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가야금은 중국이나 일본 그밖의 어느나라에서도 쫓아올 수 없는 최고의 디자인 감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
“2025년 영동세계국악엑스포를 계기로 예전 격조있으면서도 화려하고 세련된 문양과 디자인의 국악기를 비롯해 의상, 무대디자인들이 많이 선보이기를”
현대 사회 주류로 두드러지게 자리잡힌 것이 산업에 문화를 입히는 것이다. 이전에는 자동차의 주행성, 편리성, 안전성등에 기준 잣대를 두었다면 지금은 그 기본 위에 얼마나 세련된 미적 감각을 볼 수 있는냐에 따라 판매량이 결정되고 있다. 또한, 건설회사에서 전원주택이나 아파트를 지을 때 벽의 색깔에서부터 창문의 문양, 문고리의 형태 등등 얼마나 세심하게 고려해서 지었는가를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공연계만 하더라도 80년대까지는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공연하는가 하는 단순한 정보만을 제공하고 관객들도 더 이상의 요구를 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 서서히 공연 내용을 간접적으로 알리는 데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 포스터와 초청장, 프로그램, 전단 등에 공연 이미지를 표현하기 시작하였다. 전단지 한 장에 그려진 공연제목에서부터 사진 이미지, 구도, 색깔 등을 보게 되면 그 시상(示想)으로도 연주회 감상(感想)으로의 발을 디디게 된다. 이와 같이 우리 삶에서 문화라고 하는 것이 생활 곳곳에 스며들어 누가 강요하지 않더라도 스스로가 문화적 안목으로 가치 판단을 하고 자유롭게 즐기는데 까지 온 것이다.
우리가 일본에 의해 강제적으로 침탈된 36년 동안 모두 것이 애리지만 개인적으로 더욱 스라리게 하는 것은 수천년 동안 이어온 고품격의 문화적 안목과 식견이 유린당하고 심지어는 왜곡되기까지 한 것이다. 19세기 후반 이후 조선에 들어온 서양인들의 눈에 충격적으로 비춰 진 것이 어느 집을 가더라도 그림이나 서예 작품이 한 점씩 걸려 있고 밥을 먹는 사발이나 그릇들이 제 각각이며 작품 아닌 것이 없더라는 것이다.
백제의 옥구슬이나 신라의 금관 등 오늘날 작품과 견주어도 전혀 뒤떨어지지 않으며 기와장에 그려진 얼굴무늬 수막새나 연꽃무늬 수막새를 보면 입이 헤 벌어질 정도이다. 악기에서도 이와 같은 우리 선조들의 문화적 세련미를 볼 수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현재 일본 나라시의 정창원(正倉院, 일본 황실의 보물창고)에 보관되어 있는 신라금이다.
약 1200년 전의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 신라금은 신라에서 가야금을 만들어 일본에 전해 준 것인데 그 아름다움이 오늘날 가야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다. 신라금 앞면과 뒷면 모두 금칠을 해 놓았는데 봉황이나 다양한 화초등을 금으로 수를 놓은 것이다. 또 가야금의 줄을 받치는 안족의 모양을 보면 일본이나 중국의 쟁(箏, 가야금과 비슷한 현악기) 안족보다 훨씬 안정감이 있으면서 세련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여기에 신라금 안족에는 꽃모양의 나전을 박아 놓은 것을 볼 수 있다. 당시 신라의 가야금은 중국이나 일본 그밖의 어느나라에서도 쫓아올 수 없는 최고의 디자인 감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백제에서 일본으로 전해준 세로로 부는 관악기(일명 ‘각조척팔(角調尺八)’, 일본 정창원 소장)나 신라의 꽃문양의 가로로 부는 관악기(일명 ‘신라화문횡적(新羅花紋橫笛)’, 일본 천리대학 소장)를 보면 악기가 아닌 하나의 수준높은 공예 작품으로 여겨질 만큼 최고의 미감을 가지고 있다. 이와 같이 우리 선조들이 즐겼던 생활 곳곳의 모든 것들이 다 예술작품이듯이 악기 또한 단순한 음악의 표현수단으로서만 여긴 것이 아니라 하나의 예술품으로 여겼던 것이다.
내년 9월 12일부터 10월11일까지 영동세계국악엑스포가 영동군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이를 계기로 예전 격조있으면서도 화려하고 세련된 문양과 디자인의 국악기를 비롯해 의상, 무대디자인들이 많이 선보이기를 바란다.
*'주재근의 얼씨구 한국음악과 문화'는 이번 호를 끝으로 연재를 마감합니다. 그동안 많은 관심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