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Interview] 강화자 베세토오페라단장 “메트로폴리탄 울려 퍼질 ‘우리 오페라 ’ 꿈꾼다”
[Special Interview] 강화자 베세토오페라단장 “메트로폴리탄 울려 퍼질 ‘우리 오페라 ’ 꿈꾼다”
  • 이은영 발행인ㆍ진보연 기자
  • 승인 2024.06.17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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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 여성 오페라 연출가 등 최초 수식 많아, 1997년 ‘베세토오페라단’ 창단
메조소프라노에서 오페라단 단장을 거쳐 지휘자까지…“음악은 나의 원동력”
“오페라는 노래 중심의 종합예술 ‘극’, 성악가도 연기ㆍ움직임 트레이닝 필요”
“많은 자금 필요로 하는 오페라 제작, 민간 오페라단에도 정부 지원과 민간 후원 미치길”
6.21~22, 모차르트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공연

[서울문화투데이 이은영 발행인ㆍ진보연 기자] “초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 양지 녘에 비바람 긴 세월로 이름 모를 비목이여.”

6월이 되면 쉽게 들을 수 있는 가곡 ‘비목’이, 지난 12일 베세토오페라단 사무실에 울려 퍼졌다. 오페라 무대를 화려하게 수 놓았던 강 단장이 가곡을 부르자, 우리 고유의 정서를 묵직하면서도 섬세하게 감싸 안았다. 강 단장의 목소리로 들은 ‘비목’은 전주가 되어 본격적인 인터뷰의 시작을 알렸다.

강화자 베세토오페라단장은 1970년 고 김자경 단장에게 발탁되어 오페라 ‘아이다’의 암네리스 역을 통해 메조소프라노 데뷔 무대를 치렀다. 이후 강 단장은 성악가, 오페라단 단장 등을 역임하며 단순 성악가를 넘어서 예술 경영인으로 후학 양성과 오페라계 발전을 위해 힘썼다. 1980년에는 국립오페라단의 ‘삼손과 데릴라’ 무대의 프리마돈나 강화자를 교수로 데려가기 위해 서울 소재의 수많은 음악 대학에서 러브콜을 보냈고, 이후 강 단장은 연세대학교에서 20년간 교수로 재직했다. 

▲강화자 베세토오페라단장이 오페라 무대에서 연기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서울문화투데이
▲강화자 베세토오페라단장이 오페라 무대에서 연기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서울문화투데이

1997년엔 자신의 이름을 내건 강화자오페라연구회를 열었고, 이를 기점으로 한국ㆍ중국ㆍ일본의 수도인 베이징(Be), 서울(Se), 도쿄(To)의 첫 앞 두 글자씩 따 ‘베세토오페라단’을 설립해 한·중·일 전문 성악인들의 교류의 장을 열어내며 한국 오페라를 국제적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일조했다. 

강 단장은 ‘아이다’ ‘마술피리’ ‘춘향전’ ‘황진이’ ‘토스카’ ‘라 보엠’ ‘투란도트’ ‘나부코’ ‘백범 김구와 상해임시정부’ 등을 연출했으며, 중국·일본·독일·이탈리아·체코 등 한국 예술을 해외로 전하는 국가문화사절단 역할도 해왔다. 2002년 외교통상부 주관으로 열린 '한중일 국민 교류의 해' 기념사업으로 현제명의 ‘춘향전’을 일본에 올린 것을 시작으로, 2005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도 이 작품을 선보이며 유럽 청중들에게도 큰 인상을 남겼다.

이어 2007년부터 3년간, 우리나라 입문지인 인천에 오페라를 보급하기 위해 세계 유수 오페라단을 초청해 <대한민국 인천오페라페스티벌>을 개최하기도 했다. 당시 세계적 테너 호세 쿠라가 ‘삼손과 데릴라’의 주역을 맡아 더욱 화제를 모았다. 이탈리아 토레 델 라고 푸치니페스티벌과의 자매결연으로 ‘투란도트’를 현지 공연 그대로 국내에 선보이고, 우리의 창작 오페라 ‘춘향전’과 ‘황진이’를 푸치니페스티벌에 소개하며 국제 교류의 새로운 물꼬를 트는 일에도 앞장섰다. 

오는 21일과 22일, 베세토오페라단은 제15회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 참가작으로 ‘피가로의 결혼’을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무대에서 선보인다. 이번 공연을 위해 체코 프라하시립오페라단 지휘자가 내한하며, ‘팬텀싱어’ 프로듀서로 익숙한 베이스 손혜수와 묵직한 중저음이 매력적인 베이스 최병혁이 피가로 역을 맡는다. 강 단장은 이번 작품도 오디션을 통해 신인을 대거 발탁했다. 특히 피가로 역의 베이스 최병혁에 대해 “매력 있고 힘찬 소리를 지녔다”라며 주목을 당부했다.

대학을 갓 졸업한 신인을 대형 오페라의 주역으로 발탁했던 스승 김자경의 가르침을 이어, 강화자 단장은 매 작품 오디션을 열어 재능있는 신인들을 발탁하는 과감한 결단을 소홀히 하지 않고 있다. 강 단장은 “운이 좋게도 김자경 선생님에 의해 신인 시절부터 큰 무대 경험을 쌓을 수 있었고, 그 기회가 있었기에 오페라 인생이 시작될 수 있었다. 입은 은혜를 갚기 위해 젊은 성악가들이 재능을 펼칠 기회를 주고 싶다”라고 말한다. 무대의 간절함을 알기에, 다양한 오페라 작품을 통해 성악가들이 꿈을 펼칠 기회를 손수 만들어 보이는 강화자 단장을 만나 그가 꿈꾸는 오페라 무대에는 어떤 모습일지 이야기를 들어봤다.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에서 선보일 <피가로의 결혼> 공연이 며칠 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공연은 시작부터 안팎으로 우여곡절이 많았던 만큼, 존폐를 걱정하지 않으려면 어떤 점이 개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15년 전, 우리나라 성악가들이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리는데 우리 오페라 시장을 살려야 하지 않겠냐면서 오페라 단장들이 단체로 유인촌 장관을 찾아갔었다. 오페라 르네상스를 꿈꾸며 페스티벌 개최 계획을 밝혔고, 이에 대한 지원을 요청했었다. 당시 유인촌 장관님이 오케이 해주신 덕분에 처음 시작된 페스티벌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페스티벌의 시작부터 함께해왔기 때문에 이에 대한 애정도 남다를 수밖에 없다. 그동안의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지만 여러 우여곡절을 거치며 15년을 이끌어 왔는데, 지원 기금 탈락으로 존폐를 논하게 된 이 상황이 가슴 아프고 안타깝다. 

나라마다 국립, 시립 오페라단은 대부분 존재한다. 다만, 존재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이들이 공연을 통해 관객들과 자주 만나야 한다. 성악가들이 날마다 공연할 수 있을 만큼 여파가 있어야 한다. 국ㆍ시립 정기 공연을 위해 큰 규모의 예산이 책정되는 것처럼, 민간 오페라단에도 단 얼마라도 지원이 필요하다. 이들이 꾸준한 공연을 통해 관객들과 소통해야 안정적인 운영이 가능하다. 1년에 한 번이라도 민간 오페라단의 자생력을 확보하고 성악가들의 무대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이다. 오페라의 저변을 확대하고, 보다 완성도 높은 무대를 만들기 위한 기회를 스스로 일궈낸 것이다. 

사실, 우리는 지금까지 정말 최선을 다해 공연을 올리고 열심히 노력해왔다. 공연적인 측면에서 이보다 어떤 노력을 더 할 수 있겠나. 하지만 새로운 시스템과 마주한 지금을 자성의 시간으로 여기고, 다시 한번 도약할 수 있도록 모두가 열심히 고군분투하고 있으니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린다.

올해 페스티벌 참가 작품으로 모차르트의 희극인 <피가로의 결혼>을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보통 오페라를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나. 잠깐만 놓쳐도 스토리를 따라가기 어려운 것도 오페라의 진입 장벽을 높이는 요인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에, 빈틈없는 음악과 유쾌함으로 풀어낸 줄거리를 가진 <피가로의 결혼>을 통해, 보다 많은 관객과 만나고자 한다. 여기에 장면 중간중간 무용을 가미한 연출과 아역 출연진 다수 참여 등으로 더욱 풍성하고 흥미로운 볼거리를 선사할 예정이다. 종합예술의 극치인 오페라의 진수를 맛보실 수 있을 거로 생각한다.

▲오페라 <카르멘>(2010)
▲오페라 <카르멘>(2010)

출연진 라인업을 보면 중견부터 신인까지 성악가들의 구성이 다양하고 신선하다. 특히 이번 공연에서는 오디션을 통해 신인을 대거 발탁했다고 밝힌 바 있는데, 오페라 무대가 귀한 만큼 오디션 열기도 대단했을 것 같다.

예상보다 훨씬 많은 성악가들이 오디션에 참가해 깜짝 놀랐다. 해외에서 공부한 성악가들도 무대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현실을 직시할수록 나의 과거를 떠올리게 된다. 나 역시 1970년 김자경오페라단 오디션을 통해 <아이다>의 주역인 암네리스에 뽑히면서 본격적인 오페라 인생을 시작할 수 있었다. 

무대가 간절했고 그만큼 치열하게 노력했지만, 운이 좋게도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신인 시절부터 큰 무대에서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내가 받은 은혜를 갚겠다고 다짐했고, 젊은 성악가들에게 길을 열어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우리나라 성악가들의 실력은 이미 세계 무대에서 검증된 것처럼 뛰어나지만, 재능만으로는 대가가 될 수 없다. 그 재능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다. 지금 친구들은 무대에 한 번 오르기 위해 거쳐야 할 관문이 너무 많다. 그래서 최대한 기회를 열어주고 싶은 마음이다. 김자경 선생님의 가르침을 토대로, 신인들을 무대에 많이 세우려 한다. 

이번 작품에서는 총 예술감독을 맡았지만, 그간 베세토오페라단 작품의 상당수는 강화자 ‘연출’의 손을 거쳤다. 메조 소프라노 성악가로 활동하다 어떻게 처음 연출을 맡게 됐는지.

<아이다> 데뷔 후 미국으로 건너가 맨해튼 음대 대학원에서 오페라를 공부했다. 유학 시절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를 일주일에 4~5번은 본 것 같다. 무대의 모든 움직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높은 자리인 스코어 데스크(Score Desk Seat)에서 보는 걸 특히 좋아했다. 이 자리는 악보를 보면서 음악 감상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한 좌석인데, 무대 구성, 조명의 사용, 배우들의 표정, 지휘자의 몸짓 등을 직접 보면서 오페라 연출에 대한 꿈을 키웠다. 무대의 모든 구석을 어루만질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귀국 후에는 본격적으로 예술감독 일에 뛰어들었다. 1982년 서울오페라단의 모차르트 ‘마술피리’ 연출로 정식으로 여성 오페라연출가로 등극했다. 이후 2002년부터 3년간 계속해서 문체부 지원으로 청소년 오페라 마술피리를 무대에 올렸다. 그로 인해 당시 마술피리가 가족오페라로 전국에 열풍을 일으키며 정착시키기도 했다. 당시 우리나라에서 여자가 오페라 연출을 맡은 건 처음이었다.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연출을 처음 시작하는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으나, 내가 열어놓은 길로 후배들이 뒤따라 걷고 있는 걸 보면 뿌듯하다.

작품을 연출할 때 성악가로서의 경험이 많이 반영될 것 같다. 작품을 이끌고 출연진들의 연주를 조율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

작품을 위한 캐스팅이 완성되면 항상 가장 먼저 강조하는 것이 바로 팀워크이다. 서로 경쟁하면 정말 불편해진다. 경쟁하지 말고 서로 도우며 함께 작품을 만들어 가라고 계속 이야기한다. 오페라 가수로 직접 무대에 오를 당시, 대본에 있는 지문에 나만의 해석을 더해 연기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하는 움직임을 따라하는 같은 배역의 다른 출연진들이 꼭 있었다. 처음엔 그게 너무 싫었지만, 어느 날 한 동료가 “누군가 너를 따라한다는 건, 앞서간다는 뜻이다. 네가 먼저 선보인 걸 다른 사람이 따라해서 잘 되면, 결국 네가 그들을 가르친 거나 마찬가지”라고 말해줬다. 그 말을 듣고 나니 너무 편해지더라. 그래서 내가 캐스팅하는 이들에게는, 많은 대화를 통해 서로 보완하고 누군가 뛰어난 점이 있다면 가져와 본인만의 것으로 만들라고 조언한다. 

더불어, 연습 지휘는 내가 직접 맡으려 한다. 예전에는 연습 지휘자를 따로 두기도 했는데, 지휘자 대부분이 오케스트라 지휘자라 오페라에 어울리는 음악적 표현 주문을 놓치는 경우가 생긴다. 이는 관객들에게 전달하는데 있어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기에, 내가 직접 지도한다.

▲모차르트 오페라 <마술피리>(2003)
▲모차르트 오페라 <마술피리>(2003)

오페라 가수로 국내외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오던 중, 김자경오페라단의 단장직을 맡게 된다. 오페라단의 단장을 맡는 것이 원래 계획에 있었나.

유학을 마치고 우리나라에 돌아왔는데, 김자경 선생님의 오페라단이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선생님께 펀드레이징을 제안드렸으나, 당시 우리나라에선 예술에 대한 후원이 지금보다도 더 열악한 상황이었다. 유학을 가기 전이나 후나 별 차이가 없었으니 말이다. 어떻게든 선생님을 돕고 싶은 마음에 국공립 문화예술 지원사업을 알아본 후 신청하고, 기업 협찬을 받을 수 있는 방법도 알아보러 다녔다. 이를 본 선생님께선 나에게 김자경오페라단을 이끌 후계자가 되어달라고 부탁하셨다. 단장을 하는 건 내 계획에 전혀 없었기 때문에 여러 번 계속되는 제안에도 거절했다. 나는 단체를 이끌고 싶은 리더가 아니라 무대에서 오페라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후에도 거듭되는 선생님의 적극적인 설득과 부탁으로 결국 김자경오페라단에서 단장직을 몇 년 간 맡게 됐다.

1997년에는 자신의 이름을 건 오페라단까지 창단한다. ‘베세토’라는 이름과 함께 오페라단을 시작했을 처음의 각오가 궁금해진다. 어떤 마음으로 오페라단을 창단하게 됐나. 

1997년, 그간의 경험을 토대로 나의 이름을 내건 새로운 오페라단을 창단하게 됐다. 중국 베이징, 한국 서울, 일본 도쿄를 가리키는 당시의 신조어 ‘베세토’를 오페라단 이름에 넣어 동북아를 아우르고, 세계로 도약하겠다는 정체성을 분명히 했다. 

사실 김자경오페라단의 단장직을 맡기 전까지, 연주자로서 화양연화의 시기였다고 생각한다. 메조 소프라노가 필요한 오페라 작품의 주역은 거의 도맡아 했다. 오페라단을 이끌면서부터 직접 노래할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없어졌다는 것이 가장 큰 아쉬움으로 남지만, 다양한 작품을 통해 후배들을 위한 무대를 만들고, 이로 하여금 우리나라 오페라 발전에 조금이나마 이바지할 수 있음에 자부심을 느낀다. 

오페라단을 이끄는 것과 더불어, 교단에 오랜 기간 서며 후학 양성에도 힘을 쏟았는데.

1980년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국립오페라단의 ‘삼손과 데릴라’를 선보였는데, 공연이 끝난 뒤 서울에 있는 대부분의 음악 대학에서 교수로 와달라는 러브콜을 받았다. 감사하게 찾아온 기회를 흘려보낼 이유가 없었고, 수많은 대학 중 나를 가장 먼저 알아봐 준 연세대학교로 가게 됐다. 사실 교수직 제안을 승낙하기 전, 연세대 캠퍼스를 걸었는데 거기에 마음을 완전히 뺏겼던 것 같다.(웃음) 처음엔 초빙 교수로 제안을 주셨지만, 2000년까지 학교와 인연을 이어가며 학생들을 가르치게 됐다. 

신인 시절부터, 대본을 보면 연기적으로 순간순간 떠오르는 게 많았다. 앉을 때도 그냥 앉지 않고, 시선이나 몸의 각도라도 다르게 두려고 했다. 노래가 중심이 되지만, 본질적으로 오페라도 성악가들이 노래로 연기하는 종합예술 극이다. 노래를 아무리 잘해도 연기력이 떨어진다면 관객이 극과 캐릭터의 메시지를 온전히 전달받을 수 없다. 이에, 연출 지도를 할 때도 연기적인 측면을 굉장히 강조하는 편이다. 오페라 가수들도 극을 보다 생생하기 전달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연기와 움직임 트레이닝을 받아야 한다. 

▲오페라 <춘향>(2002)
▲오페라 <춘향>(2002)

그동안 올렸던 작품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을 꼽아본다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2002년 일본 민간 오페라단과 합작으로 처음 선보였던 ‘춘향전’ 공연이다. ‘춘향전’은 1948년 현제명 선생이 한국 최초로 작곡한 창작오페라다.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가치를 지니는 이 작품의 원전을 최대한 살리면서, 동서양 관객들에게 재미와 감동을 줄 수 있는 무대를 선사하고 싶었다. 이 공연에서 나는 예술총감독이자 월매 역을 맡으며 무대를 완성시켰다. 한중일 3국 교류의 해를 맞아 한국ㆍ일본ㆍ중국으로 이어지는 대장정을 펼쳤다. 한국 무용단과 한ㆍ일 연합 합창단, 일본 지휘자와 오케스트라가 모여 무대를 만들었다. ‘춘향전’은 작품성을 인정받아, 일본과 중국에 이어 2005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행사에 초청되기도 했다. 국적을 뛰어넘어 하나의 예술을 완성하기 위한 여정이 아직도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아울러,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기념해 오페라의 5대 걸작으로 손꼽히는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을 체코 프라하에서 공연해 유럽인들의 찬사를 받기도 했다. 우크라이나에서도 ‘카르멘’ 공연을 통해 양국간 문화 교류를 통한 민간 외교의 업적을 높이 평가받았고, 체코와 우크라이나 정부로부터 문화훈장 및 문화공로 메달을 받은 것도 잊을 수 없는 영광이다. 

인천에서 오페라페스티벌 개최와 푸치니오페페스티벌과 결연을 맺어 큰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보람도 많았을 듯 하다.

우리나라 관문인 인천에 오페라를 보급하기 위해, 세계 유수 오페라단을 초청해 <대한민국 인천오페라페스티벌>을 2007년부터 3년간 개최했다. 당시 ‘삼손과 데릴라’의 주역을 세계적인 테너 호세 쿠라에게 맡기고 싶어, 직접 독일에 가서 그를 캐스팅했다. 작품의 연출은 내가 맡았다. 특히 데릴라의 ‘그대의 목소리에 내 마음이 열리고’가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그때 공연한 가수 중 한 사람은 현재 메트로폴리탄 무대에서 활동하고 있다. 우리와 작품을 함께 만들었던 성악가들이 세계 유수의 오페라단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큰 보람이다. 

더불어, 2013년 ‘투란도트’는 푸치니의 탄생지인 이탈리아 토레 델 라고의 푸치니 페스티벌 극장과의 공동작업으로 의상과 성악가들을 그대로 들여왔다. 당시 우리 오페라단과 자매결연을 맺었기에 그들이 먼저 와서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투란도트’를 선보였다. 이후, 우리가 다시 푸치니페스티벌에 초청받아 현제명의 ‘춘향전’과 이영조의 ‘황진이’를 공연했다. 거리에서 한복을 입고 우리 고유 악기로 프린지 공연을 열어 많은 사람들에게 한복의 아름다움을 전했던 잊지 못할 경험이었다. 이것도 또 하나의 보람으로 남는다.

▲오페라 <삼손과 데릴라> 서울 공연 (2011)
▲오페라 <삼손과 데릴라> 서울 공연 (2011)

베세토오페라단을 처음 창단했을 때와 비교해, 가장 크게 달라진 점과 여전히 달라지지 않는 점은 각각 무엇인지 듣고 싶다. 

오페라에 대한 인식이나 공연 환경은 그래도 이전보다 많이 개선됐다고 생각한다. 질적으로 좀 나아졌다. 그럼에도, 아직 창작하기까지의 환경에는 변화가 필요하다. 특히 오페라에서 중요한 무대와 의상에 대한 부분은 시스템적으로 바뀔 필요가 있다. 세트와 의상을 만드는데 기본 몇천만 원이 드는 경우가 비일비재한데, 공연을 짧게 올린 후 보관할 곳이 없다. 단체마다, 이번에 사용했던 소품, 세트, 의상이 더는 필요하지 않은 경우도 있는데, 이럴 땐 필요한 다른 단체에 대여하거나 하는 방식이 정착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좀 더 본격적으로 시스템을 구축해서 민간 단체와 국립을 아우르는 유통/보관/대여 시스템이 구축된다면 예술 단체에서는 보다 제작비의 압박을 덜 받으며 작품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고, 예술 시장 전체에 선순환으로 작용할 것으로 생각된다. 

더불어, 공연예술에 대한 기업의 참여 및 관심 역시 처음 오페라단을 창단했을 때와 비교해 괄목할 만하게 변화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오페라단을 이끄는 데 있어 가장 큰 어려움은, 어쩌면 당연하게도 제작비 조달이다. 기본으로 몇억의 예산을 필요로 하는데, 자력으로 부담 없이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단체는 거의 없을 것이다. 문화예술, 특히 오페라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거의 기대하기 어렵기에 기업의 관심이 더욱 절실하다.

지난 2021년에는 지휘자로 데뷔해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끊임없이 새로움에 도전할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음악에 대한 사랑이다. 그리고 사랑하는 것에 대한 책임감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달란트를 쏟고 가야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방법을 자꾸 고민하고 찾게 되는 것 같다. 어떤 신자들은 목사님의 설교 말씀도 감동이지만 찬송 한 구절도 마음을 울린다고 한다. 이것이 음악의 힘이고, 영향력이라 감히 생각한다.

▲인터뷰 질문에 답하고 있는 강화자 베세토오페라단장 ⓒ서울문화투데이
▲인터뷰 질문에 답하고 있는 강화자 베세토오페라단장 ⓒ서울문화투데이

앞으로의 목표가 궁금하다. 더불어, 새롭게 도전하고 싶은 것은.

아직은 나조차도 터무니없이 큰 꿈이라고 생각하지만, 언젠가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에 우리의 오페라 ‘춘향전’이나 ‘황진이’를 올리고 싶다. 우리의 역사와 전통, 예술세계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작품들을 해외에서 가장 유명한 무대에서 선보이며 세계인과 우리 문화를 공유하고 싶다. 

현재 고 김자경 선생에 이어 한국 오페라계 대모로 불리고 있다.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김자경 선생님과 나 사이에 김봉임 선생님이 계셨다. 성악가이자 오페라 연출가셨던 선생님은 불모지였던 우리나라에서 김자경 선생님과 더불어 오페라계에 한 획을 그으며, 오페라 대중화를 위해 평생을 헌신하셨다. 

오페라 하기 어려운 환경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들 잘하고 있다. 우리 오페라단뿐만 아니라 모든 오페라인들이 초심을 잃지 않고 노력한 덕분에 지금에 이르렀다고 생각한다. 개인의 영달을 위해 오페라를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우리가 몸 바쳐서 노력한 점들이 모여 선을 이뤄 오페라의 한 획이 됐다고 생각한다. 나의 바람은, 이 선들이 앞으로도 끊기지 않고 이어져 다음 세대에는 지금보다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오페라를 할 수 있었으면 한다. 이런 책임감은 아마 모두가 갖고 있을 것이다. 다들 지치지 않고 앞으로도 지금처럼 아름다운 음악이 가득한 무대를 만들어 주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