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특별칼럼-박양우] 문화가 넘실대는 한 해 되기를
[신년특별칼럼-박양우] 문화가 넘실대는 한 해 되기를
  • 박양우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교수, 전 문화관광부차
  • 승인 2017.12.29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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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양우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교수, 전 문화관광부차관

무술년 새해가 밝았다. 보통 한 해가 시작되면 많은 분들이 그 해의 소원을 가슴에 품거나 기도하곤 한다. 문화예술을 가르치는 내게도 한 가지 소원이 있다. 올해는 문화가 전국 방방곡곡에 강물처럼 흘러넘치는 그런 한 해가 됐으면 하는 소원이다. 

지난 정부시절 이른바 4대 국정기조 중에 문화융성과 국민행복이라는 게 있었다. 듣기만 해도 가슴 울렁거리게 하는 슬로건들이었다. 그런데 실상은 블랙리스트 사건에서 보듯이 문화는 난도질당하고 문화현장은 피폐해지고 말았다.

국민은 행복 대신 허탈과 분노와 스트레스로 불행을 감내해야 했다. 슬픈 역사 위를 거니며 살았다. 정치적 구호가 진실이 아닐 수 있음을 알았다. 아니 허망한 것임을 알았다. 그럼에도 민주주의 사회는 국민이 뽑은 정부와 함께 한다.

정부는 정당이 지향하는 정치철학의 바탕 위에서 운행한다. 그래서 진실이 아니거나 허망한 기대일지라도 정부의 정치 구호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촛불혁명으로 출범한 문재인정부는 지난 해 7월 국정운영 5개년계획을 발표했다. 5대 국정목표와 20대 국정전략 그리고 100대 국정과제가 발표되었다. 이 중 20대 국정전략으로 ‘자유와 창의가 넘치는 문화국가’가 제시되었다.

정말 이번 정부는 문화국가를 만들겠다는 말이 정치구호가 아니라 김구 선생이 그토록 염원하던 진정한 의미의 문화국가를 만드는데 큰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말았으면 한다. 

문화가 살아 있는 나라를 만드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예술가는 물론 정부와 기업과 국민이 함께 노력해야 하는 일이고 시간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문화정책의 목표를 제대로 인지하고 이를 위해 함께 노력한다면 문화국가는 얼마든지 현실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문화국가를 이룰 수 있을까.

첫째, 흔히 문화정책의 3대목표로 문화창조력의 제고, 문화향수권의 확대, 문화경제의 활성화를 든다. 이 중에서도 문화의 바탕을 이루는 문화예술의 창조력을 높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문화예술은 자유로운 창작이 기본이다. 정부는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 이른바 ‘팔길이 원칙’을 염두에 두고 아낌없는 지원과 자유로운 창작의 여건을 마련해 주어야 할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박근혜정부에서 일어난 블랙리스트 사건은 지원이 배제된 예술가들에 대한 개별적 범죄일 뿐만 아니라 문화국가가 되고자 하는 국가적 염원을 뿌리 채 흔든 국기문란 행위에 다름 아니다.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 앞으로는 예술가들이 자유롭게 창작에만 몰두할 수 있도록 정부는 물론 문화예술단체와 기업들, 그리고 국민들도 유념할 필요가 있다. 문화예술가들이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창작할 수 있는 나라가 되면 좋겠다.

둘째, 아무리 문화예술이 잘 만들어져도 국민이 즐기지 못하면 빛 좋은 개살구나 다름없다. 수준 높고 다양한 문화예술을 누구나 어디서나 즐길 수 있었을 때 문화국가는 이루어진다. 

그래서 이번 정부는 온 국민이 문화를 즐길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데 특히 신경을 써주면 좋겠다. 문화예술을 진흥시킨답시고 보기 좋고 큰 건물을 짓기보다 자그마하지만 마을 사람들이 참여하여 배우고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이를 지원하는 일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동네마다 동네 규모에 맞는 예술센터에서 다양한 문화예술활동에 손쉽게 참여하고 또 감상할 수 있으면 삶의 질 또한 풍성해지지 않을까.

셋째, 요즘은 문화가 단순히 국민의 향유 대상으로만 그치지 않고 경제의 주역이 되었다. 구태여 미래학자들의 말을 빌 필요도 없이 문화산업은 이미 세계에서 가장 큰 산업군이 되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의하면 세계 문화콘텐츠시장 규모는 2,000조원이 훨씬 넘어섰고, 국내 시장만도 100조원이 넘는 시장이 되었다. 문화가 밥 먹여 주냐고 비아냥대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문화가 밥 먹여 주는 시대가 된 것이다.

문화산업은 그 자체만으로도 미래의 주요 산업이 되었지만 한류의 예에서 보듯이 화장품이나 전자제품, 식품 등 다른 산업에도 파생효과가 커서 그야말로 나라의 효녀산업이 되었다.

문화산업은 문화적 요소를 소재로 창의성과 기술력을 통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산업이라고 할 때 창의력이 풍부하고 정보통신기술이 앞서 있는 우리에게 잠재력이 무궁한 분야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 우리나라의 문화산업이 더 수준 높고 다양한 콘텐츠를 갖추어 세계 방방곡곡을 누비는 날이 올 날도 머지않다고 본다. 물론 이 분야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제조업 이상으로 확대되어야 함은 말할 필요가 없다.

넷째, 앞에서 다룬 문화정책의 목표와는 좀 궤를 달리하지만 문화에 대한 정부의 인식이 완전히 변화되어야 할 것이다. 이번 정부는 대통령직속으로 4차산업혁명위원회를 설치하여 앞으로 다가올 4차산업혁명을 대비하고 있다. 이는 매우 잘한 일이다. 그러나 이 위원회 구성이며 다루는 의제를 보면 과학기술에 너무 경도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민간위원 20명이 대부분 과학기술 분야 인사들이고 정부위원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장관, 산업통상자원부장관, 고용노동부장관, 중소벤처기업부장관, 대통령비서실 과학기술보좌관으로만 구성되어 있다. 4차산업혁명이 과학기술의 변화를 다루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 과학기술에 담을 콘텐츠가 없다면 속빈 강정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콘텐츠 주무부서인 문화체육부장관이나 인력을 양성해야할 교육부장관은 물론 다양한 콘텐츠 관련 인사들이 함께 참여해 국가정책의 큰 틀을 짤 수 있는 조직으로 재구성되어야 할 것이다. 

다섯째, 위에서 언급한 것들보다 어쩌면 더 본질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는 국민의 정신과 문화에 대한 범정부적인 고민이 있었으면 좋겠다. 국가가 발전하려면 경제발전도 중요하고 정치발전도 중요하다. 그러나 더 본질적인 것은 국가의 역사의식과 국민의 정신이 이른바 선진국과 선진국민으로서의 자격을 갖추는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기구 하나를 설치한다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지만 그래도 대통령 직속으로 무슨 위원회를 둔다면 문화위원회 같은 것을 두어서 정신문화나 생활문화 등 다양한 문화 고양을 위한 범정부적 노력들이 선행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문화는 문화인류학적 견지에서 보면 한 사회가 가지고 있는 삶의 총체적 생활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새해에는 우리의 삶이 모두 평안하고 행복한 일상이었으면 좋겠다. 문화예술을 만드는 사람이나 이를 즐기는 사람 모두가 함께 웃을 수 있는 사회, 그런 나라가 되면 좋겠다.

그렇게 된다면 구태여 국민행복을 국정기조로 설정하지 않아도 국민은 행복해질 수 있다. 문화가 여기저기서 누구에게나 쉽게 즐겨지는 한 해, 그야말로 문화가 넘실대는 그런 한 해가 되기를 새해를 맞이해 간절히 기대해 본다.  

박양우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프로필
 ▲현 중앙대 예술대학원 예술경영학과 교수 ▲문화부공보관, 관광국장, 문화산업국장, 주뉴욕총영사관문화원장겸 영사,정책홍보관리실장 ▲대통령비서실 문화관광행정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