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혜의 도시조명 이야기]서울의 가로등,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백지혜의 도시조명 이야기]서울의 가로등,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백지혜 건축조명디자이너/ 디자인스튜디오라인 대표
  • 승인 2018.04.13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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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혜 건축조명디자이너/ 디자인스튜디오라인 대표

도시마다 그 도시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다양한 요소들이 있다. 광장이나 시청, 공원과 같은 장소도 그러하고 길의 넓이나 포장 그리고 택시나 버스 혹은 전차, 지하철과 같은 대중교통의 생김새도 그러하다. 조명디자인을 해서 그런지 나는 어느 도시를 가나 가로등에서 그 도시의 이야기를 발견한다.
 
북유럽 핀란드 헬싱키의 가로등은 현수등이 대부분이다. 도로가 그리 넓지 않고 차도, 사람도 많지 않아 과다하게 밝을 필요도 없을 뿐 아니라 가로등을 별도로 세울 공간도 넉넉지 않다. 가로등을 설치하기 위한 줄은 민간건물에 고정한다. 언젠가 프로젝트를 하면서 현수조명을 제안한 적이 있는데 민간 소유의 건물 외부에 공공의 가로등을 설치하는 데에는 관리주체부터 시작해서 민감한 일들이 꽤 많이 나열되어 여기저기 쭟아다니다 결국 무산된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특별하게 보인다.

핀란드의 디자인은 자연에서 보여지는 유기적인 선이 특징이다. 다양한 가로등의 모습도 하나같이 아름다운 곡선 형태를 갖고 있다. 예전에는 오렌지 빛 나트륨등이었으나 이제는 엘이디로 교체하여 하얀 빛을 내고 있지만 외부형태는 그대로 사용한다고 하였다. 광장이나 공원과 같이 시민이 모이는 곳은 더 화려하고 아름다운 가로등이 거리를, 공간을 비춘다. 그 가로등은 주간, 야간 언제 보아도 아름다운 오브제로 도시의 공원과 조화를 이룬다.
 
바르셀로나의 가로등은 예술이 입혀진 조명이라고 해야할지, 예술작품에 조명이 붙어있다고 해야할지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가우디의 건축양식에서 보여지던 재료, 형태가 그대로 도시의 공공재에 도입되었다. 시민보다 방문객이 더 많아보이는 바르셀로나의 밤거리가 제법 품격있어 보였던 것은 분명 가로등 때문이라고 믿는다. 좁은 도로에 사용된 가로등도 그 높이가 낮고 보다 단순한 형태이지만 주물로 디테일을 만들고 색을 입혀 그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다.
 
또, 가로등의 디자인은 어떤 도시에서 그 지역의 위상이나 기능을 이야기해주기도 한다.
로스엔젤레스가면 고급 주택가 비버리힐즈와 타지역의 가로등은 생김새나 마감, 설치 방식에 있어서 다르다. 가로등의 높이가 길의 너비보다는 담의 높이와 유관해 보이는 것도 재미있는 광경이다. 명품상점가 로데오거리의 가로등은 거리에 대한 정보가 없이 온 사람도 알아차릴 만큼 화려하여 허영스럽게 보이기까지 한다. 실내에나 사용하리라고 기대할만한 샨데리에 형태의 조명기구를 도로조명기구에 도입하였다.

한편, 프리웨이나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한 지역의 가로등은 우리에게 친숙한 서울의 가로등과 별반 다르지 않다. 가로등 헤드를 설치하기위한 튼튼한 가로등주 그리고 아무렇게나 뻗은 듯한 지지대, 일률적인 바가지모양의 헤드.

프랑스 남부도시 마르세이유는 예전부터 중부아시아와 유럽간의 교통요지로 오고가며 들르는 외국인들이 많은 도시이지만 가장 프랑스답지 않은 모습의 도시로 유명했다고 한다. 공기에서 향수냄새가 날 것 만 같은 파리나 남프랑스의 니스와 같은 도시와는 달리 항구는 낡고 지저분해서 관광객들을 실망시키곤 했다고 한다. 2013년 이 오래된 항구는 가로등 교체사업으로 밤이 아름다워 걷고 싶어하는 장소로 변모했다. 6개의 헤드가 회오리모양으로 타고 내려오는듯한 형상의 23m 높이의 폴은 항구를 밝게 비추어 밤에 안전하게 걸을 수 있는 장소로 바꾸었다. 이 가로등은 그 형태만으로 낮에도 열린 공간 항구의 볼거리를 제공한다.
 
도시의 야간경관을 위해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져야하는 것이 가로등, 보안등이다. 어머어마한 숫자와 도로마다 일렬로 줄지어 서있는 가로등은 강력하게 그 도시의 야간이미지를 그려낸다. 가로등, 보안등에 대한 업무는 자치구 혹은 시의 도로관련부서에서 담당하는데 자동차도로는 도로면의 밝기와 균제도가 중요하고 보행자를 위한 보안등 역시 안전을 위한 밝기와 빛공해 관련 조사방향이나 휘도가 중요하다. 물론 광학적인 기능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주간에도 그 수많은 가로등, 보안등이 여전히 존재하며 도시의 이미지 중 일부라는 사실이다.

광원을 엘이디로 교체하는 가로등, 보안등 사업의 제안서는 온통 광학적 기준을 충족한다는 내용뿐이다. 어쩌다 형태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면 어김없이 예산이야기가 나온다.

Los Angeles County Museum of Art에 가면 입구 광장에 가로등이 나열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Chris Burden의 Urban Light라는 작품이다. 1920~30년대 가로등을 모아서 만든 작품이다. 지금으로부터 거의 100년전에 사용하던 조명기구를 지금 쓴다 해도 전혀 구식이라고 말할 수 없는 디자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공공재가 예술작품으로 간주될 수 있을런지도 모른다. 그 시기 미국은 경제적으로 어떤 상황이었을까.. 과연 예산이 문제의 본질일까?

서울의 경관 개선을 위한 여러 가지 사업에서 가로등이나 보안등을 위한 예산을 들여다보면 처량하기 짝이 없다. 더욱이 공공에 적용 가능한 조명기구의 생김새에 조형미를 거론하는 것 은 사치며 세금을 낭비하는 주범으로 몰릴 소지가 다분하다. 서울이 명품경관을 자랑하는 도시가 되려면 건물, 공원, 광장, 거리의 포장 만큼 가로등, 보안등에 대한 다른 시각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