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특별칼럼-유시춘] 문화는 힘이 세다
[신년특별칼럼-유시춘] 문화는 힘이 세다
  • 유시춘 작가, 문화정책연구소 대표/ 전 국가인권위원
  • 승인 2017.12.29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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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시춘 작가, 전 국가인권위원

백범 김구 선생을 생각할 때마다 감탄하는 대목이 여럿 있지만 그 중에서도 으뜸은 그의 문화에 대한 선지적 혜안이다. 20세기의 새로운 도전에 직면한 조선이 그에 대응하는 응전세력을 구축하지 못한 결과로 제국주의의 먹잇감으로 전락하고 다시 국권을 회복할 때까지의 그 신산고초는 이미 알려진 바이다.

찬바람 맞으며 한뎃잠을 자면서 그가 꿈꾼 것이 다시는 식민지의 나락으로 굴러떨어지지 않을 강력한 군사력이었을 법한데 놀랍게도 그는 ‘나의 소원’이 군사대국도 아니고 경제강국도 아닌, 문화가 융성한 나라임을 고백한다.

제국주의가 지구상의 나라들을 남김없이 분점하던 20세기 이전까지는 국력은 오직 군사력으로부터 창출되었다. 20세기 이후는 여러 빈국들로부터 ‘경제동물’이라 비난받는 일본의 힘이 말해주듯 경제력이 국력을 결정하는 주된 동력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반도체산업이 생산한 모든 문명의 이기가 지구인의 가장 사랑받는 도구가 된 이후 ‘권력은 디지털에서 나온다’.

문화의 힘이 지금 인종, 국가, 종교, 성별을 넘어서 세계를 종횡무진으로 휘젓고 있다. 스페인 알함브라궁전 앞 매표소에 줄지어 선 유럽의 꼬마들이 한국인을 보고 ‘강남스타일’을 흥얼거리며  손목을 포개 보인다. 실로 놀라운 일이다.

'한류'의 중심에 우리 영화, 음악, 드라마, 문학, 체육 등이 자리잡고 있다. 요즘 여러 방송사에서 다투어 내놓고 있는 음악프로그램들을 감상하노라면 너무 행복하다. 빼어난 기량도 그러려니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을 무대기술이 그렇다. 이번 주에 개봉한 영화 ‘강철비’ ‘신과 함께’ ‘1987’을 보면 헐리우드나 유럽 영화보다 빼어나다. 스토리텔링의 구조, 재미, 세련된 미장센 등이. 

어느 누가 이 재미에 빠지지 않으리오?

한민족의 존재가 맨 처음 기록되었다는 ‘삼국지 위지 동이열전’에 ‘가무에 능한 부족’이라 함이 실로 수천년 전의 빈말이 아님을 실감하게 된다. 

권력이 군사력, 총과 칼에서 나오던 세기에 중국대륙을 제패했던 몽고족의 원나라와 만주족의 청나라 경우를 보면 문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체감할 수 있다. 몽골어와 만주어는 우리 한글과 같은 알타이어족에 속한다. 언어의 성격이 교착어란 점이 같다. 명사에 조사가 붙고 어간에 어미가 변화하며 붙는 속성이 같다. 

실제로 몽골에 가보면 외모가 우리와 거의 구별되지 않는데다 같은 말들이 여럿 있다. 머리 땋고, 고추와 옥수수를 꿰어 말리고, 성황당 돌무덤을 돌고 절하는 등 세시풍속 또한 비슷한 게 무척 많다.

그런데 동유럽까지 진출한 대제국 원나라는 지금 흔적이 없다. 중국대륙의 영토를 최대로 확장한 만주족 역시 마찬가지다. 중국 소수민족 55개 가운데 중에 하나로 존재한다. 중국의 주류인 한족에게 여러모로 하대받고 있다.

그들에게는 말과 글자, 문화의 흔적이 없다. 한족에게 동화된 결과이다.

우리의 한글은 몇 년 전에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 베스트 5에 뽑혔다. 한글은 우리의 신속하고 효율적인 과학기술진보의 기초를 이룬다. 한글은 한류를 생산하는 으뜸가는 기제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그토록 부러워하는, 문맹률 제로인 대한민국의 보배로운 자산이다.

‘이러매 눈감아 생각해 볼 때’ 21세기는 문화의 세기다.

한때 무력으로 대제국을 건설한 몽고족과 만주족과 달리 비록 일본제국의 식민지 나락으로 빠지기도한 작은 나라이지만 조선어학회 사건등으로 보듯이 우리는 우리 문화를 지켜내는데 진력했다. 말과 글은 민족혼의 거처다.

그것이 오늘 한국이 갖는 가장 센 힘이다. 김구선생의 선지적 혜안이 적확했던 것이다.

문화가 융성하고 다양성이 존중되는 사회. 

이러한 문화강국을 이루는데 국가가 할 일은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정책을 갖는 일일 터이다. 우리 조국이 더욱 문화강국으로 나아가기를 새해 떠오르는 이글이글 앳된 해에 빌어본다.  

■유시춘 작가 프로필
소설집 '우산 셋이 나란히.'
민주화운동기록집 '우리 강물이 되어'
'6월 민주항쟁'등 다수.
한국작가회의 상임이사
국가인권위 상임위원
문화정책연구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