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방에서 듣는 박정수의 미술이야기
골방에서 듣는 박정수의 미술이야기
  • 박정수/미술평론가, 갤러리스트
  • 승인 2010.09.08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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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혀지지 않는 거짓말은 참말이다

 

당신을  사랑합니다.얼마나  듣기 좋은 말인가. 자식을 사랑하고, 이성  친구를 사랑하거나 불륜을 저지르는 과정에도 꼭해야 하는 말이다. 하지만 어른들이 사는 세상에서 이 말을 얼마나 믿을 수 있을까.

결혼 10년이 넘은 많은 부부는당신을  사랑해라는  달콤한 거짓말을 입에 달고 산다. 진심으로 오가는 부부도 있겠지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말이 아닌 것을 알면서도 그 사랑이 진심이라고 억지로 믿는다. 안 믿으면 난리난다. 그것은 거짓이 아니라 사실을 위한 사실이다.

거짓말의 발명(The Invention Of Lying)이라는 영화가 있다. 거짓말이 무엇인지 모르는 나라에서는 감언이설(甘言利說)도 없고, 사랑을 위한 사탕발림도 없다. 거짓말이 없기 때문에 진실도 없다.   

텔레비전은 거짓말을 잘한다. 텔레비전이 무슨 생명이 있어 거짓말을 하랴만은 나오는 인물들이나 사건들을 직접 접하지 못하기 때문에 텔레비전에다 하소연 할 수밖에 없다.  미녀 대중스타들은 통과의뢰라고 하면서 <맨얼굴>을 보여준다. 수영 후, 혹은 아침에 부스스한 얼굴을 보여주는데 아무리 봐도 화장발이다.

드라마에 나오는 주인공의 성격은 너무나 좋다. 얼굴 되지, 몸매 되지, 성격 좋지 뭐하나 부족한 부분이 없다. 하지만 그 드라마 주인공이 아닌 사람으로서 그 사람의 성격 아주머  같을수  있다. 싸우기도 하고, 때리기도 하고, 음주운전 하기도 한다. 그들도 사람이기 때문이다.

위작은 거짓말을 잘한다. 미술품이 무슨 입이 있어 거짓말을 하랴만은 미술품을 구매하는 거짓 사람과 거짓판매자를 통해 진짜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 위작으로서 위작이 아니라는(진품)것을 증명하는 작품 감정서를 첨부하는 <센스>, 5천만 원짜리를 천만 원 밖에 안 간다는 파격적 <할인율>, 보존 상태며, 감정서며, 작품의 소장 경로(누구의 손에 있었는가 하는 경로는 작품 매매 시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를 밝히는 <친절함>까지 갖추고 있다.

위작으로 판매되는 미술품의 성격은 너무나 좋다. 부족한 부분이 없다. 하지만 그 진짜 같은 가짜는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이 서로 필요에 의해 만나는 아주비합법적몤만남일 뿐이다.

우리나라의 짝퉁 명품가방은 짝퉁이 아니다. 너무나 많은 숫자의 짝퉁이 있기 때문에 그러려니 하고 만다. 가짜가 판을 치면 가짜가 아니라 그냥 그러한 것이다.

짝퉁 미술품도 있고, 사이비 미술품도 있고, 가짜 미술품도 있지만 짝퉁 화가는 없다. 사이비 예술가, 가짜화가도 없다. 예술품이 서툴지 모르지만 예술은 항상 우아하고 품위 있다. 화가는 자신의 작품에 수많은 진실을 담는다. 거기에 감상자들이 위선을 담고 가짜를 담는다. 가짜를 담을 수 있는 미술이 오히려 더 좋은 미술품이 된다. 

거의 20년 전(사실은 16년) 진품을 소각시킨 적 있다. 당시 인기가도를 달리던 원로화가의 작품 이었다. 그런데 두서너 달 후 똑같은 작품이 세상에 탄생한 것이다. 재료며, 기법이며 사인이며 두 작품이 거의 같아 진위를 밝히기 힘든 상황이었다. 두 작품 중 한 점은 반드시 위작이어야 했다.

곡절 끝에 내가 판 작품을 파기하였다. 남아있는 그 작품은 영원히 진품이다. 미술품은 가짜기 유통되면 곤란하다. 가짜를 사고파는 것은 사이비 협잡꾼들의 문제이지만 가짜가 시장에 나와 진짜인척 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 미술품이 예술이고 예술은 문화인 이상 가짜가 진짜인 척하면 문화가 가짜 되고, 역사가 거짓으로 포장된다.

위작 미술품이 있다면 어느 누군가의 손에서 영원히 세상의 빛을 보지 않아야 한다. 제발 밝혀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유독 누군가에게서만 위대한 진품으로 남아야 한다. 위작은 달콤한 거짓말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