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중강의 뮤지컬레터] ‘금란방 2’가 만들어져야 하는 이유
[윤중강의 뮤지컬레터] ‘금란방 2’가 만들어져야 하는 이유
  • 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 승인 2019.01.18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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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서울예술단 창작가무극 ‘금란방’은 매우 독특했습니다. 서울예술단의 기존 작품과는 꽤 달랐습니다. 코미디를 지향한 희극이란 점이 마음에 끌립니다. 연말에 어울리는 작품이었습니다. 많은 걸 생각하기보다는, 웃고 즐기면서 감동이 함께 하길 바라는 심리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작품입니다. 
 
금란방은, 몰리에르 희극을 염두에 두고 만들었다고 하죠. 연출(변정주)이 밝혔듯, 몰리에르의 단막 '날아다니는 의사'를 참고를 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선 억지 의사, ‘팔자 좋은 의사선생, 할 수 없는 의사가 되어, 마음에도 없이 의사가 되어 등으로 번안되었지요.

이 작품이 ‘의사 가운’을 통해 소동이 일어나는 것처럼, 금란방에선 매화장옷, 곧 매화가 그려진 장옷이 그런 대상물이 됩니다. 

금란방’은 조선시대의 클럽이죠. 술이 금지된 조선에서 술을 차(茶)로 위장해서 마시는 공간입니다. ‘금란방’은 또한 사회적으로 풍기가 문란한 것을 단속하는 관리를 말하기도 하죠. 이 작품에서 ‘금란방’은 이런 두 가지 의미를 지니면서 전개됩니다. 박혜림의 극본은 일단 재미있었습니다. ‘

그런데 조선에서 몰래 술이 오가는 힙플레이스가 ’금란방‘인데, 정작 작품에선 술이 어떤 특별한 매개가 되진 않고 있더군요. 작가에게 허를 찔린 기분이 들기도 했습니다. 작품이 또 만들어진다면 술에 관한 에피소드도 뜻깊게 설정했으면 합니다. 이런 면에서도 ‘금란방 2’는 만들어지길 바랍니다. 

금란방은, 보는 시각에 따라서 매우 다른 평가를 할 소지가 많은 작품입니다. 극본이나 연출 면에서 특히 그렇죠. “배우와 함께 좋은 작품을 만들고자 힘을 기울였구나!” 이렇게 연출의 노력을 인정하면서도, 작품의 ‘양식적 틀’은 결국 연출의 책임인데, 전체적으로 정교하게 구축되지 못했기에 아쉽습니다. 

‘금란방’이란 작품을 제작하는 과정에선 ‘마당놀이’ 혹은 ‘마당극’의 변별성을 의식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마당놀이와 같은 작품을 제대로 알면, 오히려 그것은 산뜻하게 결별한 작품이 나오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마당놀이의 무대 구성이나 인물 구축을 통해서 더 효과적으로 표현될 장면들이, ‘이도 저도 아닌’ 덧붙임처럼 지나치는 장면도 있었습니다. 

‘금란방’에 온 여성들이 집안에서 남성들의 억압을 표현하는 장면이 내겐 특히 그랬습니다. 마당놀이는 이런 장면에서 굳이 관객에게 친절하지 않지만, 이런 장면을 통해서 작품을 ‘입체적으로’ 만들어주죠. 마당놀이에선 이런 장면이야말로 관객을 빵빵 퍼지게 하는 폭소 장면입니다. 이름하여 한국의 전통극의 ‘부분의 독자성’이 살아나는 대목입니다. 

제작진 여러분, 연출과 작가님. 절대 오해는 마십시오! 나 또한 ‘금란방’이 마당놀이가 되는 걸 절대 원하는 않는 일인입니다. 다만 ‘금란방’이 더 재미와 의미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면, 또한 작품 속에 등장하는 작은 캐릭터도 모두 생기있게 존재하길 바란다면, 그간의 마당놀이의 ‘노하우’를 잘 참고했으면 합니다. 그래야 뛰어넘고, 또 다른 게 나올 수 있겠죠? 

이 작품을 보면서, ‘시집가는 날’(오영진 원작)을 떠올렸습니다. ‘금란방’과 ‘시집가는날(맹진사댁경사)’의 주요한 네 배역은 상통합니다. 금란방에서 딸의 혼인에 민감한 아버지 김윤신(김백현, 최정수)이 있는데, 이는 맹진사댁경사의 맹진사와 성격과 행동에서 통합니다. 

맹진사댁경사에 갑분과 입분이 등장을 하는 것처럼, 금란방에는 매화(송문선)와 영이(이혜수)가 등장을 합니다. 각각 양반의 딸이고, 딸의 몸종에서 일치합니다. 그리고 양반의 딸의 상대자에 대한 설정도 비슷하지요. 뭔가 알 듯 모를듯한 베일에 쌓인 인물이라는 점에서, 미언과 윤구연(김용한, 강상준)이 동일선에 놓고 비교하게 됩니다. 

맹진사댁경사와 금란방이 이런 비슷한 설정으로 출발하나 확실하게 다른 성취가 있다면, 그건 맹진사댁경사의 입분과 금란방의 영이가 비슷한 환경 속에서도 매우 다른 행동을 취한다는 점이지요.

한마디로 ‘영이’는 ‘자기주도적 인물’입니다. 오직 선한 마음 하나만을 가지고 양반과 혼인을 하게 된다면, 영이는 때로는 ‘발칙하더라도 해피엔딩’을 추구하는 인물입니다. 

이 작품을 보면서, 뜻밖에 만난 캐릭터는 ‘이자상’(김건혜)이었습니다. 금란방의 이자상, 다시 말을 바꾼다면, 서울예술단에 김건혜라는 배우가 있었기에, 이 작품을 살아났다고 생각합니다. 

이 작품이 성공했다면, ‘이자상 = 김건혜’가 8할의 몫을 했다고나 할까요? 작품(연출)적으로 정돈되지 못하거나, 스토리(극본)적으로 해결되지 못한 것이 보입니다. 이런 것을 모두 대단치 않게 보이게 하는 건, ‘금란방 = 이자상’이라는 등식이 성립할 수 있을 정도로, 새로운 캐릭터를 구축해냈다는 점입니다. 

이자상이라는 역할, 김건혜라는 배우가 맡은 역할은 ‘전기수’ 역할이었습니다. 전기수는 조선의 이야기꾼이었죠. 작품 ‘금란방’에선 특별한 언급은 없지만, 이자상은 ‘남장여자’입니다. 나는, 김건혜라는 배우가 남장을 한 전기수로서 매우 적절한 수위로 캐릭터를 잘 만들어냈습니다. 크게 박수를 칩니다.

김건혜 배우 혹은 이 작품을 만드는 제작진들은 ‘여성국극’과는 연관이 깊지 않을 텐데, ‘여성국극에서 남성’ 캐릭터를 잘 가져왔습니다. 여성국극의 ‘신파성’과는 결별하면서, 적절한 ‘남성성’을 잘 취했습니다. 

금란방을 몇 차례 보면서, 이자상 혹은 김건혜에 반한 관객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여성국극은 현재 크게 활동하지 못해 아쉽지만, 일본의 ‘다카라즈카’는 지금도 큰 인기를 누리고 있죠.

타카라스카의 남성역이 지금도 계보적으로 이어지면서 큰 인기를 끄는 것처럼, 앞으로 이자상이라는 역할과 김건혜라는 배우가 대한민국의 뮤지컬에서도 그렇게 자리매김할 가능성을 볼 수 있습니다. ‘금란방 2’와 같은 작품이 만들어진다면 말이죠. 
 
김건혜님, 당신이 만들어내는 이자상의 또다른 모습을 계속 보고 싶습니다. 이번 ‘금란방’에선 이자상 자신에 대한 내용은 전무합니다. 작품 속에서 당신이 풀어낸 ‘요세인연 (曜世因緣)의 스토리를 통해서 당신을 짐작하게 되었지요. 어떤 흥미로운 미스테리를 풀어가듯, 이자상이란 인물 스토리가 앞으로 탄생되길 기대합니다. 

술잔을 들고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자상! 나는 ’금란방‘의 마지막 장면을 잊지 못합니다. 클럽의 아래에선 모든 사람이 춤추고 노래할 때, 당신은 이들의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았습니다. 만약 금란방이 영화라면 멋진 클로즈업이 되겠지만, 무대에서 이 장면이 크게 드러나지 못해 아쉽습니다. 

대한민국에선 오늘도 많은 뮤지컬이 공연되지만, 작품의 캐릭터를 유형화시킨다면, 그 종류는 많지 않습니다. 이자상은 유일무이한 캐릭터인지 모릅니다. 서울예술단이 금란방을 통해서 이런 캐릭터에 파고들면 어떨까요? 이번 작품을 본 관객 중에서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팬층이 있을 겁니다. 

서울예술단의 ’창작가무극‘은, 이제 매우 확실한 캐릭터를 기반으로 해서, 점차 뚜렷한 장르 하나를 만들어 가야 하는 건 어떨까요? 이자상이란 캐릭터와 김건혜라는 배우를 통해 훌륭한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2019년 연말, ’금란방 2‘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