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스케치] 하정우, 학고재 진입…‘아트테이너’ 향한 엇갈린 시각
[현장스케치] 하정우, 학고재 진입…‘아트테이너’ 향한 엇갈린 시각
  • 김연신 기자
  • 승인 2024.10.30 19:58
  • 댓글 0

10.16~11.16, 학고재 본관
우찬규 회장, “대중적 인지도, 설득력 얻기 쉬워…K-아트 시대 진입 용이”
전업 작가 아닌데다 갑작스런 화풍 변화, 설득력 떨어진다는 지적도
하정우 작가, “각오가 없었다면 이 자리까지 서 있지 못했을 것”
내면·페르소나 등 아트테이너 단골 주제…진부하다는 비판

[서울문화투데이 김연신 기자] 배우 하정우가 작가 하정우로서 스스로를 호명하기 시작한지 15년차, 이젠 학고재에 그의 작품이 전시된다. 학고재갤러리는 내달 16일까지 하정우 개인전 《Never tell anybody outside the family》을 개최한다. 지난 16일 삼청동의 한 음식점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는 하정우 작가와 우찬규 학고재 회장, 이진명 학고재 이사·미술 평론가가 참석, 이번 전시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하정우, 무제 Untitled, 2024, 캔버스에 혼합 재료 Mixed media on canvas, 90.9x72.7cm
▲하정우, 무제 Untitled, 2024, 캔버스에 혼합 재료 Mixed media on canvas, 90.9x72.7cm (사진=학고재)

‘K-아트’시대, 학고재의 새로운 선택

그동안 학고재는 유명 작가의 이름을 빌리거나 대중성을 우선순위에 두기보다는 학고창신(學古創新)의 정신을 고수해왔다. 이를 고려하면 ‘하정우’라는 학고재의 선택은 다소 이례적으로 보인다. 그래서인지 이날 기자 간담회 현장은 평소의 몇 배가 되는 기자들로 가득 차 북적였다. 

이날 우찬규 회장은 “왜 하정우 작가인가”라는 질문에 “대중적인 인지도가 높은 작가가 좋은 작품을 한다면 설득력을 얻기 쉽다. 이는 K-아트 시대로의 진입을 용이하게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라고 답변했다. 전시 서문을 작성한 이진명 미술비평가는 “중국으로 예를 들자면, 장국영이나 판빙빙 등의 배우들이 그림을 그리지는 않는다. 아트테이너 중에서도 하정우는 '정말 화가'다”라며, “이번 전시 오프닝을 찾은 작가들이 '우리 화가들 반성해야겠다'라고 말하고는 하더라. 하정우 작가의 작품은 어렸을 때부터 그저 좋아서 그린 그림이 성숙하게 된 케이스다”라고 덧붙였다.

배우가 쌀로 밥을 짓는 일이라면 화가는 그 찌꺼기로 술을 담그는 일 같다고 설명하면 어떨까. 같은 재료로 만드는 것이지만 그 방법에 따라 결과물은 전혀 다르게 나온다. 운동선수처럼 독하게 훈련하고 경기에 임하는 자세로 영화를 찍는다. 그렇게 밥과 같은 연기가 만들어진다. 그러고 나면 몸과 마음에는 잔여물이 생긴다. 연기로는 해소되지 않는 무언가. 그것을 끄집어내어 그림을 그린다. 그러면 술과 같은 그림이 만들어진다. 그림이 나를 회복시키고 다시 연기에 정진하도록 고무하는 것이다.

- 하정우, 「작가 노트: 이유에 대해」, 2015 -

▲《Never tell anybody outside the family》 전시 전경
▲《Never tell anybody outside the family》 전시 전경 ⓒ김연신 기자

제도권 안에서 작업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닌, 전업 작가가 아니라는 점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하 작가가 배우로서의 정체성은 충분히 인정받고 있지만, 작업에만 매진해온 유수의 작가들이 거쳐간 의미 있는 공간인 학고재에서 전시를 하면서 그만큼의 각오를 갖고 있는지 묻는 질문이 뒤를 이었다.

하정우 작가는 “각오가 없었다면 이 자리까지 서 있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한다”라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운 좋게 선택을 받았다는 생각이 든다. 2010년에 첫 개인전을 열고 15년 간 많은 이야기가 들려왔다. 안 좋은 이야기가 98%정도 될텐데, 사실 지금 작가로 인정받는 것은 내게 큰 의미는 아니다”라며, “그냥 계속 작업을 이어나가고, 깨달음을 얻게 된다면 노인이 됐을 때 쯤에는 어떠한 평가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떠한 각오를 말씀드리는 것은 부끄럽지만, 아마 죽기 전까지는 계속 (작업을) 하지 않을까 싶다”라고 답변해왔다.

그동안의 작업에 비해 달라진 화풍에 대한 질문도 있었다. 표현 방식이나 매체, 소재 등의 측면에 갑작스런 변화가 나타나는 것이 다소 설득력이 떨어지는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하 작가는 “다른 작가들보다 역마살이 많이 껴서 그런 듯 하다. 배우라는 직업 특성 상 다양한 환경에서 생활을 하게 되는데,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작품들은 모로코에서의 5개월 간의 생활이 화폭으로 이어진 것 같다”라며, “로케이션 촬영으로 여러 도시들을 떠돌다 보니, 자연스럽게 취향이 변화하고 그림의 형태나 패턴들 또한 변화한 것 같다. 어떤 흐름대로 가는 것 같기도 하고, 잘할 수 있는 것들을 찾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진화’라고 여긴다”라고 덧붙였다.

▲하정우, 무제 Untitled, 2024, 캔버스에 혼합 재료 Mixed media on canvas, 162.2x130.3cm
▲하정우, 무제 Untitled, 2024, 캔버스에 혼합 재료 Mixed media on canvas, 162.2x130.3cm (사진=학고재)

회화라는 밀실, 페르소나의 해방

이번 전시의 제목 “Never tell anybody outside the family”는 영화 「대부」의 대사에서 영감을 받았다. 이진명 미술비평가는 “믿을 수 있는 식구 말고 누구한테도 내밀한 이야기를 나누지 말라는" 의미로, 이는 곧 "내 안에 있는 진정한 나와의 만남을 원하는" 마음을 반영한다고 말한다. 그는 최인훈의 광장과 밀실 개념을 인용하며 하정우의 작업세계를 설명한다.

하정우에게 자아는 광장(廣場)의 자아와 밀실(密室)의 자아로 나뉜다. 이 둘이 절묘하게 갈마들어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영화예술과 회화예술이 모두 성공을 이룬다. 그런데 여기 역설이 있다. 밀실이 개인적이고 닫혀있는 공간이라면, 광장은 사회적이고 열려있는 공간이다. 동시에 광장은 대중의 밀실이라면, 밀실은 개인의 광장이다. 하정우는 영화로 대중을 밀실에 가두고, 회화라는 밀실로써 자기 자신을 광장에 해방한다. 이러한 법칙은 고대부터 존재했다.

- 이진명 미술비평가, 「내면의 극장과 필력의 연기 - 하정우 작가의 회화 세계」 中 -

이번 전시에서는 근 1년간 작가가 화가로서의 시간에 매진하며 그린 회화 작품들을 선보인다. 하정우 작가는 일상적 사물이나 인물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작업을 이어왔다.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은 간결한 선과 선명한 색채로 표현되어, 단순화된 형태가 두드러진다. 과장된 얼굴에 눈, 코, 입을 강조함으로써 인물에 원시적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하정우, 무제 Untitled, 2024, 캔버스에 혼합 재료 Mixed media on canvas, 162.2x130.3cm
▲하정우, 무제 Untitled, 2024, 캔버스에 혼합 재료 Mixed media on canvas, 162.2x130.3cm (사진=학고재)

카펫 디자인에서 영감을 받은 신작은 반복적인 선과 기하학적 문양이 조화를 이룬다. 작가는 배경에 균일하게 선을 그려 넣어 화려하면서도 통일된 패턴을 만들어낸다. 토속적 문양을 활용하여 인간 내면의 직관을 시각적으로 풀어내고자 했다. 

탈 연작 작가가 배우로서 수많은 인물을 연기하며 경험해온 페르소나를 대변한다. 한국 전통 탈과 같은 민속 소재를 현대의 감각으로 해석하며 인간 정체성의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면모를 탐구한다. 

그는 가면이 외부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수단인 동시에 내면의 욕망을 표현하는 도구라는 점에 주목한다. 가면을 쓴다는 것은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한 방어 기제로 볼 수 있지만, 억눌린 욕망이나 자아를 표현하는 창구로서의 역할도 한다. 작가는 가면이 우리를 감추는 동시에 그 안에서 자신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망이 공존한다는 점을 시사하면서, 다양한 페르소나를 경험하면서도 그 속에서 진정한 자아에 다가가고자 하는 우리의 본질적인 갈망을 예술적 표현을 통해 드러낸다.

▲《Never tell anybody outside the family》 전시 전경
▲《Never tell anybody outside the family》 전시 전경 ⓒ김연신 기자

‘아트테이너’의 양면성

예술 활동을 이어나가는 연예인을 칭하는 ‘아트테이너’를 향한 평가는 극단적으로 갈린다. 비판하는 측의 근거는 다음과 같다. 연예계 활동을 통해 얻은 지명도를 통해 ‘프리패스’하듯 미술 시장에 손쉽게 진입하며 '대중적 인기에 편승한 무임승차자'로서 신진 작가들에게 박탈감을 안겨주거나, 유명세의 확장을 위해 예술을 이용하고, 그 과정에서 작품보다 이름을 앞세워 과대포장한다는 것이다. 

작가라면 표현 방식에서 정체성으로 불리울만한 개성을 갖추어야 하는데, 아트테이너들의 작품들은 본연의 형식 요소와 철학, 개념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것은 둘째치고, 잘 알려진 거장과 화풍이 유사하거나 대부분의 주제가  ‘내면의 치유’, ‘연예인이 아닌 인간 그대로의 나’ 등에 한정되는 것이 태반이라는 지적도 있다.

반면 제도권 교육을 중시하는 미술계의 폐쇄적인 구조나 엘리트주의 등에서 파생되는 아트테이너에 대한 편견을 문제삼는 시각도 있다. 이영란 칼럼니스트는 “연예인 화가들의 작업이 언론에 의해 과대 포장되는 것도 문제, 미술대학을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작업 활동을 무시하는 발언도 문제다”라며, “ 이 같은 폄훼 저변에는 ‘자격 없는 이들이 미술시장에 자꾸 들어와 내 밥줄을 빼앗는다’는 박탈감이 깔려 있기도 하다”라고 지적한다.

▲《Never tell anybody outside the family》 전시 전경
▲《Never tell anybody outside the family》 전시 전경 ⓒ김연신 기자

하정우의 작품은 그동안 바스키아의 화풍과 유사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화풍에는 변화가 있었지만, 이번 전시 작품들 역시 연예인으로서의 페르소나, 내면의 치유 등을 주제로 소환한다는 점은 지적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작업을 시작한지 5년이 되지 않는 신진작가도 어엿한 작가이듯, 그림에 대한 작가의 애정과 함께 쌓인 15년의 시간을 고려하면 전업작가가 아니라는 이유로 편견을 가지는 것 역시 부당해 보인다. 

학고창신, 학고재의 새로운 선택은 ‘K-아트 시대’라는 빛 좋은 개살구를 구실로 아트테이너의 영향력에 편승하는 선택이 아닌지 우려가 되는 동시에, 작가로서 하정우의 진정성 있는 태도와 꾸준함은 ‘아트테이너’에 드리워진 편견을 한 꺼풀 벗길 수 있지 않을지 고무적으로 느껴지는 부분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