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美뇌腦창創 칼럼 6]드로잉 수업의 놀라운 부작용
[미美뇌腦창創 칼럼 6]드로잉 수업의 놀라운 부작용
  • 고리들 '두뇌사용설명서'저자
  • 승인 2018.11.04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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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들 '두뇌사용설명서'저자

종이나 캔버스 안에서 인간이 잠시 신이 된 느낌이 드는 드로잉이나 창작은 무에서 유를 만들면서 두뇌를 키운다. 360도로 열린 동시적 공시적 다의성은 인공지능 AI가 가장 하기 힘든 사고방식이다. 그래서 지금 공교육 체계에서 가장 효과적인 인공지능 대비 교육이 예체능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직장에서 승진하는 사람들은 어려서 예체능과 가까이 한 상류층 자녀들이었다는 미국의 보도가 있었다. 곧 다가올 인공지능과 인간지능의 영역이 분명히 구분될 미래를 위해서는 논리적 토론보다는 시적이고 예술적인 토론을 더 자주 하는 것이 좋다.

그래서 미술비평에 가까운 하브루타 예술토론을 권한다. 예술활동을 매개로 하브루타를 한다면 어른과 아이가 상호존중감을 간직하면서 장시간 대화가 가능하다. 학교의 주요과목인 국영수사과로 하브루타를 하려면 아이의 배경지식이 충분해야 하지만 예술은 오히려 부모의 창의성이 떨어지므로 정말 하브루타의 본질인 친구처럼 대화하기가 가능하다.

이때 부모도 자기 작품을 만들면서 대화를 하는 것이 중요한데 아이가 그리거나 만드는 주제와 다른 작업을 한다면 대화는 더 풍성해진다. 각자 높은 성취감을 가지지만 경제적 이익과 상관없는 예체능활동은 미래에 대량실업 사회가 오더라도 자존감을 유지시켜서 다음 기회를 잘 잡게 도와준다.

예체능은 행복한 백수로 생활하다가 기발한 창업과 창직을 하는 청년으로 길러준다. 창업을 하는 청년들의 공통점은 열린마음과 기회포착력이다. 열린마음은 평가는 없고 격려와 기쁨과 인정만이 있는 창작의 경험이 만든다. 그리고 열린마음은 멀리서 다가오는 작은 기회를 먼저 보게 한다. 최근 ‘알리바바’의 ‘마윈’은 그림을 그려 경매하기도 했는데 ‘마윈’은 어려서부터 그림을 연마했다. ‘애플’의 ‘스티브잡스’는 대학 자퇴 후, 창업 전에 청강했던 서예와 서체디자인 수업에서 퍼스널컴퓨터의 운영방식을 만들 영감을 얻었다고 고백했다.

2015년에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은 ‘오무라 사토시’는 전형적인 몸으로 배우는 산만형 학생이었다. 그는 중학교에서는 축구선수였고 고등학교에서는 스키선수였다. 당연히 명문대는 가지 못했고 ‘야마나시’ 대학을 나와 야간공고 교사를 하며 기름때를 묻히고 공부에 전념하는 학생들에게 감동을 받은 후, 대학원에 진학하였고 이후 유학을 갔는데 30대에 본격적인 공부를 시작했다. 그는 산만한 ADHD형의 두뇌일수록 BDNF가 오래 유지되며 25세 이후에 집중력이 좋아진다는 두뇌연구에 딱 맞는 두뇌의 소유자이다.

어려서 움직임을 좋아하는 산만한 아이는 25세 이후부터 본격적인 공부를 하면 기존의 산만한 체험들이 두뇌를 더 아웃박스(Out-Box)형으로 만들면서 연결하여 개발하는 C&D 능력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더 큰 성공을 한다. 그만큼 교실 밖의 다양한 경험이 생각과 연구의 연결고리가 되어 성공하는 사업과 성공하는 연구의 영양분이 되기 때문이다.

반면 어려서 일찍 뭔가에 집중을 잘하는 자폐성향의 인박스(In-Box)형 두뇌들은 일정 범위 안이나 이미 데이터가 축적된 분야에서 성과를 내기 좋은 두뇌이다. 그런데 인공지능이야말로 인박스형 두뇌의 고수이므로 미래에는 아웃박스형 사고에 능한 사람들이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으면서 노벨상을 타거나 혁신적 창업을 할 가능성이 높다. 바로 그런 두뇌유형인 ‘오무라 사토시’의 수상소감은 ‘스티브잡스’가 외친 ‘Stay foolish(더 배우기+무모한 모험)’를 떠오르게 한다.

"성공한 사람들은 실패에 대해 언급하지 않지만,
 보통사람보다 얼간이 짓을 더 많이 한다. 하고 싶은 일을 하라."

‘오무라 사토시’는 특허 수입으로 고향에 미술관을 선물했는데 자기 돈 50억 원을 썼다. 노벨상급 과학자가 왜 자기 고향에 미술관을 선물했을까? 이 책에서 자주 말했지만 예술과 과학은 상보관계이다. 예술이라는 봄이 오고 싹이 터야 과학이라는 가을이 오고 열매가 열린다. 확산적 사고를 돕는 활동이 예술이고 수렴적 성과가 과학이다. 예술이 아이디어라면 과학은 디자인이고 발명품이다.

한국의 리더들은 일본의 한 과학자가 금의환향하여 미술관을 선물한 이유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예술이라는 씨앗은 결국 과학이라는 열매를 맺는 힘을 갖고 있으며 사회개혁이라는 꽃을 피우기도 한다. 예술비평가 ‘존 러스킨’은 옥스퍼드대에서 미술교수도 했는데, 그는 지속가능한 생명의 경제학을 주장한 사회개혁사상가였다. 그는 화가였다. 그런데 어두운 사회경제적 모순을 보게 된 그는 불혹의 나이에 사회사상가로 활동하게 된다.

필자의 동양 멘토는 ‘묵자’이고 서양 멘토는 ‘존 러스킨’이며 예술 멘토는 ‘요셉 보이스’이다. 이 3인은 예술과 선善이 사회적으로 실현되는 것을 목표로 삼고 강한 의지로 바로바로 실천한 공통점이 있다. 목숨을 걸기도 했다.

‘러스킨’의 경우에는 ‘간디’와 ‘톨스토이’도 ‘당대 최고의 사회개혁가’라고 평했는데, 러스킨은 드로잉(소묘)을 사물에 대한 관찰과 사유의 밀도를 높이는 유용한 수단으로 보았고 일반인들도 적극적으로 배울 것을 권장했다. 즉 고도의 사유를 위해서는 사물을 관찰하고 그리는 연마가 필요함을 주장했다. <존 러스킨의 드로잉>이란 책을 보면 그림들마다 생각의 방법이 다른 것을 볼 수 있다.

드로잉은 자신과 타인의 관점과 동시에 사물의 변화를 인지하고 상상하는 작업이다. 예술은 나이를 불문하고 어떻게든 깊고 넓은 사유의 원동력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