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수의 무용평론] 콜라보의 원조, 서울발레시어터의 2018 신작, ‘Colla.B’
[이근수의 무용평론] 콜라보의 원조, 서울발레시어터의 2018 신작, ‘Colla.B’
  • 이근수 무용평론가/경희대 명예교수
  • 승인 2018.06.29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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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근수 무용평론가/ 경희대 명예교수

콜라보레이션(Collaboration)이 요즘 무용공연의 대세다. 무용과 다른 예술장르간은 물론이고 한국무용 현대무용 발레 등의 분야구분도 흐려진 채 협업이 일반화되고 있다.

1995년 김인희 • 제임스 전에 의해 창립된 서울발레시어터(Seoul Ballet Theater; SBT)는 ‘현존(BEING) I'과 ’현존 II’를 연이어 발표하면서 발레에 록 음악을 도입하고 뮤지컬과 춤의 결합을 시도하는 등 신선한 충격을 던져주었던 것을 기억한다. SBT를 콜라보의 원조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과천시민회관 상주단체로 활동해온 서울발레시어터가 최진수와 전은선을 새로운 감독진으로 맞으며 2018년 신작을 선보였다(6.16, 과천시민회관 대극장). ‘Collaboration + Ballet’를 줄여 제목을 ‘Colla, B’로 정했다.

장혜림(한국무용), 이나현(현대무용), 박귀섭(발레), 김희정(재즈댄스), 4명의 안무가가 서울발레시어터의 무용수들과 스태프를 공동으로 활용하면서 집단 속의 개인 혹은 사회제도 속의 인간이란 공통적인 주제를 각각 25분의 시간 내에서 풀어냈다.

주관단체의 자원을 공동으로 활용하면서 동일한 주제, 또는 동일한 시점에서 복수의 게스트 안무가들이 독립적인 작품을 만들어가는 제작형식이 매트릭스(matrix)조직구조다. 외부안무가 한사람에게 단원들을 통째로 내주는 국립무용단 식 협업과 구별되는 제작방식이다.

장혜림은 ‘장미의 땅(Land of Rose)’에서 이라크와 시리아 여성들로 구성된 쿠르드 여전사(GULISTAN) 이야기를 춤으로 풀어낸다. 회교 율법에 의해 사회적으로 차별받는 여성들이 위기에 처한 국가를 위해 군인이 된다.

“죽음이란 무엇인가? 죽음이 나를 두려워하는데 내가 왜 죽음을 겁내겠는가?”란 당돌한 질문을 내세우며 군 집단 내에서 이루어지는 혹독한 훈련과정을 그려낸다.

훈련 중에 둥그렇게 둘러앉은 그들은 발레슈즈를 돌려가며 냄새를 맡기도 하고 전쟁이 끝난 후 각자의 꿈을 나누기도 한다. 짧은 바지, 숨 가쁜 음향, 일사불란한 동작들이 긴장되고 타이트한 무대를 구성한다. 심연, 침묵, 숨그네 등 수작을 통해 차세대 안무가로서의 입지를 확실히 다졌던 장혜림의 재능을 다시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

이나현의 ‘Anonymous(익명)’는 권력을 가진 집단 속에서 개인이 정체성을 드러내지 못한 채 익명으로 살아가야하는 상황을 그려낸다. 개인은 약자이고 희생물이며 전체를 굴러가게 하는 부속품일 뿐이다.

대중사회 속에서 고독한 인간의 존재라 할까. 제도 속에서 누군가 하나가 지적되면 그는 집단에서 분리된 채 손과 발의 자유를 잃고 단체적인 폭력의 희생물이 된다. 흰색 가운을 입은 집단과 색깔이 다른 한 사람의 운명, 우리 사회에서 흔히 벌어지는 왕따 현상이나 온라인상에서 네티즌들에 의해 공공연히 자행되는 마녀사냥이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시류에 물들지 않으면서 컨템퍼러리 현대무용의 중진 안무가로 성장한 이나현이 현 세태와 예술계를 바라보는 날카로운 시선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박귀섭의 ‘Shadow 2-4’엔 선율(旋律)이란 부제가 붙어 있다. “인간은 본인의 선율로 살아가는가, 아니면 만들어진 선율에 맞추어 살아가고 있나?” 작품이 던지는 질문이다.

현대사회에서 개인은 끊임없이 촬영되고 감독되고 지시받는 존재다. 개인 간 차이는 사라지고 정형화되고 규격화된 사람들만이 살아남는다. 박귀섭은 그러한 패턴에 저항하며 개성적인 삶의 방식을 고집하는 예술가를 이야기한다.

검은 정장의 사람들이 음표가 되어 오선지 위에 기계적으로 찍혀진다. 기계적인 음표 배열만으로는 창조적인 작품이 탄생할 수 없다, 개성이 필요하고 창의성이 요구된다.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를 거쳐 사진작가로 변신한 독특한 경력을 가진 박귀섭이 사진작가답게 탁월한 영상구성을 통해 자신의 첫 번째 안무작을 빛나게 했다.

김희정의 ‘Near Light’는 발레무용수와 재즈댄스의 콜라보 무대다. 재즈댄스의 절도와 재즈음악의 화려함이 연결된 무대는 테크닉이 강조됨으로써 전체적으로 뮤직비디오를 보는 듯 했다. 사회 속의 개인이라는 공통적인 주제에서 빗겨난 것도 아쉬웠다. 무용예술에서 재즈댄스의 정체성이 무엇인가란 의문을 남긴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