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man Library] 가상x가상=예술, 낯섦으로 진리를 보다

2025-01-15     독립기획자 김아영

   우리는 본질적으로 해석되고 구성된 세계 속 살아가고 있다. 라캉의 이론을 빌리자면, 우리가 접하는 세상은 언어와 기호를 통해 이해하는 상징계로 구성되어 있다. 상징계는 인간이 의미를 부여하고 소통하는 공간이지만, 본질적 진실과는 거리가 있다. 그 속에 담긴 진정한 실재는 직접 경험할 수 없는 차원에 존재하며, 삶의 토대를 이루는 돈, 직업, 국가 등도 결국 인간이 만들어낸 가상의 체계일 뿐이다.

  그럼에도 이 가상은 우리의 삶 속에서 현실로 자리 잡았다. 인류는 자연의 두려움에서 벗어나고자 가상의 체계를 만들어냈고, 이에 몰입하기 위해 무던히 노력해 왔기 때문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현실은 인간의 손길이 닿은 만큼 불완전하다. 이 불완전함은 최근 우리의 사회에서 더욱 선명히 드러나고 있다. 마무리 지을 틈 없이 황급히 지나가 버린2024년은 신뢰가 흔들리는 제도와 관계망 속에서 현실의 가상을 돌아보게 한다. 우리는 이 가상을 받아들일지, 아니면 다시 질문하고 재구성할지 선택해야 한다. 

  예술은 이러한 불완전한 현실을 다시 한번'표현'한다. 가상 세계 안에서 이루어지는 표현은 그 자체로 이 현실의 일부이며, 필연적으로 사회적 맥락과 시대적 정신을 담아낼 수밖에 없다. 결국 모든 예술 행위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 명의 구성원으로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인류의 최초 예술 작품이라 불리는 동굴벽화는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당시 인간들이 사냥과 생존을 둘러싼 믿음과 염원을 시각적으로 기록한 것이었다. 이는 집단적 기억과 세계관의 표현으로, 인간이 자신과 세계를 연결하려는 노력을 담아낸 최초의 흔적이었다. 그 속에는 당시 인간들의 삶과 사회가 담겨 있다. 예술은 그 태초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자기표현의 과정이자,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 시대를 드러내는 방법이었다.

  또한, ‘표현한다’는 행위는 현실을 해체하고 재구성한다는 것이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진과 영상 예술마저 우리가 보고, 만지고, 느낄 수 있는 세계와 온전히 동일하지 않다. 데리다가 주장한 바와 같이, 촬영 버튼을 누르는 순간 카메라에 기록되는 세상은 시간의 지연으로 인해 본질적으로‘죽은 것’이 된다. 따라서 그 속에 담긴 모습은 있는 그대로의 것이 아니라, 버튼을 누른 누군가의 의도와 시선이 담겨있다. 의도가 담겨있다는 것은 현실을 새롭게 조합했다는 점을 증명한다. 이러한 점에서 모든 예술, 표현 행위는 가상의 가상이라고 정의할 수 있겠다. 

   가상에 가상을 덧댄 예술은 때로 이해하기 어려운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는 오히려 진리로부터 멀어지는 것 같이 느껴지기도 하나, 가상에서 두 걸음 멀어진다는 것은 그 어딘가에 위치한 진리에 한 걸음 가까워지는 과정이기도 하다. 즉, 바로 그 낯섦이 예술이 가지는 깊은 의미와 가치를 더해준다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과 그 안에서 겪는 모든 경험은 고정된 사실이 아니다. 예술은 이를 해체하고 재구성하며,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점들을 낯설게 만들고 익숙했던 것을 새롭게 바라보게 한다. 이러한 자극을 통해 인간은 사유가 강제되고, 이미 익숙한 사회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가질 수 있다. 이렇게 예술은 가상의 가상으로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는 발견할 수 없었던 진실과 진리를 마주하게 한다.

  이 시대를 살아내는 하나의 생명체로써 나를 나타내고, 이 시대를 나타내는 힘. 해체와 재구성, 낯섦의 과정을 통해 우리의 사유를 불러일으키고 주체적으로 진리에 도달할 수 있도록 하는 그 가상의 힘. 우리가 만들어내고 또 이에 따라 다시 한번 그 힘을 받는 상생 관계. 우리가 놓친 진리를 다시금 들여다보고, 세상을 비추는 거울로서, 예술은 끊임없이 우리를 사유하게 만든다. 

  어쩌면 2025년을 맞이하는 지금, 우리는 예술을 통해 불완전한 현실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해야 할 때에 이르렀다. 가상에 가상을 더한다면 그 크기가 커질 뿐이지만, 가상에 가상을 곱한다면 전혀 다른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 단순한 중첩이 아닌, 기존의 가상을 분해하고 다시 조합함으로써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한 진실을 드러낼 수 있다. 예술이란 바로 이러한'가상의 제곱'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지금 우리는 현실을 받아들일지, 아니면 새로운 시각으로 재구성할지를 선택해야 한다. 예술은 이러한 선택의 순간에 빛을 발한다. 그것은 우리에게 거울이자 나침반이며, 새로운 길을 제시하는 도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