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인터뷰/ 남정숙 전 성균관대 문화융합대학원 대우교수
특별인터뷰/ 남정숙 전 성균관대 문화융합대학원 대우교수
  • 인터뷰 이은영 발행인/정리 정상원 인턴기자
  • 승인 2018.02.12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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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은 남녀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존엄의 문제다”

여교수 최초 성폭력범죄 소송, 민사소송으로 1심 판결 정신적피해 700만원 배상 받아

가해자 이 모 교수는 여전히 강단에, 피해자는 해임, 부조리에 경종 울리고 싶어

정현백 여가부 장관, 당시 학교 측 입장 서서 "덮고 가자", 피해자 목소리 외면해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예술경영학과 석사, 성균관대학교 경영대학원 경영학과 박사. 국가, 지자체 문화콘텐츠개발 및 문화경영 컨설팅문화마케팅 최초 정책개발자 (2006년 문화부장관상), 지자체 및 문화기관 중장기발전전략 및 정책 컨설턴트융복합 콘텐츠 창작개발자(문화마케팅, Art Based Learning 등). 세계거리춤축제 ·익산서동축제 ·한-중 IEF 청소년 북경게임대회 등 35년간 한국 지역축제 총감독을 역임. 안동하회 별신굿 탈놀이 유네스코 등재 연구/유네스코아시아태평양 무형문화유산센터중장기 발전전략연구/국립아시아문화전당 아시아문화교류지원센터 중기전략/ 예술의전당 중기발전전략 연구 등. 우리나라 문화기획자 1세대로 꼽히는 남정숙 전 성균관대 (이하 성대) 문화융합대학원 대우교수의 대략의 이력이다.

▲ 남정숙 전 성균관대 문화융합대학원 대우교수

이러한 경력을 인정받아 남정숙 지난 2010년 성균관대에 교수로 초빙됐다. 이후 4차 산업의 필요성에 따라서 문화전문가로 문화융합대학원을 설립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나 남정숙 교수에게 지난 7년간의 시간은 악몽과도 같았다. 당시 성대 문화융합대학원 원장이었던 이 모 교수로부터 성추행을 당했고 이를 공론화하는 과정에서 학교와 재단, 여러 단체에게 호소했지만 묵살 당했다. 우여곡절 끝에 사건이 재판에 넘어가고 결국에는 1차 민사재판에서 승소했다. 겨우 산 하나를 넘은 셈이다. 그러나 가해자는 큰 타격 없이 여전히 교수라는 신분을 유지한 채 교단에 서고 있지만 피해자인 남 교수는 해고 당했다. 교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겠다는 평생의 꿈이 한 순간 물거품이 돼 버렸다. 관련기사 <문화계에서도 이어지는 미투운동, 남정숙 교수 문화계 미투운동 참여 독려>http://www.sc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5703

남 교수의 피해사실은 JTBC 방송을 통해 지난 30일과 31일, 이틀에 걸쳐 세상에 알려졌다. 그도 방송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자신과 같은 피해자가 더 이상 나와서는 안 되겠기에 용기를 냈다 한다. 그는 이번 서지현 검사의 'Me too' 운동이 들불처럼 퍼져가기를 소망한다. 서 검사처럼 ‘조직 보호’라는 명목 하에 피해자가 ‘죄인’이 되는 사회가 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 어느 듯 자신의 신념이 돼 버렸다고 했다. 특히 스승과 제자, 선후배 간의 위계가 강한 문화예술계에서도 용기를 내서 자신과 같이 목소리를 내주기를 바랐다. 'With You'로 기꺼이 함께 옆에 서겠다고.

1세대 문화전문가이자 문화마케팅 정책 개발자인 남 교수는 현재 본지<서울문화투데이>에 특별기고를 통해 문화계의 뿌리 깊은 먹이사슬 문제를 비롯, 문체부 산하 공공기관의 문제점에 대해 날카롭게 파헤치는 글을 연재하고 있다.

민사재판에서 승소한 하루 뒤 본지 사무실에서 남 교수를 만났다. 인터뷰 도중 여러번 눈시울을 붉힌 그는 아직도 그 때만 떠올리면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난다고 했다.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고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부조리한 상황이 너무 슬프다고 했다. 그는 정의와 인권이 바로 서는 나라, 문화계가 되기를 바란다고 힘주어 말했다.

우선 재판에서 승소한 걸 축하한다. 이번 판결의 의미를 꼽자면

1심에서 판결한 내용이 고무적이었다. 제시한 증거가 배심원에게 인정됐고 승소할 수 있었다. 성범죄 관련 소송은 여학생의 경우 많은데 여교수의 경우는 처음이라고 들었다. 여교수는 직장이라는 조직과 승진 등 자신의 자리로 인해 고소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설사 고소하려고 해도 마땅하게 고소할 기관이 없으며 고소한 사람만 매장당하는 분위기이다. 특히 사건이 공론화된 3년 전만 해도 권위주의문화가 팽배했던 이명박근혜 정권이라 조직의 희생보다는 개인의 희생을 요구하는 분위기였다. 이번 ‘미투’사건을 계기로 학교 및 문화계 성폭력사태가 사라지기를 바란다.

▲ 2011 아시아 문화주간 기획에 참여한 남정숙 교수

지금 드러나고 있는 서지현 검사 건을 보더라도 조직내에서 성범죄를 공론화하기까지 쉽지 않았을텐데.

사건이 불거지자 먼저 학교 측의 관계자들은 사건을 해결하기 보다는 무마하고 나중에는 은폐하려고 했다. 나중에는 가해자가 남정숙이 원장자리를 노리고 학생들을 사주한 사건으로 몰아간다는 내용도 들었다. 그 과정에서 운영위원인 나를 제외한 운영위원회의가 열렸고 그 자리에서 계약해지가 결정되었다.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총장과 재단 등에 알렸지만 모두 묵살 당했다. 도움을 요청한 민교협 측 정현백 교수(현 여성가족부 장관)는 학교의 위신을 떨어뜨리니 사건을 덮자고 주장했다. 사건이 불거지고 매스컴에 알려지자 연구실이 강제로 폐쇄되고 강의배정도 없이 1년 간 급여만 주고 학생들과 접촉하지 못하게 했다.

여러 차례 학교에서 징계위원회가 열렸고 녹취와 방송 인터뷰에서 학교 명예훼손과 교수로서 품위유지를 하지 못한 죄로 결국 1년 뒤 계약해지를 했다. 이 과정에서 같이 성추행을 당했던 여교수도 나의 해임에 동참했고, 내가 가르친 학생 2명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재판에서 거짓증언을 해서 절망하기도 했다. 그러나 거짓증언의 증거를 찾아내서 검찰이 기소를 하게 되어 위기를 넘기기도 했다. 한 달 후 민사소송 재판에서 승소했다. 형사재판은 아직 진행 중이다.

사실 묻기도 조심스럽다. 다시 떠올리기 싫겠지만 당시 사건에 대해 말 해 줄 수 있겠는지.

처음 이모 교수로부터 성추행은 2011년 4월에 일어났다. 당시 대학원 교수와 연구원들과 함께 봉평으로 MT를 갔는데 술을 먹고 키스를 시도하고 술자리에서 이 교수가 내 무릎에 머리를 베고 다리와 팔을 만졌다. 불쾌했지만 자리를 망칠 수는 없다고 생각해서 다른 방으로 피했다. 그 이후에도 밤에 자고 있는데 속옷 차림으로 이불에 들어오는 등 성추행을 당했다.(봉평MT사건) 강력하게 항의했지만 성추행은 계속 이어졌고 2014년 4월 4일 대학원 설립 첫 MT에서 학생들 앞에서도 껴안고 몸을 더듬는 등 성추행을 했다. 더 이상 못 참겠다 싶어서 크게 소리를 지르는 장면을 학생들이 목격했다.(문화융합대학원 설립 MT) 4월 18일에는 KBS아카데미 원장과의 식사자리에서 ‘첫사랑을 닮았으니 잘해드려라’ 등 성희롱을 했다.(KBS 아카데미 원장 미팅) 이후 이 교수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학생들의 신고로 여교수 성추행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평소 이 모교수는 어떤 사람이었나, 남 교수 이외에도 또다른 피해자가 있었다고 들었다.

동료교수였다. 2004년쯤부터 오랫동안 알고 지냈으나 처음 2011년 성추행을 시작하고, 이후 고발하기도 어려운 교묘한 직간접적인 성추행을 지속했다. 이 교수는 대학원 원장이자 학교에서 영향력있는 교수라서 밉보일 수는 없는 입장이었고 당시 비겁하다고 느꼈지만 침묵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후에 여학생들도 이 교수에게 성추행 당했다는 사실을 알고 학생들마저 당하는 것은 참을 수 없어 적극 공론화시키려 노력했다.

가해자인 이 모 교수에 대한 사후 조치는 어떻게 됐는가

문화융합대학원 원장 직위는 보직해임 당한 후 겨우 정직 3개월 처분을 받고, 다른 학과로 발령받아 정교수직위는 유지하면서 아직까지 교수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가해자는 경미한 댓가를 치루고 교직생활을 이어나가는 반면 내부고발자인 나는 해고당했다.

당시 대학원 내 대우교수란 어느 정도 신분을 보장 받은 직위인가.

정규직 교수로 가는 마지막 비정규직 교수 단계이다. 정기급여를 받고 계약도 형식상 존재할 뿐 거의 정교수랑 비슷한 직위이다. 나는 지난 12년 동안 비정규직 교수로 지내왔고 20여년 간 정규직 교수를 꿈꾸고 공부했다. 그런 과정에서 성균관대학교 문화융합대학원 설립을 위해 문화계 전문가를 찾았고, 학교 내 적임자로 선택되어 주도적으로 문화융합대학원을 설립하게 되었다. 설립하는 과정과 설립 후 운영위원회에서도 문화전문가는 거의 혼자였다. 문화융합대학원의 성공적인 설립으로 거의 꿈을 이룰 수 있는 환경이었으나 가해자가 학생들을 성추행하는 당하는 상황이 지속되자 참을 수 없어서 저항하게 되었다. 9부 능선에서 꿈이 깨어졌지만 지금도 후회하지 않는다.

▲ 강의하는 남정숙 교수

문화계 측면에서 이 사건을 본다면

내가 문화계에 몸 담은지 35년이상이 되었다. 1세대 문화전문가로서 여러 굵직한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많은 경험을 쌓았고 이를 인정받아 성대교수로 초빙됐다. 이후 4차 산업의 필요성에 따라서 문화융합대학원을 설립했고 운영했다.

전문가를 한 명 양성하는데 대략 20~30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겪은 사건은 가해자를 둘러싼 정치세력들에 의해 전문가로서 인정받지 못하고 개별적인 여성으로서 내쳐지는 구조이자 전문가를 관리하지 못하는 시스템의 문제다. 나의 해임은 한 사람의 교수가 박해받은 것이 아니라 전문성이 없는 사람들이 전문가들의 자리를 차지해서 분야를 엉터리로 만들고 자리와 지원금을 독차지하는 문화예술계와 비슷하다고 본다. 되풀이 되는 기득권의 적폐를 청산하기 위해서는 우리 문화예술계 전문가들이 제대로 자리를 찾아 가야하고 정치세력과 적폐들과 대응할 수 있도록 연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성폭력의 문제는 남녀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존엄의 문제이다

최근 서지현 검사가 JTBC 뉴스를 통해 검찰 내 추행사실을 폭로했다.(미투 운동) 남정숙 교수는 자신의 일을 알림으로써 어떤 개선점 있었으면 하는지, 특히 대학 교단과 문화계에서

사실 서지현 검사도 힘든 시간을 겪었다고 생각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내가 주목하고 싶은 부분은 ‘왜 내가 했던 공론화 시도는 모두 묻혔는가’이다. 나의 경우는 학교와 재단 그리고 단체에게 조직적∙구조적으로 막혔다고 생각한다. 만약 오래전부터 사회가 제대로 작동했다면 서지현 검사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조직의 이해관계 속에서 정당한 처벌과 공론화는 이뤄지지 않았고 서지현 검사를 비롯한 여러 피해자가 생긴 것이다. 문화계도 몇 년 전 몇몇 인사들의 범행이 드러나서 사회 문제화 됐지만 아직도 쉬쉬하며 말 못하고 속앓이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고 안다. 용기를 내서 'ME too와 WIth you' 운동에 적극 동참해 주길 바란다. 나도 그들의 옆에서 함께 돕겠다. 앞으로 후배들이 부당한 일을 겪고도 역으로 자신이 피해를 입는 일들이 생겨선 안 되기 때문이다. 또한 이번 일을 통해 조직 내 성범죄 관련 문제에 단호한 대처와 여성 인권이 개선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남교수의 모교인 성균관대민주동문회에서는 12일 오후 4시 명륜동 성균관대 600주년 기념관 앞에서 '성균관대 대학원 교수 성추행 사건의 진상규명과 올바른 해결을 위한 기자회견'을 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