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문화투데이 진보연 기자] 지난 11월 19일 오후 1시 “무용의 미래를 생각하는 모임”(이하 무미생) 제4차 정책포럼이 대학로 ‘예술가의 집’에서 열렸다. 무미생 제4차 정책포럼 주제는 무형유산제도에 초점이 맞춰졌다. ▲ 임장혁 중앙대 명예교수(국가유산청 무형유산위원회 부위원장)의 “무형유산제도의 성립과 변화” ▲ 성기숙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의 “무용분야 무형유산제도의 실효성” 등 두 편의 발제가 이어졌다. 무형유산제도 성립 60여년이 흐른 현 시점에서 한국 전통가무악의 보존과 계승 및 무형유산 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논의하는 장이 됐다.

문화재보호법 제정의 정치적 함의
우리나라 무형유산제도가 일본의 제도를 본떠 만든 것이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임장혁 교수는 “무형유산제도의 성립과 변화”라는 제목의 발제를 통해 이와 관련한 내용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여 공감을 얻었다.
임장혁 교수는 국립문화재연구소, 국립민속박물관에서 학예연구관, 문화재청 무형문화재과장 등을 역임하고 현재 중앙대학교 민속학과 명예교수, 국가유산청 무형유산위원회 부위원장을 맡고 있는 무형유산 분야 국내 최고 권위자로 손꼽힌다. 특히 일본 와세다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임 교수는 일본 무형문화재 제도의 성립과 전개에 관한 높은 식견을 가진 전문 학자로 정평이 나 있는 바, 이번 발제에 대해서도 초미의 관심이 쏠렸다.
우선, 1962년 제정된 한국의 문화재보호법은 일제강점기 제정된 「조선보물고적명승천연기념물보존령」을 대체한 법인 「국보고적명승천연기념물보존법안」이 1950년 입법부에 상정되면서 실마리가 풀렸다고 소개했다. 일본은 1950년 「문화재보호법」을 제정했는데, 그 배경에는 이와같이 엄청난 정치적 함의가 내재되어 있었다.
즉, 일본의 문화재보호법은 입법부가 독자적으로 법안을 기초하였다기 보다는 연합국최고사령부의 검토를 거쳐 제정됐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미국의 영향하에 일본의 문화재보호법이 제정되었다는,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한 새로운 사실을 알게해 줬다. 얘기인즉, 미국은 일본의 천황제를 약화시키고 자유민주주의를 보급하고 정착시키기 위한 전략에서 이렇듯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것이다.
일본 문화재보호법의 성립 당시엔 3가지로 분류됐다고 한다. 즉 문화재의 범위로는 무형문화재, 민속자료, 매장문화재 등이었다. 민속자료의 개념과 기준은 시부사와 케이가 민구(民具)에 대한 개념을 “우리 동포가 일상생활의 필요로부터 기술적으로 만들어낸 신변 주변의 도구”라는 개념을 수용한 결과라는 것임을 상기시켰다.
여기서 눈여겨 볼 점은, 일본의 문화재보호위원회는 민간에서 엄격한 자격을 갖춘 자를 위촉했다는 사실이다. 때문에 그 권위와 위상은 엄청났으며 독립된 민간단체로 문화재관리에 민의가 배제되지 않고 수렴하여 관리되어야 한다는 원칙이 강조되었다.
정치권의 개입 흔적도 예사롭지 않다. 대표적으로 일본 참의원은 황실의 예술을 보호할 필요성에 대해 1946년부터 논의했다. 참의원은 유형문화재가 ‘정적 국보’라면, 무형문화재는 ‘동적 국보’ 또는 ‘고전예술’이라는 논리로 인류적 견지에서 황실예술을 보호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일본 문무성도 아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문화재보호법이 1950년에 제정되면서 여기에 무형문화재가 포함되었다는 등 자세한 내력을 설명하여 이해를 도왔다.

‘국보’라는 개념에 투영된 내셔널리즘
여기서 ‘국보’라는 개념은 내셔널리즘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기에 이 법안의 취지를 존중하여 국민의 문화유산이란 의미와 합하여 ‘중요문화재’와 ‘일반문화재’로 구분할 것이 제안되었다는 것이다. 국보란 명칭이 내셔널리즘에 관계없이 일반화되어 사용되었기에 당시에는 이러한 명칭사용이 무방했다는 것도 우리에겐 중요한 정보로 읽혔다. 한국의 중요무형문화재 개념의 탄생 배경을 알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점에서 유익한 자리였다.
이어진 한국의 문화재보호법 성립 배경에 대한 설명은 더욱 긴요하게 들렸다. 문화재보호법을 제정하기 위해 문교부는 1956년 2월 법안의 기초를 마련했으나 4.19 혁명과 5.16 군사정변이 터지면서 정치적 혼란기를 겪었고, 그러한 과정에서 법안을 수 차례 수정 보완하여 1962년에 제정되기에 이르렀다.
당시의 문화재보호법 제1조를 상기하면, “본 법은 문화재를 보존하여 이를 활용함으로써 국민의 문화적 향상을 도모함과 동시에 인류문화의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명기되어 있다. 이 대목에서 임장혁 교수는 “인류문화 발전에 기여함”이 주요 목적에 담겨있음을 주목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한편, 문화재보호법 제2조 2항의 무형문화재의 개념은, “연극·음악·공예기술 그 외에 무형의 문화적 소산으로 우리나라 역사상 또는 예술상 가치가 높은 것”이라고 규정되어 있다면서 지금도 이러한 개념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강조했다. 여기서 문화적 소산으로는 “우리나라 역사상 또는 예술상 가치가 높은 것”으로 규정된다고 설명을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임장혁 교수는 한국의 해외 전승 무형유산 정책에 대해서도 짚었다. 국회 국정감사의 단골 이슈로 항상 해외 소재 유형문화재 환수에 관한 문제가 부각된다면서, 금년에도 중국의 지자체가 지정한 무형문화재에 대해 국가유산청의 무대책, 무관심이 공론화됐다고 소개했다.
문화강국으로 회자되는 한국은 이제 무형유산제도의 측면에서도 분발해야 한다는 얘기도 곁들였다. 즉 무형유산 각 분야에서 한목소리를 내어서 조선족이나 고려인 등 해외에서 전승되고 있는 우리의 전통공연예술 자산에 대한 전승실태 조사를 체계적으로 실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간과하고 있었던 해외 소재 무형유산에 대한 기초적인 조사연구 및 보전 계승에 대해서도 특별히 관심가져야 한다고 경각심을 일깨워 줬다.

무형유산제도의 탄생 그리고 無用論
국가유산청 무형유산위원회 위원인 성기숙 한예종 교수는 “무용분야 무형유산제도의 실효성”을 주제로 한 발제에서 무형유산 제도의 성립과 변화과정에 투영된 무용계의 난맥상을 촘촘하게 짚었다.
우선, 근대이후 우리나라는 두 차례에 걸쳐 전통문화의 보전과 전승에 위기를 겪었다면서, 첫째는 전통사회에서 근대사회로의 이행기, 일본의 지배를 받게 되면서 일제의 민족문화말살 정책에 따라 전통문화가 제대로 계승될 수 없었던 시대적 상황에서 우리의 전통문화는 억압받는 상황에 놓여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한 과정에서 궁중의 의례와 공연문화를 비롯 민간에서 전승돼오던 많은 민속예능이 단절되거나 굴절, 왜곡되었다고 강조했다.
두 번째 위기는 1960년대 산업화·공업화·도시화되는 과정에서 발생하였으며, 특히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수립·작동되면서 농촌문화가 사라졌고, 전통문화 역시 본래의 ‘본디 그 모습’을 상실한 채 겨우 명맥을 유지하는 상황에 처해졌다는 것이다. 그러한 배경에서 ‘우리 것’을 보존, 계승하자는 취지에서 무형문화재 제도가 탄생되었고, 무형문화재 제도는 문화재보호법에 근거해 실시된 공적(公的) 제도화의 산물로 이해된다고 설명을 이어갔다.
다시 말해, 1962년 문화재보호법이 제정된 이후 무용과 음악, 연희, 음식, 공예 등 무형의 유산은 국가적 차원의 보호아래 전승 보존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무형문화재 제도로 인해 소멸위기에 놓여졌던 많은 무형유산이 온전한 모습으로 전승되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음은 박정희 정부의 전통문화 진흥·육성정책의 성공적 사례로서 긍정적으로 평가된다고 주장했다.
우리가 알 듯, 무형문화재 제도로 인하여 무용분야의 경우, 진주검무·승전무·승무·처용무·학연화대무·태평무·살풀이춤 등 총 7개 종목이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됐고, 그밖에 각 시도 무형문화재 지정종목이 30여개에 이른다.
한편, 무형문화재 지정으로 인한 부정적 측면에 대해서도 언급하여 주목을 끌었다. 전통무용이 무형문화재로 처음 지정되기 시작한 1960년대와 비교해 오늘날의 전승환경은 많이 변화하였고, 특히 전승 주체의 변화를 눈여겨 봐야한다고 주장했다. 무형문화재 제1세대 예능보유자들 대부분은 이왕직아악부를 비롯 신청·재인청 혹은 권번 출신이었고, 무용분야의 제1세대 보유자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전통무용 전승현장의 부익부 빈익빈, 양극화 심화
제1세대 전통예인 대부분은 사회적 천대와 멸시 속에서 전통무용을 지켜왔으며, 현재 무형문화재 제1세대 보유자 대부분은 작고하거나 연로해서 전승활동이 어렵게 되었음을 눈여겨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무형유산으로 지정된 종목과 지정에서 누락된 종목 간의 전승양상이 첨예하게 다르다는 점도 직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전통무용 중에서 개인종목의 경우, 이른바 인기종목으로 분류되어 이수자, 전수자가 범람하는 현상을 보이지만 단체종목의 비인기종목인 경우는 열악한 전승환경에 처해 있는 것이 현실이라는 것이다. 또한 무형문화재 지정에서 소외된 전통무용의 경우는 소멸될 위기에 놓여있거나 아예 그 존재가 사라진 경우도 없지 않다고 역설했다.
1960년대 초반, 소멸되는 전통문화를 보존 계승하자는 취지에서 무형문화재제도가 생겼고, 이 제도로 말미암아 망실될 위기에 놓여졌던 전통무용이 무형문화재로 지정, 국가적 차원의 보호아래 안정적 전승기반이 마련된 것은 긍정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무형문화재 제도가 시행된지 60여년이 흐른 작금의 전통무용 전승환경에 비춰볼 때 이 제도의 실효성은 그리 희망적이지 않다고 내다봤다.
무형문화재 지정종목 중 장르 또는 종목에 따라 부익부 빈익빈, 즉 양극화 현상이 심각하다는 지적이다. 전승여건은 개인종목과 단체종목으로 확연히 나뉘는데, 가령 승무·살풀이춤·태평무 등 이른바 교방계열 춤의 경우, 소멸 위기는커녕 수요자의 범람으로 인한 폐해가 심각한 것이 현실이라는 것이다.
무용분야의 경우, 보유자 개인에게 지나치게 권한이 집중되면서 사유화 내지 권력화되는 경향이 없지 않음도 거론되었다. 전통무용 핵심 전승주체인 보유자들이 공적(公的) 제도화의 산물이라는 점을 망각하고 개인적 탐욕에서 기인된 온갖 잡음과 폐해가 발생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1세대 보유자에 이어 세대교체된 2세대 보유자들 역시 일부를 제외하고는 이러한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고 일갈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무용분야에서는 무형문화재 제도 무용론(無用論)까지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무용계 안팎의 부정적 여론을 전했다.

2019년 불공적 논란 속 무용분야 보유자 인정
_정치권력·행정권력·어용학자의 합작품
주지하듯, 무용계는 지난 2019년 무려 8명에 달하는 국가무형유산 보유자를 한꺼번에 인정하는 초유의 사건에 직면해 있었다. 성기숙 교수는 그러한 과정의 폐해를 반추하면서 국가무형유산 제도에 대한 근본적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가령, 무형문화재 보유자로 지정되면 무엇이 이로운가? 우선 개인에게는 더없는 명예이고 가문의 영광이며, 일평생 연마해온 자신의 기예능이 국가로부터 공인된다는 점에서 그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좋은 기회라고 설명했다. 또한 경제적 이익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무형문화재 보유자에게는 매월 200만원의 전승지원비가 지급되고, 전수체계 선상에서 전승교육사(전수조교)-이수자-전수자를 배출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갖게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전통무용의 고유한 유파 내지 계파 형성이 가능하고 자신만의 아성(牙城)을 쌓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주어진다. 사실, 무형문화재 예능보유자가 되면 공적(公的)인 혜택보다 부수적으로 누리는 혜택이 몇 배 더 많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것이 중론이다.
예컨대, 무형문화재 지정종목이 대학 무용교육의 커리큘럼으로 채택되고 국공립무용단의 학습종목으로 선택되며, 나아가 각종 무용콩쿨대회의 경연종목으로 선정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보유자는 명예와 부(富)를 동시에 누리는 특혜를 입고 있다는 것이다. 무형문화재 예능보유자로서 누리는 이 모든 혜택이 일회성이 아닌, 이승에서의 삶이 마감되는 순간까지 영구적으로 지속되는 이른바 종신제(終身制)라는 점은 그 무엇과도 비견될 수 없는, 막강한 권위(권력?)를 갖게되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참석자들은 무형유산은 우리 민족의 혼과 얼이 스며있는 역사의 지표와 다름없다면서, 지난 2019년 무용분야는 한꺼번에 8명의 보유자를 인정하는 무형문화재 역사상 초유의 사건 주역이 되었다면서, 이는 무형문화재 제도가 시행된 지 60여년 만에 발생한 전무후무한 사건으로 문화계 안팎의 시선이 따가웠던 시기를 반추했다. 무려 6차례의 무용계 성명서 발표, 약 300여건에 달하는 비판적 논조의 언론보도 등 핫이슈가 되었던 점을 새삼 상기시켰다.
2015년 박근혜 정부에서 촉발되어 문재인 정부에서 첨예하게 공론화된 무용분야 무형문화재 보유자 인정 불공정 논란은, 2019년 9월 17일 인정예고 공시에 이어 2019년 12월 23일 보유자 인정서 수여식(당시 문화재청장은 정재숙)이 있었던 바, 겉으로는 종지부를 찍은 것처럼 보이지만 역사에 각인된 불공정 흔적은 더욱 뚜렷하게 한국무용사에 깊이 아로새겨져 있다고 역설했다.
성기숙 교수는 참석자들이 질의한 여러 사안에 대하여 전문가로서 뚜렷한 소신과 신념으로 답변하여 주목을 끌었다. 무용분야 보유자 인정과정의 불공정 논란의 핵심에 대하여, 첫째 무형문화재 제도의 가장 중요한 가치인 원형보존이 훼손된 점, 둘째 보유자 인정과정의 부당절차 및 그 결과로서 불공정이라고 정리했다. 2019년의 사건은 무형문화재 보유자가 되기 위한 일부 전승자들의 현실적 탐욕에 저당잡힌 정치권력, 행정권력, 어용학자의 합작품이라고 일갈했다.

신무용의 무형유산 지정은 시기상조, ‘시간의 숙성’ 필요
그렇다면 바람직한 무형유산 보유자 지정을 위한 해법은 무엇인가로 논의가 이어졌다. 이에 성 교수는 무형유산제도 제도가 성립된 지 60여년의 세월이 흘렀고, 이에 전승환경에 따라, 또는 장르에 따라 면밀한 재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주장했다. 무용분야 예능보유자 인정의 경우, 변화된 전승환경을 고려하여 ‘사람’ 지정에서 ‘종목’ 지정으로 바뀌어야 하고, 나아가 장르별 특성에 맞는 이른바 ‘맞춤형’ 제도 구현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역설하여 공감을 얻었다.
참석자 중에서 근대의 산물인 신무용(新舞踊)에 대한 뜨거워진 관심도 제고해야 한다는 의견이 개진되어 주목을 끌었다. 특히 ‘김백봉 부채춤’의 이북오도청 무형문화재 지정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우선 김백봉 부채춤 보유자 인정이 기형적으로 이뤄졌다는 지적이다. 신규 지정되는 해당 종목 보유자가 생존해 있을 경우엔, 해당 종목의 보유자가 당연히 보유자로 지정되는 것이 원칙이고 일반적이다. 부채춤의 경우, 원(元) 보유자인 김백봉 선생 생존 시 지정됐음에도 그의 딸 안병주 경희대 교수가 보유자 지위에 올랐다는 것은 한마디로 넌센스라는 것이다.
성 교수는 부채춤의 경우, 원 보유자인 김백봉을 제치고 그의 딸 안병주가 보유자로 인정된 것은, 무형문화재 보유자 인정제도에서 명백히 잘못된 선례를 남겼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현 단계에서 신무용에 대한 무형문화재 지정 논의는 시기상조이며, 이른바 절대시간을 통한 숙성과정, 즉 ‘시간의 숙성’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때문에 신무용은 근대무형유산으로 별도 관리하는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면서, 이 역시 먼 훗날의 얘기라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무형유산 지정에 앞서 신무용에 대한 자료발굴, 조사연구, 학술탐구가 체계적으로 이뤄져야 하며 이를 통해 신무용에 대한 예술성, 학술성, 희소성 등 기본적으로 학적 토대를 통한 신무용의 무형유산적 가치 및 지정의 당위성이 학적(學的)으로 논구되고 이에 토대하여 관련 분야 학계에서 공감을 얻는 절차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부 학회 및 협회를 중심으로 한 무분별한 신무용 명작무 지정 및 문화체육관광부 소속 국립예술기관의 사적(私的) 인맥을 통한 신무용 연계 기획프그램은 공공성을 망각한 특혜의 소지가 있는 것으로서 경계의 대상이라는 주장에 모두가 공감하는 분위기였다.

무미생의 무용계 현안 공론화 및 해법 찾기, 주목도 상승
참석자 중심으로 진행된 자유토론은 포럼 분위기를 더욱 뜨겁게 달구었다. 먼저 경기민요 묵계월 소리를 전승하고 있는 김영임 전승교육사(전수조교)가 포문을 열었다. 지난 2023년 경기민요 보유자 인정에서 밀린 그의 분노섞인 절박한 토로는 참석자들의 심금을 울렸다. 「회심곡」으로도 유명한 여류명창 김영임은 일평생 경기민요 묵계월 소리를 전승하는데 열과 성을 다했으나 지난 2023년 경기민요 보유자 인정에서는 안비취 유파 소리꾼 3명만 인정되는 등 불공정한 제도로 인해 고난을 겪고 있다고 고백했다.
이에, 임장혁 교수는 무형문화재의 보전 계승에서 원형 보존 및 유파별 전승체계 구축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중요한 가치라고 강조하면서, 앞으로 이렇듯 불합리한 제도는 정상적으로 바로잡아가야 하는 시급한 과제라고 주장했다.
무형유산위원회 위원들의 자질과 자격문제도 거론됐다. 전문가로서의 실력과 도덕적인 측면이 중요하다면서, 지정 유무에 대한 가치판단을 따질 때 예술성, 학술성, 희소성을 제대로 간파할 수 있는 높은 학식과 전문적 심미안 그리고 무엇보다 도덕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창의와 혁신’을 키워드로 한 무미생 연속 정책포럼이 3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공정하고 책임있는 예술지원체계 구축을 통해 순수무용예술 활성화를 견인하고, 건강한 무용사회 풍토 조성 및 무용생태계 복원을 목표로 한다는 초심 그대로 이어가고 있음에 무용계 안팎에서 점차 주목도가 높아지고 있다.
무미생 운영위원으로는 김긍수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김용걸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문영 국민대 교수, 정혜진 전 서울시무용단 예술감독, 백현순 국립한국체육대학교 교수, 오레지나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이윤경 서울종합예술실용학교 교수, 성기숙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상임간사) 등이 참여하고 있다.
무미생은 지난 9월 세대, 장르, 지역을 초월하여 자유입론적 관점에서 미래 무용발전을 위한 현장 무용인들의 자발적 참여로 생산적이고 실효성 있는 ‘공론의 장’을 마련한다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미래 무용발전을 위한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정책 발굴 및 대안 모색에 중점을 두고 내년 2월까지 총 19개의 의제를 중심으로 정책포럼을 개최할 예정이다.
무형유산제도를 논의한 제4차 무미생 정책포럼에는 무용계뿐만 아니라 국악계 전문가들도 참여하여 더욱 확장된 시각에서 활발한 논의가 진행되었다. 채치성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을 비롯 김영임 국가무형유산 경기민요 전승교육사, 김긍수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김명주 순천향대 명예교수, 정혜진 전 서울시무용단 예술감독, 윤미라 경희대 교수, 백현순 국립한국체육대학교 교수, 신효심 문화체육관광부 예술국 사무관, 정혁준 전 부산국립국악원 안무자, 최원선 본(本)댄스컴퍼니 예술감독, 박태희 인천시티발레단장 등 약 30여명이 참석했다.
무미생 제5차 정책포럼은 오는 12월 11일(수) 오후 1시, 예술가의 집 세미나2실에서 개최된다. ▲ 구문모 한라대 교수(문화경제포럼 대표)의 “문화산업화에 대한 담론적 접근” ▲ 김긍수 중앙대 명예교수(전 국립발레단 단장)의 “무용산업화의 개념과 활로 모색” 등이 발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