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혜숙의 장르를 넘어서] 우리는 서양의 문화를 극복할것인가 융화할것인가
[양혜숙의 장르를 넘어서] 우리는 서양의 문화를 극복할것인가 융화할것인가
  • 양혜숙 한국공연예술원 이사장
  • 승인 2024.08.14 10:49
  • 댓글 0

우리 민족과 문화의 미래 위한 올바른 심지꽂기와 풍향기 노릇 할 역량과 능력 갖춰야
▲양혜숙 한국공연예술원 이사장
▲양혜숙 한국공연예술원 이사장

벌써 30년 전 일이다.
1991년의 첫 몽골 여행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아직 대한민국이 러시아와 중국 등 공산권 나라들과 교역과 왕래를 트고 살지 못했을 때의 시절이다. 몽골도 아직 소련연방의 굴레를 채 벗어나지 못했으나 그래도 서방세계와의 교류를 틀 수 있는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더듬던 시절로 기억된다.

두려움과 망설임 끝에 한국과 몽골의 거의 최초의 손님으로 몽골주재 한국대사관의 응원과 격려를 받으며 우리에게 오래 가려졌던 미지의 세계, 몽골공화국을 방문했던 일은 나의 생각과 세상을 보는 눈에 큰 변화를 가져다 주었다. 책과 생각으로만 가려있던 자연과 사람, 문화와 역사를 보며 나는 그동안 검은 커튼 속에 상상으로만 존재했던 몽골의 사람과 문화를 보며 '인간이 얼마나 그들이 속한 세계의 자연과 역사의 소산인가'를 새삼 깨달았다.

당시 경이롭게 다가왔던 모든 일 중에서도 내가 아직 잊지 못한 채 생생하게 내 속에 살아있는 숙제는 우리가, 아니 세계의 인류가, 특히 아시아인과 아프리카인들이 <세계 문화사>를 다시 써야 한다는 간절한 생각에 사로잡힌다.

그런 간절한 생각을 내게 불러일으킨 동기는 몽골의 불교 미술관에서 본 ZANABAZAR(1635 ~1723)의 불상조각을 보고 감동한 때문이다. 나는 우리가 <세계문화사>를 다시 써야겠다고 하는 단호한 생각이 나를 엄습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조각의 세계를 우리 모두가 감탄하고 우러러 볼 기회를 아직 못 가졌었다니 세계의 문화사를 다시 써야 할 때라고 깨달았다. <서양인들은 우리에게 왜 이런 귀한 자산을 알려주지 않았냐 말이다>.

그러면서 나는 이런 아름다움을 못 보았거나 안 알려준 서양인을 원망하고 있는 것이다. 1961년 내가 처음 독일땅을 밟고 독일어를 익히기 위해 간 독일의 Rothenburg ob der Tauber라는 중세 도시 교회 안에 있는 Tillmann Riemanscheider의 섬세하고 근엄한 성단 위에 있는 아름다운 조각을 감탄하고 서있는 나의 모습과는 너무나 달라진 나의 모습을 보고 놀랐다. 당시 나는 그 섬세하고 아름다운 성단을 꾸며놓은 목조각의 아름다움이 성스러움마저 불러일으켰다. 사람의 깊이 숨겨져 있던 신앙심의 뿌리를 건드리는 힘을 느끼며 다만 그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근 60여 년이 지난 지금 세상에 하느님을 향한 세계를 제패하고 있는 기독교와 서양 문화에 대한 일반적 가치체계에 반기를 들고 있는 나의 속마음을 발견하며 놀라고 있다. 당시 25세의 나는 그 성스럽고 아름다운 성단 앞에 매료된 체 행복할 따름이었다. 그러나 나의 눈과 귀를 일깨워준 기독교 문화와 서양의 문화는 나의 정신을 깨웠고 나의 문화와 세계를 바라보는 시야를 넓혀주었고 아름다움과 가치를 재는 척도의 잣대가 되어 주었다.

오늘날 나는 근 200년을 넘는 세월 동안 서양의 진취성과 서양 문화의 창궐함을 감탄하며 서양인이 발전시킨 국가체제와 가치체계 안에 길들여져 살며 그들을 따라 하기에 바빴던 시간을 뒤로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오늘에 이르러 세상을 보는 눈과 감성과 잣대가 많이도 달라지고 있으며 달라져야 한다고 믿는다. 한국인, 동양인으로서의 한국인, 아시아 인이며 동시에 세계인으로서의 한국인으로 성장했을 뿐 아니라 달나라까지 도달할 수 있는 미래의 세계인으로의 당당함을 꿈꾸는 한국인이 되어있는 것이다.

젊은 세대들은 의지와 능력만 갖춘다면 세계를 누빌 수 있는 국력의 뒷받침이 있고, 손안에 든 핸드폰으로는 세계정세를 한눈에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그를 통해 세상을 앞질러 나갈 수 있는 형세다. BTS 뿐 아니라 한국의 춤과 노래, 한국의 영화등 문화와 더불어 한식과 한문화가 세계 젊은 세대를 통하여 <한국, 매력 있는 미래의 나라>로 떠오르고 있다.

이러한 이 시기에 문화에 종사하는 우리는 우리 국민의 세계와 미래를 보는 눈과 귀를 바로 열어야 할 것이다. 우리 민족과 문화의 <미래 보기와 미래 살아내기>에 올바른 <심지꽂기와 풍향기> 노릇을 해낼 수 있는 역량과 능력을 반드시 갖추어, 각자의 역할을 자각 각성해야 할 때임을 주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