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수의 무용평론]4월의 춤, ‘안느 테레사 드 케이리스마커’의 다원예술과 이지민의 ‘SEED’
[이근수의 무용평론]4월의 춤, ‘안느 테레사 드 케이리스마커’의 다원예술과 이지민의 ‘SEED’
  • 이근수 무용평론가/ 경희대 명예교수
  • 승인 2018.04.13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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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수 무용평론가/ 경희대 명예교수

2018년 본격적인 춤 시즌이 돌아왔다. 4월 첫 주 11개의 작품을 보았다. 국립현대미술관 전시실에서 열린 다원예술공연 외에 C2Dance 정기공연과 한국현대춤협회 12인전에서 본 10편의 현대무용작품들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이 2018년 다원예술프로젝트공연(김성희 예술감독, 3월~12월)의 일환으로 ‘안느 테레사 드 케이리스마커’(Anne Teresa De Keersmaeker, 1960~)를 초청했다. 그녀는 벨기에 로사스무용단의 설립자며 안무가다. 다원예술(Multidisciplinary Arts)은 음악, 무용, 미술, 연극 등 장르의 경계를 허물고 이들 요소들을 융합한 창작을 시도하는 새로운 예술트렌드다.

예술 간의 단순한 협업에 그치는 크로스오버 개념을 뛰어넘는 복합 혹은 융합예술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케이리스마커’의 한국방문은 2005년과 2015년에 이어 세 번 째다. 2015년 LG아트센터 초청으로 방한했을 때 그녀의 안무작인 ‘Drumming'(1998)을 보면서 미국 작곡가 ’스티브 라이히(Steve Reich)’의 동명 곡에 절묘하게 녹아든 로사스무용단의 춤사위에 매료되었던 기억이 있다.

이번 작품 역시 ‘스티브 라이히’ 음악을 시각화했다. ’파제(Fase), 스티브 라이히 음악에 대한 네 가지 움직임‘이란 긴 제목이 말해주듯 원작은 세 편의 듀엣과 한 편의 솔로로 구성되어 있다. ’케이리스마커‘가 직접 솔로 춤을 추는 ’바이올린 페이즈(Violin Phase)‘는 이 중에서 제3부에 해당된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지하1층 전시장에서 이틀(4.2~3)에 걸쳐 여섯 차례 공개된 16분에 대한 인상은 짧지만 강렬했다.  

무대는 미술관 내부의 박스형 평면공간이다. 흰 모래가 일정한 두께로 깔린 가로 세로 각각 10m 정도의 정사각형 형태다. 무대에서 한 발짝 쯤 떨어져서 관객들이 사방을 둘러싸고 앉거나 서서 춤을 기다리고 있다. 관객 틈을 헤집고 ‘케이리스마커’가 등장한다. 미색 긴 원피스에 은회색 머리, 동양여인의 체형을 닮은 50대 후반이다. 작달막한 몸매지만 날카로운 눈매가 예사롭지 않은 카리스마를 풍겨준다.

두 팔을 흔들며 좌우로 몸통을 180도 회전시키는 단순한 동작이 시작된다. 한 발 씩 내딛을 때마다 움직임의 족적을 따라 모래 판 위에 커다란 원이 그려진다. 원을 대각선으로 가로지르고 그 사이를 다시 한 번 가로지르면 원은 8개의 공간으로 분할된다. 반복적인 움직임가운데 가끔 한 쪽 발을 뻗어 모래를 차올리고 스커트를 걷어 올려 흰색 팬티를 노출하기도 한다.

간헐적으로 손가락으로 바닥을 터치하는 시늉은 단순한 음악의 변주라고 할 수 있다. ‘케이리스마커’의 춤을 무대에서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다. 무대 주위에서 숨죽인 채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는 2백 명 관객들은 공연을 구성하는 또 하나의 요소다. ‘스티브 라이히’의 단순하고 반복적인 음악과 공연무대로 변신한 미술관 전시실, 그녀의 족적으로 완성된 원형의 그림은 이곳이 바로 다원예술의 현장임을 알려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처음부터 음악은 언제나 나의 파트너였습니다. 춤은 시간이고 공간입니다. 음악은 거기에 프레임워크를 세워줍니다.”라고 그녀는 말한다. ‘뛰어난 음악성을 바탕으로 한 단순하고 반복적인 리듬감이’. ’바이올린 페이즈(Violin Phase)‘에서 다시금 확인하는 그녀의 춤 언어다. 관념적인 주제와 추상적 언어에 식상한 우리 현대 춤의 관객들이 왜 그녀의 춤에 쉽게 공감할까 하는 해답을 얻을 수 있는 공연이었다.

이지민의 ‘Seed’는 4월 공연에 알맞다. ‘Red Signal’(김정훈)과 함께 ‘C2 Dance 2018년 정기공연’(4.6~7, 대학로예술대극장)에서 선보인 작품이다. 투명한 비닐장막이 천정에서 바닥까지 길게 내려져 있다. 사이키델릭한 배경음이 무대를 가득 채운 가운데 비닐장막이 천천히 감아올려진다. 바닥에 접힌 부분들이 조금씩 펴지면서 싹이 트고 새 순이 돋아나는 봄철의 생명력을 느끼게 해준다.

문설주에 귀를 대고 봄 오는 소리를 기다리듯 듯 장막 뒤에 선 여인이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 무릎걸음으로 여인들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앉은 자리에서 앞뒤로 몸을 돌려 스쳐가는 상대방에게 소식을 묻기도 하고 때로는 서로 부딪치기도 한다. 봄을 기다리는 여인들의 조바심치는 모습들이 손에 잡히듯 선명하게 그려지는 모습들이다.

무대 뒤 벽면엔 커다란 달이 떠 있다. 달이 뜬 밤에 더 빨리 자라는 식물처럼 봄이 깊어갈수록 여인들의 관능미도 더해간다. 씨앗의 성장을 통해 여인들의 심리를 묘사한 안무가의 상상력이 새 봄처럼 신선하게 다가온 30분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