 있다는 것을 분명히 서술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여러 평론가들의 글 중에 하필 김구림 화백과 사이가 좋지 않았고, 작품을 만든 이가 김 화백이 아니었다고 주장한 김 교수의 주장만을 바탕으로 안내 리플렛을 만든 것은 의심의 여지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김화백에 따르면 김작가와 김 교수의 사이가 틀어진 것은 김교수가 1/24초의 의미를 서울시내 한 음악실에서 발표한다는 내용이 담긴 리플렛을 가져간 후 끝까지 돌려주지 않은 일 때문이라고 한다.당시 김 화백이 소장한 마지막 남은 발표 자료였기 때문에 김화백이 상당히 화를 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이 전시를 주관했던 주영한국문화원의 문지윤 전시팀장과 아시아문화의 전당 이아영 큐레이터들이 김 교수의 '라인'이었고 이 '라인'이 결국 '김구림 화백 죽이기'에 나선 것이 아닌가라는 의심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소책자에는 이번 전시에 참여한 젊은 작가들의 소개에 조차 작가의 전시 이력이 상당부분 실려있다. 그러나 김구림 화백의 소개에는 이러한 전시 내용은 단 한 줄도 실려있지 않다. 2015년도에 테이트모던에서 대대적인 전시가 있었던 내용 조차도 없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문화원 측은 문제가 된 소책자를 전면 폐기 처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김 화백의 약력을 기술하지 않은 안내책자에 대해서는 수정 여부를 아직 전하지 않고 있다. 뿐만 아니라 문화원 측은 이번 문제의 잘못은 책자의 최종편집을 맡은 캐나다 큐레이터 빅터 왕에게 있다고 주장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김구림 화백은 '빅터 왕의 실수가 아니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그 근거로 빅터 왕 큐레이터와 직접 이야기를 한 결과 빅터 왕 큐레이터가 상당히 억울해하고 있으며 그 이유가 '바로 '자신이 모르는 내용이 책자에 들어가 있다'며 이번 전시를 기획하고 실행한 큐레이터들과 이를 책임지고 있는 용호성 런던 한국문화원장이 빅터 왕 큐레이터에게 '떠넘기기'를 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실제로 본지 <서울문화투데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빅터 왕 큐레이터는 “나는 단지 도록과 전시가이드 내용에만 참여한 사람이고 김 작가와 접촉한 적도 없었으며 김미경 교수의 원고를 내가 넣은 적도 없다. 책자를 만드는 데도 많은 기여자와 편집자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이쯤 되면 과연 ‘누가’ 허위 사실을 책자에 기록하고 약력을 없앴는지가 문제의 핵심이 되어가는 상황이다.

▲안내 소책자에 실린 김구림 화백 소개 글. 활발한 활동을 펼친 최근의 전시 내용은 전혀 소개되지 않고 있다. 심지어 영국 내 테이트모던 미술관에 소장된 작품에 대한 소개도, 전시 이력도 전혀 없다. 더구나 김 화백이 미국에서 돌아와 첫 전시를 연 곳은 문예진흥원 현 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미술관에서 열렸다. 이 부분도 잘못된 자료를 옮겨다 놨다.

<2편에 계속> http://www.sc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47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