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방에서 듣는 박정수의 미술이야기
골방에서 듣는 박정수의 미술이야기
  • 박정수/미술평론가, 갤러리스트
  • 승인 2010.09.30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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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소원(화가)

 

네 소원이 무엇이냐고 하느님이 물으시면 나는 서슴지 않고, ‘내 소원은 잘나가는 화가요.’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 다음 소원은 무엇이냐고 하면 나는 또, ‘우리나라에서 젤 잘나가는 화가요.’할 것이요, 또 그 다음 소원이 무엇이냐 하는 세 번째 물음에도 나는 더욱 소리 높여서, ‘나의 소원은 우리나라에서 완전 잘나가는 것이요.’하고 대답할 것이다.

화가는 부자를 꿈꾼다. 부자 화가도 있지만 그림이 잘 팔리기 전까지는 몹시 가난한 생활을 영위한다. 자신의 작품이 최고의 수작으로 인정받길 원하며, 자신의 작품이 비싼 가격오로 거래되길 원한다. 현재가 그렇지 않다하더라도 언젠가 그렇게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살아간다. 우리나라의 위대한 정치가이며 독립 운동가였던 백범선생이 요즘에 활동하는 화가였다면 저러한 말을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저런 그림으론 도저히 승산 없어!’, ‘실력은 무슨 개뿔’, ‘다른 직업 갖는 편이…’전시장을 관람하면서 많은 화가들은 이런 말들을 속으로만 한다. 입 밖으로 꺼낼 수도 없고, 꺼내는 순간 그 사람과는 평생 원수 된다. 이런 그림을 그리는 분들이라도 자신의 작품이 언젠가는 최고의 영광을 누릴 수 있다는 믿음으로 오늘도 작업실에서 물감과 붓을 들고 치열한 예술싸움에 임하고 있다.

자신이 비록 남의 작품을 보고 이런 말을 할지라도 자신의 작품을 보고 이런 말을 한다는 사실은 꿈도 꾸지 않는다. 매주 수많은 전시가 열린다. 미술 관계자들은 서로를 잘 알고 있으면서 자신의 위치와 입장은 절대로 모른다. 자신의 그림은 우아하고 품위 있고 격조가 있는데 아직 세상이 알아주지 못할 뿐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이 알아주는 그날을 위해 오늘도 화판 앞에서 고민과 번민의 시간을 갖는다.  

“저는요. 절대로 팔리는 그림 안 그립니다.”는 말을 젊은 화가에게서 간혹 듣는다. 정말로 팔리는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분의 제자가 되고 싶다. 그리기만 하면 팔리는데 세상 무서울 것 어디 있는가. 예쁜 꽃을 그린다고 팔리는 것이 아니고, 풍경화를 그린다고 무조건 팔리는 것 아니다. 파는 그림을 그릴 것인가, 그려진 그림을 팔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많다.

그렇지만 이건 고민꺼리도 아니다. 모든 그림은 파는 것이며, 팔려야 살아가는 화가의 삶이 유지된다. 젊었을 때야 아방가르드네 실험미술이네 하면서 경제관념과 전혀 상관없이 살아도 부모가 먹을 것 주고, 친지가 입을 것 준다. 나이 들어서도 그런 일을 할 수만 있다면 권장하고 싶다. 나라에서 집을 주고, 기업에서 밥을 준다면야 무슨 일이든 못하겠는가 말이다.

작품 한 점에 5천만 원이 넘게 잘 거래가 이루어지는 화가의 작품은 4천만 원에 금세 팔리지만 한 점에 300만원에도 잘 팔리지 않는 화가의 작품은 50만원에도 안 팔린다. 화가가 그림을 팔지 않겠다면 다른 일을 해서 그림을 그리는 취미로 전락할지 모른다. 자신의 예술을 팔기 싫어할 수는 있어도 예술품을 팔지 않으면 곤란하다.

미술과 미술품은 엄연히 다르기 때문에 미술을 팔지 않겠다면 할 말은 없다. 미술품을 사고파는 장사행위는 작품 활동의 신성한 영역이다. 억울하면 국가가 예술가 먹여 살리는 곳에 가고, 그것이 힘들면 스스로 나라를 건설하면 된다. 화가가 그림 파는데 능숙해도 곤란하지만 외면해서도 안 된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자본주의 사회다.

예술은 감동이라 하였다. 지금 당장 자신의 아내와 남편에게, 자신의 부모님께 그림을 보여드리자. 말로서 설득하고, 자신의 예술관을 전달해보자. 그럼에도 본인과 가장 가까운 사람조차 감동하지 않는다면 심각하게 미래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