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스케치] ‘개방성’ 돋보이는 부산비엔날레①…이색 공간에서 펼쳐지는 축제
[현장스케치] ‘개방성’ 돋보이는 부산비엔날레①…이색 공간에서 펼쳐지는 축제
  • 이은영 ·김연신 기자
  • 승인 2024.08.21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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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부산비엔날레 《어둠에서 보기》
8.16~10.20, 부산 원도심 일대
김성연 위원장, “공식 출범 후 첫 여름 개최...많은 준비했다”
금고미술관, 오래된 주택 등 독특한 전시 공간 활용
내밀하고 전위적인 작품 선보여

[서울문화투데이 김연신 기자] 금지된 장소였던 ‘지하금고’가 무거운 철문을 개방하고 전시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이번 부산 비엔날레가 개최되는 장소 중 한 곳인 부산근현대역사관의 ‘금고미술관’이다. 약 1조원에 달하는 자산을 이중벽과 철통보안으로 지키던 지하금고는 이제 현금이나 금괴 대신 내밀하고도 전위적인 미술 작품들로 관객들을 맞이한다.

▲지난 16일 한성1918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김성연 집행위원장과 베라 메이 감독, 필립 피로트 감독. (왼쪽부터)
▲지난 16일 한성1918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김성연 집행위원장과 베라 메이 감독, 필립 피로트 감독. (왼쪽부터)

지난 16일 개막식을 시작으로 65일간의 항해에 접어든 ‘2024부산비엔날레’가 부산의 원도심 일대에서 펼쳐지고 있다. 

부산의 원도심은 인구 감소와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돼 ‘낡고 오래된 곳’이라는 이미지를 가진 지역이다. 부산비엔날레는 이러한 원도심 지역 일대를 전시 장소로 선정, 세월의 흔적에 현대적인 색채를 입히며 공간을 변주해오고 있다. 올해는 ▲부산현대미술관 ▲부산근현대역사관 ▲한성1918 ▲초량재 등이 전시 장소로 선정됐다.

지난 16일 열린 프레스 프리뷰에는 전시감독과 참여 작가들이 참석, 각각의 개성을 지닌 전시 공간 네 곳을 함께 돌아보며 전시와 작품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기자간담회는 참여 작가의 공연과 함께 한성1918에서 개최됐다. 김성연 집행위원장은 “2000년에 공식 부산비엔날레로 출범한 이후로 여름에 개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무더운 여름, 예술을 즐길 수 있는 부산비엔날레가 될 수 있도록 많은 준비를 했다”라고 밝혔다.

베라 메이 감독은 “이번 비엔날레를 통해 흥미로우면서도 도발적이고, 시의 적절하면서 의미 깊은 작품들을 소개하고자 한다”라며,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우리에게 큰 의미로 다가올 수 있는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라고 밝혔다. 

▲무거운 철문을 개방하고 전시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는 지하금고.
▲무거운 철문을 개방하고 전시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는 지하금고

비밀스런 ‘지하금고’ 속 내밀한 작품들

한국은행 부산본부 본관의 지하금고였던 ‘금고미술관’은 4개의 금고 내부의 구조와 철문은 그대로 유지하고, 작품의 일부가 되는 등 이색적인 전시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비밀스런 ‘지하금고’라는 공간적 특성을 활용한 이번 전시는 작가의 내밀한 구석을 비춘다. ‘2호금고’에서는 올라델레 아지보예 밤보예 작가의 사진 시리즈를 만나볼 수 있다. <축하 연작>과 <파열 연작>은 작가 본인의 누드 이미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흑인 남성 신체’에 대한 전형적인 투사를 탈피한다. 그는 피사체이자 사진가로서 공간을 춤추듯 누비며 다중 노출 기법을 활용, 자신의 정체성을 다층적이고 유동적인 방식으로 제시한다.

▲올라델레 아지보예 밤보예의 작품은 작가 본인의 누드 이미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흑인 남성 신체’에 대한 전형적인 투사를 탈피한다.
▲올라델레 아지보예 밤보예의 작품은 작가 본인의 누드 이미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흑인 남성 신체’에 대한 전형적인 투사를 탈피한다.

<토가 파티 연작>은 고대 로마의 전통의상인 토가와 월계관 등의 소품과 함께 본인의 사진 스튜디오를 노니는 장면을 담았다. 작품은 미술사학자 아비 바르부르크가 제시한 개념인 파토스포멜(Pathosformel)을 차용해 유럽 문명의 기원을 파티에서의 우스꽝스러운 장난 거리로 전락시키는 등 유쾌한 방식으로 재해석한다. 그중 한 장면에서는 밤보예가 백인 친구들을 위해 햇빛을 가리기 위한 파라솔을 들고 있는 하인 캐릭터로 둔갑, ‘문명’의 시각 역사에 대해 비판을 가한다.

어떻게 지내고 있나?
너무 아파서 서울을 떠나야 했던 친구에겐 내가 아팠던 시절의 얘기를 꺼냈다. 하루에 꼭 하나의 맛있는 음식을 음미하며 먹었던 것과 다른 아무것도 하지 않고 매일 1장의 앨범을 눈을 감고 들었던 일, 매일 무언가가 쌓이면 어떤 일이 벌어진다. 

작년 내세에서 머물던 경험을 떠올리며, 여름의 시골에선 해가 지는 시간에 꼭 하늘을 보라고 말했다. 
2018년 여름, 베를린에서는 해가 지는 시간에 지붕에서 자다가 깨어났다. 나는 휴대폰을 들고 친구들과의 대화창에 ‘영혼을 노래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라고 남겼고, 대화창이 ‘ㅋ’로 폭발했다. 내 삶의 존재 의미를 느끼고, 그것을 꺼내어 전할 수 있다는 것과 그 모든 것이 다른 것과 연결되어 있음을 믿는 순간이었다. 내이름은 알지(知)에 밝을 량(亮), ‘밝은 것을 알아가라’는 의미이다.

- 차지량, 2021. 6. 17. -

‘3호금고’는 차지량 작가가 고백하듯 비추는 작가 본인의 내밀한 삶의 단면을 들여다보고, 진솔한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시간을 선사한다. ‘ㄷ자’형태를 띤 공간은 바깥 쪽 가벽에 작가의 일기를 전시해 작가의 삶의 시간을 따라가며 이야기를 들을 수 있도록 구성했다. 이번 작품 <보이는 모든 것에 무지개가 있는 것처럼>은 작가 개인이 경험한 꿈과 깸 사이의 현상을 나타내는 다층적 시공간으로 관객을 초대한다.

▲'ㄷ자'의 독특한 공간에서 아카이브 형식으로 구성된 차지량 작가의 전시.
▲'ㄷ자'의 독특한 공간에서 아카이브 형식으로 구성된 차지량 작가의 전시.

아카이브 형식으로 제시되는 텍스트와 이미지, 사운드의 결합은 작가의 삶을 정리해둔 책장 속 책을 꺼내들고 작가와 동행하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화이트 톤과 푸른 색감이 주가 되는 정갈하고도 몽환적인 공간은 안에서 관객은 작가의 내면과 기억 속을 부유한다. 작가의 삶의 여로를 탐색하듯 통로를 통과하고 나면, 어더한 유대감과 함께 전시 공간이 연결고리로서 매개하고 있는 것은 관객과 작품이 아닌, 관객과 작가였음을 깨닫게 된다.

‘1호 금고’에 들어서면 ‘Le Paris’라고 적힌 거대한 네온사인을 마주할 수 있다. 셰이크 온디아의 작품 <르 파리>로, 현재 철거된 다카르의 영화관 네온사인을 재현한 작업이다. 작가에게 영화는 건축적 장치(영화관), 서사 도구(영화 장면), 그리고 빛과 그림자의 복잡 미묘한 작용을 통해 아프리카의 현대성을 상상하게 하는 중요한 도구다. 그의 설치 작업은 도시의 경험과 영화적 특성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낯설고 새로운 맥락 속에 설치한 <르 파리>는 현대화된 도시를 향하는 꿈을 환기한다. 작품은 지브럴 좁 맘베티의 영화 <투키 부키>(1973)의 사운드 트랙 중 주인공이 세네갈을 떠날지 말지 망설이던 장면에서 재생되던 조세핀 베이커의 ‘파리...파리(1949)’를 연상시킨다. 온디아의 작품은 부산현대미술관에서도 만나볼 수 있다.

▲셰이크 온디아, 르 파리, 2024
▲셰이크 온디아, 르 파리, 2024

초량동의 오래된 주택, ‘초량재’

‘초량재’는 적산가옥과 오래된 주택이 많은 초량동에 위치한 오래된 주택이다. 현 주인의 전언에 따르면 전후 1960년대 초에 아이들이 있는 가족이 사용하기 위해 지어졌다고 한다. 비교적 규모가 크고 독특한 설계가 특징이며, 초량 지역의 여러 공간 중에서 감독이 사용하기를 희망해 전시 공간으로 활용하게 됐다. 

지난 16일 방문한 초량재 인근에서는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기자간담회가 진행 중이던 초량재의 앞마당에서도 공사 소음이 들려왔다. 필립 피로트 감독은 이에 대해 “의도치 않은 서브 사운드트랙으로 건설 현장의 소리를 생생하게 듣고 있다. 비엔날레 개막 이전에 완공이 될 것이라고 전달 받았지만, 안타깝게 완공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현장감이 넘치는 사운드트랙으로 함께 즐겨주시길 바란다”라는 재치 있는 답변을 내놓았다.

▲초량재 입구에서 필립 피로트 감독이 전시 공간을 소개하고 있다.
▲초량재 입구에서 필립 피로트 감독이 전시 공간을 소개하고 있다.

입구에 들어서면 한국적인 문양이 새겨진 작품들이 눈에 들어온다. 김지평의 작업이다. 김지평은 재료의 동시대적 성격을 작품의 지지체를 통해 파악하고 전통적인 ‘보는 방식’에 대해 질문해왔다. 최근에는 동양화의 장황(책, 화첩, 족자를 꾸미고 만드는 것)에 깃든 문화적 의미를 재구성하여 전통의 사유 체계를 새롭게 형식화하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병풍 연작은 병풍에 담긴 신체성과 이를 둘러싼 사회/문화적 인식을 다룬다. 동아시아 서화(書畫)를 꾸미고 보존하는 역할을 하는 병풍의 각 부분에는 이름이 있다. 아래를 치마, 위를 저고리, 양옆의 띠를 소매라 부른다. 또 완성된 서화를 천이나 종이로 덧대어 마감하는 것을 ‘옷을 입힌다’고 표현한다. 김지평은 이러한 병풍의 인체 반영성을 한 번 더 강조하며, 각각의 병풍을 다양한 인물로 표상했다. 이번 전시에는 <디바>(2023) 연작을 중심으로 다양한 소리를 가진 인물, 춤, 악기 등을 이용해 만든 신작을 작곡가 신원영이 만든 음향과 함께 전시한다. 병풍들은 할머니, 군인, 조문객, 무당과 가수 등을 연상케 하면서도, 어떤 고정된 정체성이나 위계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축제와 유희의 공동체를 상상하게 한다.

▲김지평의 '병풍 연작' 중.
▲김지평의 '병풍 연작' 중.

<산수화첩>(2024)은 여러 산수화 복제본을 재료로 만든 입체 콜라주 연작이다. 현대의 산수화는 대량 생산된 복제품으로 집안 제사 등에 병풍으로 많이 사용되어 왔다. 최근 들어 가정의 제사를 간소화하거나 없애버리면서, 이런 병풍조차 점점 쓸모없는 것으로 버려지는 경우가 많다. 김지평은 이렇게 폐기된 산수화를 오려내고, 이어 붙여 일종의 재활용된 산수 이상향을 만들었다.

선대의 이름난 그림을 모방하는 것에 원본만큼 중요한 의미를 부여해 온 동양화 전통처럼, 작가는 여러 번의 복제를 통해서도 쉽게 사라지지 않을 산수의 이상과 자연의 가치를 환기한다. 현대 팝업북과 산수화의 다시점 원근법을 교차시켜, 겉모습은 산수화에서 멀어지는 것 같지만 오히려 산수의 핵심적인 가치에 더욱 가까워지려는 작가의 지향을 보여준다. 작품은 박물관의 유물 전시처럼 유리장 안에 설치되어, 폐물이 불러온 산수의 이상향을 더욱 아이러니로 만든다.

▲초량재의 옥상에 설치된 정유진 작가의 작품이 디스토피아적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초량재의 옥상에 설치된 정유진 작가의 작품이 디스토피아적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야외 공간에 전시된 정유진 작가의 설치 작품은 동시대의 재앙을 다룬다. 유토피아와 정반대를 상징하고 재난의 시작을 안내하는 지구본이 산산조각 난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망망대해로>(2024)는 일시적으로 난파된 해적선을 은유한다. 작가는 “자본의 구조와 시스템의 격차 속에서 자꾸만 어긋나고 불안정하기만 한 지금의 현실이 일시적 해방의 공간이라 할 수 있었던 해적선마저 난파시켜버린 것 같다”라고 말한다. <망망대해로>에서 파괴된 벽과 해체된 흔적은 다시 바다로 나아갈 수 있는 보트가 되었고, 바닥은 여전히 끝없이 휘청거리는 거대한 파도와 같이 울렁인다. 눈앞의 잔해는 현실 감각을 요동치게 하며, 상상의 항해를 부추긴다. 

<포춘 어스>(2022)는 재난으로 가득 찬 동시대를 반영했던 개인전 《RUN》(2022, 뮤지엄헤드)에서 처음 선보인 바 있다. 펼쳐질 재난의 시작을 안내하기라도 하듯 커다란 지구본이 산산조각 난 채 흩어져 있다. 테마파크 입구에 자리한 구 형태의 대형 설치물이 앞으로 펼쳐질 환상의 세계에 대한 지표가 되어준다면, 이 작품은 유토피아와는 정반대의 방향을 가리킨다. 

<다음 기사에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