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혜의 조명이야기]서울 보타닉 공원의 밤산책
[백지혜의 조명이야기]서울 보타닉 공원의 밤산책
  • 백지혜 건축조명디자이너/디자인스튜디오라인 대표
  • 승인 2018.11.04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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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혜 건축조명디자이너/디자인스튜디오라인대표

뉴욕에 가면 센트럴파크가 있다. 남북으로 4km, 동서로는 1km 정도, 약 34만 평방미터의 도시공원이다. 고층빌딩이 빼곡이 들어선, 약간이라도 전망이 있으면 월임대료가 적어도 100불 이상은 차이가 나는 도심 맨해튼에서 센트럴파크는 많은 사람들에게 회색건물의 삭막함을 잊게 하는 좋은 도시의 경관자원이다.

공원에 심겨진 50만그루의  나무는 도시의 허파가 되어 양질의 공기를 내뿜어 이른 아침 그리고 이른 저녁시간에는 산책, 조깅하는 사람, 풀밭에서 요가하는 사람들로 붐빈다. 주말엔 맨해튼에 거주하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인근 도시에서 자연과 문화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몰려든다. 문화행사나 모임, 운동, 놀이, 명상, 조용한 산책등 센트럴파크는 도시민의 여가에 필요한 모든 공간을 제공한다.

그러나 이러한 공원이 해가 지고 어두워지면 기피공원이 된다. 걸어서 혹은 자전거로 공원을 가로지르며 상쾌한 출근 발걸음을 했던 사람들도 밤엔 다른 루트를 통하여 귀가한다. 밤에 센트럴 파크를 가도 되냐는 관광사이트엔 되도록 탈 것을 이용하라는 권유를 한다. 덧붙여 가능한한 여럿이 같이 움직이고 주변에 사람이 없거나 어두운 공간은 재빨리 피하라고 한다.   

1980년대 수백건에 달하던 범죄율이 1990년대, 2000년대 들어 몇십건에 불과하게 줄어들었으며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도시 중의 하나’라고 하면서도 센트럴파크의 밤산책은 권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왜 밤에 센트럴 파크에 가지 않냐는 질문엔 간단하게 답한다. 새벽 1시~6시는 이용금지이니까 라고.

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환경설계기준에 가장 중요한 원칙은 ‘잘 보이도록 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게 하기 위하여 장소를 시각적으로 개방하는 것과 더불어 밝기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 때의 밝기의 기준은 주변보다 지나치게 밝아 불필요한 주의를 사지 않아야하며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관찰 가능할 정도로 밝아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혹은 날 예정인지가 집중없이 관찰되어야 한다.

센트럴 파크의 범죄를 줄이기 위하여 더 많은 cctv를 설치하고, 보안등의 폴에 경고벨을 설치하였으나 적정한 밝기가 확보되지 않는 한 대부분의 cctv는 무의미하며, 경고벨 -  혹은 부녀안심벨 - 과 같은 사후처리용 설치물은 예방보다 그 효과가 미비한 것이다.

2016년 12월 센트럴 공원 일부 구역에서 보안등 on/off의 오작동이 일어나 밤새도록 보안등이 켜져 있었다고 한다. 아마도 사용이 통제되는 새벽1시 이후에는 꺼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나보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에 대해 ‘누구 혹은 무엇의 오류인가’에 대한 논의는 곧 ‘왜 모든 조명을 꺼야하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옮겨갔다.

지난 10월11일 서울 마곡동에 위치한 보타닉공원이 가오픈했다. 2014년 공원설계를 시작, 2015년 착공 그리고 2018년 10월 가오픈을 하여 - 정식 오픈은 2019. 5월이라고 한다 - 약 5년만에 그 모습을 만나게 되었다. 서울식물원이 포함된 주제원 외에 열린숲, 호수원, 습지원등 4구역으로 나뉘고 식물원을 제외한 대부분의 공간이 24시간 개방된다.

지난 글에서도 몇 번 언급했듯이, 도시공원이기에 식물의 생장보다는 도시민의 안전을 더 우선시 했기에 국립공원 혹은 다른 나라의 도시공원보다는 빛이 많은, 밝은 공원이 되도록 계획한 부분은 없지 않았다. 가오픈을 몇일 앞두고 최종 상황점검을 위하여 현장을 돌면서 이제까지의 공원과는 다른 야간 빛환경이 조성되었다는 평가를 했다. 편안하게 걸을 수 있는 공원길, 아름다운 빛패턴을 즐길 수 있는 거리, 낮은 빛으로 어둠과 어우러진 수변등 그동안 공원에서 무의식적으로 보안등을 나열하며 간과했었던 밤의 표정이 담겨, 빛이 주는 감동을 즐길 수 있는 공원이 되었다며 관계자들이 대부분 ‘잘 되었다’라는 평가를 내렸다.

설계자의 입장에서 안타까운 부분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설계이후 실현단계에서 발전된 시스템을 적용한 것에 대해 감사했다. 사람들의 통행이 뜸한 시간은 빛을 줄이고, 사람의 움직임을 감지하여 다시 밝게 함으로서 에너지소모를 줄이고 식물에 미치는 광해도 줄일 수 있는 스마트라이팅시스템은 당시에는 안정적이지도 경제적이지도 않아 계획하지 않았는데 현장에서 검토하여 적용을 한 것이다. 조명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여 이렇게 장기간 공사하는 프로젝트는 설계내용이 구닥다리가 될 수 있는데 현장에서 이러한 지원을 해주니 감사할 따름이다.

이러한 노고에 감사를 드리며 부분적으로 밝기를 줄이고 싶은 구역이 있다는 뜻을 밝히니 관계자는 손사래를 친다. 안전을 위해 더 밝게 하자는 의견을 겨우 설득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부분적으로 고즈넉한 산책길, 특별히 빛에 민감한 나무에 대한 배려도 필요하니 집중할 필요 없이 관찰이 되는 범위에서 빛퍼짐의 범위를 조정하고, 밝기를 줄이는 것은 안전을 위협하지는 않는다고 설득하고 내년 정식오픈까지 보완해보자는 반쪽의 허락을 받아냈다.

때마침 나무가 옷을 벗고, 해가 일찍 지는 계절이라 낮보다는 밤에 공원을 즐기려는 사람이 많을 듯하다. 겨울동안 안전하고 아름다운 야경을 즐길 수 있는 공원으로 시민의 사랑을 받고 내년 5월, 서울 보타닉 공원이 정식 오픈에는 서울로가 그러했듯이 시간이라는 옷을 입고 풍성해진 나무로 채워진 서울 보타닉 공원의 모습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