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美뇌腦창創 칼럼 2] 개성의 바탕과 개성의 탄생
[미美뇌腦창創 칼럼 2] 개성의 바탕과 개성의 탄생
  • 고리들 화가/미래학자
  • 승인 2018.06.29 15:18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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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리들 화가/미래학자

저번에 집단의 신뢰자본이 개개인의 창조성으로 연결되므로 사회조각이 필요하다는 글을 썼는데, 이번에는 개인들의 창조성에 이르는 징검다리라고 볼 수 있는 개성에 대해 쓴다.

최근 몇 달간 건강과 인문학을 다루는 ‘약그시바’라는 팟캐스트를 녹음하고 있는데, 이번 주 주제가 딸꾹질이다. 세상에는 68년 동안 딸꾹질을 한 사람도 있는데 그렇게 딸꾹질을 멈출 수 없게 된 기원은 무엇일까?

물리학을 전공한 생물학자 ‘막스 델브릭’의 명언은 딸꾹질과 개성의 기원을 설명한다. ‘모든 세포는 물리적인 현상보다는 역사적인 현상을 나타낸다.’ 급한 숨을 쉬자마자 성문이 기도를 급하게 막고, 또 갈매기살로 잘 알려진 횡경막이 반복적으로 수축하는 현상은 공기호흡과 아가미 호흡을 동시에 하는 올챙이가 자주 하는 짓이다.

어려서 수면에 조그만 입을 대고 공기방울을 따가는 올챙이를 자주 보았다. 평생 가장 많이 본 동물이 파리와 올챙이일 것이다. 딸꾹질이 우리가 올챙이와 비슷했던 양서류 시절을 기억하는 현상이라는 글을 보자마자 수면 위 공기와 뽀뽀를 하던 작은 올챙이들이 보였다.

사람에 따라 아직도 올챙이 적 기억을 깊이 간직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아주 오래 딸꾹질을 멈출 수 없다. 사람들은 각각 진화의 기억을 간직한 정도나 부분이 다르다.

반면 우리 DNA는 수정란이 된 이후 아빠와 엄마의 세포에 쌓인 온갖 역사적 사연을 지우는 DNA 세탁을 한다. 임신 6개월 전에 담배를 끊으라는 산부인과의 권고가 있는 이유는 난자와 정자가 성인의 최근 삶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그런 기억들을 수정란 직후에 지우게 되는데 이는 그 아이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주기 위한 신의 섭리이다.

물론 그 가능성을 태교가 망치는 경우가 많다. 어쩌면 인간의 개성은 수정란의 가능성이 얼마나 망가져서 나오는가가 결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수정란의 재프로그래밍은 주로 난자 속에 들어있는 염색체 이외의 것들(미토콘드리아 등)이 하는데, 이는 발생반복설로 설명되는 의도적 원시화 과정이 DNA의 지속성에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정자보다 10만 배나 무거운 난자는 정자를 만나자마자 어린 수정란을 다시 바다에 떠다니는 하나의 원시세포로 만들고자 노력한다.

그렇게 씨(정자)보다 밭(난자)이 더 중요하다는 것은 이미 과학으로 증명되었다. 난자가 수정란 초기에 하는 저 리모델링 과정은 2012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안겨준 성체유도만능줄기세포(iPS)를 만드는 과정과 같은데 아직까지 성인의 체세포로 iPS를 만들 수 있는 확률은 0.1% 정도라고 한다. 황우석 박사팀의 논문조작은 너무나 낮은 확률 때문에 시간에 쫒기다가 했을 것이다.

정리하자면 우리의 생물학적 개성은 원시바다의 단세포일 적부터 올챙이처럼 생존하던 시기를 지나며 고생했던 기억을 DNA에 갖고 태어나며, 다시 부모의 눈물겹도록 슬프거나 세상을 다 가진 듯 기쁘기도 했으나 보릿고개를 견디며 세포에게 고된 기억을 남기는 후성유전학적 오염이 쌓인 DNA를 엄마 뱃속에서 지우고자 노력하지만 다 지우지 못해서 생긴다. 어쩌란 말인가! 이것이 우리 개성의 바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의 난자가 우리 DNA를 많이 초기화 해준 노력 덕분에 우리는 그나마 멀쩡한 몸으로 태어나서 부모의 질병도 유전되지 않도록 안전장치를 달고 태어나, 자기 한계를 벗어난 후천적인 노력과 우연히 만난 스승들과 애인들과 자식들이 주는 변화무쌍한 자극들 덕분에 자기 DNA를 새롭게 바꾸며 살고 있다.

인간의 두뇌와 DNA는 후천적으로 변할 수 있는 가소성을 풍부하게 갖고 있다. 다만 고정관념의 정도에 따라 변화의 폭이 정해질 뿐이다.

우리 DNA는 수많은 다양한 기법을 시도하며 창작에 수십 년 애쓰다가 지친 화가의 사물함에 숨겨진 놀라운 재료들이다. 나이든 화가는 과거의 멋진 스타일과 썼던 재료들을 잊어버리곤 한다. 그 재료들을 어린 손자가 창고에서 발견해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개성의 탄생은 그렇게 자기 가능성을 의심하지 않는 어린아이의 호기심(로맨스)을 필요로 한다. 개성(스타일)의 탄생은 우리가 자기 두뇌와 DNA와 체질과 성격과 인품과 실력 등이 바뀔 수 있다고 믿고 노력하는 만큼 어떤 놀라운 아름다움(뷰티)에 도달하게 된다.

러셀은 로맨스(호기심) 없이 스타일(개성)을 만들 수 없고 스타일 없이 뷰티(아름다움)에 이를 수 없다는 말을 남겼다. 개성의 성공은 그 호기심의 방향과 호기심을 푸는 행동방식에 있다. 아이들의 진로지도는 그들의 현재 호기심을 최대한 고려하며 과정을 밟아야 좋다. 그래야 두뇌와 DNA의 가소성이 가장 유연한 상태에서 최대한의 변화를 이끌어 낸다.

<중용>의 가장 핵심적 문구는 그런 뜻이라고 본다.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 솔성지위도率性之謂道 수도지위교修道之謂敎’ 다양한 천과 다양한 틀이 결합한 빈 캔버스는 우리의 선천적 바탕이며 솔성과 수도는 후천적 노력일 것이다. 빈 캔버스에 어떤 색의 바탕을 깔고 어떤 구도를 잡고 무엇을 그릴 것인가?

우리 몸과 마음에는 다양한 물감과 화구가 준비되어 있다. 호기심과 야망의 색, 권력과 부귀의 물감, 사랑과 질투의 터치, 호감과 적대감의 테레핀, 공격과 방어의 나이프를 써가며 개성은 완성이 되어간다.

아니다! 개성은 완성이 될 수 없을 것이다. 팔리지 않은 그림을 꼭 다시 꺼내서 손보다가 전혀 다른 그림으로 바꿔버리곤 하는 나처럼 우리의 개성은 죽기 전까지 계속 변해갈 것이다. 두뇌와 DNA가 변해갈 것인데 별 수는 없다.

이미 뿌린 물감이 굳었을 때, 칼로 도려내느니 덧칠을 선택하는 화가의 그림처럼 초기의 구도는 잘 바뀌지 않는 면도 있다. 그러다가 자기 삶이 도저히 봐줄 수 없는 그림으로 변해갈 때, 스스로 날카로운 칼을 들어 그동안 쌓인 물감들을 걷어내어 바닥에 버리기도 한다. 그렇게 삶을 덧칠하기도 하고 혁명하는 사람들도 있다.

개성의 탄생에 대한 연구에서는 이타적인 소속감의 욕구와 이기적인 자존감의 욕구가 후천적 개성을 만든다고 한다. 다시 말해 사랑하고 사랑받고자 하는 노력을 하다가, 또 이기고 싶고 더 잘나고 싶어서 경쟁하다보니 어떤 관계 속으로 들어가서 어울리게 되고, 또 편을 가르고 공격과 방어를 하다 보니 우리 두뇌와 DNA가 그 관계와 그 편에 맞게 바뀌게 된다는 얘기다.

이는 ‘매슬로우’가 말한 인간의 욕구발달 단계에서 자아실현의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 먼저 필요한 두 가지 욕구라는 기초공사에 관한 얘기이다. 누구랑 소속감을 느끼고 어디서 어떻게 자존감을 느낄 것인가?

우리는 자아실현이라는 막연한 꿈을 위해 누군가와 친구가 되고 누군가와 경쟁을 해야 한다. 그러다가 그렇게 우리 개성의 기초에 뿌려진 시멘트가 점차 굳게 된다. 왜 공무원은 공무원답게 보이고 작가는 반항아처럼 보일까? 교사는 사람들을 교실 속 아이들과 비교해서 해석하곤 한다. 그러다보면 속담처럼 똥개가 선생님의 똥을 피하는 지경에 이른다.

선천적 개성 DNA에 직업병이라는 후성유전체가 달라붙는다. 진정 자기다운 개성의 성공은 그렇게 쉽지가 않다. 솔성과 수도가 쉽지 않아서 <중용> 첫 구절에 적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