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예종 졸업 직후 우루과이 국립발레단 스카우트, 주역으로 활약
잭슨ㆍ비엔나ㆍ헬싱키 등 해외발레콩쿠르서 입상, 국제적 실력 인정받아
<안중근, 천국에서의 춤> 이시다 役, 5년 연속 출연 “배역 애정 남달라”
컴퍼니 창단공연 <갓 GAT> 전석 매진…올해 전국 6개 지역 투어
“한국 전통 소재 다룬 <갓>, 해외 무대에 올리고파”
[서울문화투데이 진보연 기자] 몇 해 전 넷플릭스를 통해 방영된 좀비 드라마 <킹덤>은 해외에서 뜻밖의 ‘갓’ 열풍을 일으켰다. <킹덤>에는 갓, 정자관, 사모, 전립 등 다양한 형태의 모자가 등장한다. 온라인 쇼핑몰 이베이와 아마존에는 ‘Korean Traditional Hat Gat(한국 전통 모자 갓’이라는 제목으로 갓을 판매하는 게시물이 등장했고, 외국인들은 ‘갓’을 신선한 패션 아이템으로써 주목하며 신(God)과 같은 발음을 활용해 ‘Oh, My Gat’ 등의 언어유희를 즐기기도 했다.

지난해 6월 구로아트밸리예술극장에서 공연된 윤별발레컴퍼니의 창단공연 <갓 GAT>은 앞서 언급한 ‘갓’ 열풍에서 힌트를 얻어 탄생한 작품이다. 문화적 배경에 대한 이해 없이도 하나의 오브제로서 낯선 문화권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는 점을 캐치한 것이다. 한국의 전통 모자인 ‘갓’을 통해 계급과 상황에 따라 테마별로 작품을 구성했다. 흑립, 주립, 족두리, 놀부 등 총 4개 장으로 구성되는 이 작품은, 역사, 의상, 한국의 전통가치를 서양의 춤인 발레 동작으로 유쾌하게 해석했다. 해당 공연은 매 회차 매진 행렬을 이루며 윤별발레컴퍼니를 확실히 각인시켰으며, 작품성을 인정받아 올해 전국 6개 지역에서 투어 공연이 예정되어 있다.
윤별발레컴퍼니를 이끄는 윤별 대표는 한국 발레계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며, 발레의 현대적 해석과 전통적 아름다움을 조화롭게 선보이고 있다. 2022년 윤별발레컴퍼니 설립했으며, 젊은 안무가와의 협업을 통해 신선하고 독창적인 무대를 창조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그는 선화예고와 한국예술종합학교 실기과에서 발레를 전공한 발레무용수다. 한예종 재학 중 동아무용콩쿠르 2위(2012), 잭슨국제발레콩쿠르 2위(2014), 비엔나 국제발레콩쿠르 파드되 1위와 헬싱키 국제발레콩쿠르 2위(2016) 등 유명 해외발레콩쿠르에서 입상하면서 발군의 실력을 인정받았다. 졸업 직후 우루과이 국립발레단에 입단해 활동했으며, 귀국 후 현재까지 국내에서 다양한 무대에서 특유의 기량이 돋보이는 활약을 이어가고 있다.
2021년 예술의전당 창작발레로 재제작된 M발레단 <안중근, 천국에서의 춤>에서 일본장교 이시다 역을 맡아 올해까지 5년 연속 무대에 오르고 있다. 또한, 지난해 한국의 전통의복을 소재로 한 창작발레 ‘갓(GAT)’을 윤별발레컴퍼니 창단공연으로 선보이며 한국 창작발레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었다. 이와 더불어, 2023년 한국발레협회 신인발레리노상에 이어 개인 발레 무용수로는 처음으로 지난해 한국발레협회 당쇠르노브르상을 수상했다.
본지 서울문화투데이는 꾸준한 창작활동을 통해 혁신적이고 열정적인 발레리노로서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윤별의 활동에 주목하며, 그를 제16회 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 젊은예술가상 무용부문 수상자로 선정했다. 새로운 시작과 지혜로운 변화의 기운을 담은 을사년의 첫 번째 달, 윤별발레컴퍼니 윤별 대표를 만나 그의 발레 이야기를 들어봤다.

새해가 되자마자 기쁜 소식을 가장 먼저 알리게 됐다. 제16회 문화대상 젊은 예술가상 수상을 축하한다. 시상식에 앞서 독자들에게 수상 소감을 전한다면.
올해 만으로 30대가 됐는데, 30대가 되자마자 이렇게 좋은 소식을 듣게 되어 정말 감사하다. 최근 들어 상을 조금씩 받기 시작하는데, 그간의 노력을 인정받는 것 같아 기쁘고 보람도 느낀다.
현재 대전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건지.
컴퍼니와 연습실이 서울에 있다 보니 활동은 주로 서울에서 이뤄지지만, 대전 등 다른 지역도 아우르며 공연을 하고 있다.
발레를 처음 접하게 된 건 언제인가.
5살 때 부모님의 권유로 처음 시작하게 됐다. 기억도 안 날 정도로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하고 있었다. 부모님의 권유로 발레를 처음 접하게 됐고 이를 당연하게 여겼지만, 하기 싫었던 적은 한 번도 없다. 춤추는 그 자체로도 즐겁지만, 참 솔직한 예술인 게 내가 잘하면 박수로 확실하게 보답을 받을 수 있으니 더 신이 나서 하게 되는 것 같다.
처음엔 그냥 뛰어다니고 놀면서 가볍게 시작했는데, 제대로 배우고 싶다고 마음을 먹은 건 초등학교 1학년 때였다. 국립발레단의 <고집쟁이 딸> 대전 공연을 보고 완전히 푹 빠졌다. 기억은 안 나는데 당시 공연을 본 후 부모님에게 “진짜 발레 하고 싶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원래 취미반에서 배우는 정도였는데, 예비 전공반에 가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고 그때부터 아예 발레로 진로를 정하게 됐다.
부모님이 모두 예술가라고 들었다. 무용 쪽은 아닌 것으로 아는데,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예술적 영향은 어느 정도라고 보는지.
두 분 다 미술을 전공하셨다. 아버지는 조각가, 어머니는 화가이시다. 부모님께서 발레에 관심이 많으셔서 대학에서 교양으로 발레 수업도 들으셨다고 한다. 그때 발레에 대한 매력에 반해 아들을 낳든 딸을 낳든 꼭 발레를 시켜봐야겠다는 생각을 하셨고, 그렇게 내가 발레를 시작하게 됐다.
발레 공연도 물론 자주 보러 다녔지만, 미술관에서 전시를 함께 봤던 것의 영향도 받은 것 같다. 미적 감각을 키우는데 많은 도움을 주셨다. 미술과 무용이 어떻게 보면 시각 예술이라는 공통점이 있지 않나. 오브제가 있으면 사람들이 더 받아들이기 쉽다는 걸 어릴 때부터 느꼈고, 그 깨달음은 이후 나의 작품에도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첫 국제무대 경험은 언제였나. 당시 했던 작품과 그때의 감정이 기억나는지.
18살이었던 한예종 1학년 때 나갔던 이탈리아 시칠리아 국제콩쿠르가 처음이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가장 뜻깊게 생각하는 국제무대는 2014년 출전했던 USA 국제발레콩쿠르(미국 잭슨 국제 발레콩쿠르)다. 세계 4대 발레콩쿠르로 불릴 정도로 규모가 큰 국제대회이기도 하고, 해당 대회 입상으로 군 면제도 받았기 때문에 여러모로 의미가 깊은 대회로 기억된다.
잭슨 콩쿠르는 4년에 한 번 열려 발레 올림픽으로도 불리는데, 그만큼 여러 타이밍이 잘 맞아야만 나갈 수 있다. 신체 타이밍과 더불어 주변의 여러 여건까지 말이다. 모두가 기회를 잡을 수 없는 만큼 무용수들에게는 꿈의 무대이기도 하다. 대회 자체를 경험해보고 싶은 마음에 출전하게 됐는데, 좋은 수상 결과로 이어지게 되어 더욱 기뻤다. 당시 <돈키호테> 작품을 준비했는데, 공교롭게도 외국 발레단에서 첫 주연을 맡은 것도 <돈키호테>라 애착이 많이 가는 작품이다. 수없이 준비했지만 하면 할수록 더 어려워지는 작품이고, 그래서 재밌다.
선화예중, 선화예고, 한예종을 거쳐 졸업하자마자 우루과이 소드레 국립발레단에 입단했는데,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한예종 재학 중에, 국제스칼라십 한국발레콩쿠르에서 흠모하던 훌리오 보카(Julio Bocca)를 만났다. 발레계에 전설과도 같은 분인데 심사위원과 워크숍 일정으로 방문했다가, 클래스에서 내가 하는 걸 보시더니 같이 일해보자는 제안을 받았다. 깜짝 놀랐다. 나에겐 연예인 같은 분인데 오퍼를 받으니 꿈만 같았다. 그 자리에서 바로 계약서까지 썼고, 원래 당장 같이 가자고 했는데 졸업하고 가야 한다고 하니 그때까지 기다려줬다. 졸업하고 다음 날 바로 출국했다.
사실 준비할 시간이 전혀 없었던 터라 적응하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우루과이는 스페인어를 쓰는데 당연히 할 줄 몰랐다. 가서 한 1년간은 춤만 추다가, 1년째 되고 나서부터는 친구들하고도 조금씩 가까워졌다. 일부러 혼자 안 살고 룸메이트를 구해서 생활하기도 했다. 발레단 내에서도 중요하지만, 밖에서의 삶도 중요하게 생각해서 발레 연습 외에 그곳 친구들과 최대한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했다.
우루과이에서 얼마나 활동했나.
그곳에서 3년 좀 안 되게 활동하고 돌아왔다. 선생님께서 그만두신 영향도 있고, 스스로도 발레단을 옮겨 유럽 쪽으로 진출해보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코로나가 딱 터져, 귀국할 수밖에 없었다. 체코의 발레단에 합격한 상태였는데 코로나 때문에 계속 밀리고 밀리다 결국 못 가게 됐다. 당시 나에겐 되게 중요했던 시기였기에 외부적 상황에 의해 계획이 틀어진 것이 속상하고 힘들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오히려 너무 다행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코로나 덕분에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입단했기 때문에 한국으로 돌아와 프리랜서 활동을 처음 해봤는데 (단원 생활과는) 또 다른 세상이었다.

이후 한국에 돌아와 ‘윤별과 친구들’이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작품을 선보였다. ‘윤별’의 이름을 앞세우게 된 이유가 궁금하다. 구성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하다.
유명한 이름 콘셉트를 따랐다. 외국에서도 종종 쓰이고, 우리나라에선 ‘강수진과 친구들’이 있었다. 코로나 때문에 해외에서 활동하던 친구들이 대부분 무대를 잃게 된 걸 보고 ‘우리가 직접 공연을 만들어 보자’라고 제안했다. 처음엔 발레 갈라, 발레 페스티벌 같은 이름을 붙이려 했는데 함께하는 친구들이 ‘윤별과 친구들’로 하자고 하더라. 의견을 가장 먼저 낸 것도 나고, 제작비도 내가 내서 그랬던 것 같다. (웃음)
어려움을 적극적으로 타개해보려는 취지로 시작된 프로젝트였는데, 생각보다 그 과정이 새롭고 즐거웠다. 만들어진 공연에 출연하는 플레이어에서, 직접 공연을 만드는 기획자 역할을 한다는 자체로 새로운 원동력을 얻을 수 있었다. 도시락 메뉴까지 정해야 하는 위치다 보니 책임감 자체가 달랐다. 타이틀부터 팸플릿, 공연 구성 프로그램, 조명, 음향, 출연자 등 처음부터 끝까지 다 내가 해야 하는 거라 어렵기도 했지만 뿌듯함이 훨씬 컸다.
3년간 총 3번 선보였는데, 12명으로 시작했던 공연이 마지막엔 참여 무용수가 거의 50명까지 늘어났다. 공연을 할수록 관객들에게 많은 박수를 받았고 입소문도 잘 나서 점차 스케일이 커졌다. 공연이 잘 되는 건 좋은 일이지만 그런 중에도 나의 색깔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다. 쉽게 쉽게 가는 게 아니라 내가 고생하더라도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내가 힘들수록 결과가 눈에 보이게 달라지는 걸 느꼈기 때문에, 뭐 하나 대충 할 수 없었다.
<안중근 천국에서의 춤>에 초연부터 꾸준히 참여했다. 일본 장교 이시다 역을 맡아 강렬함을 남겼는데, 악역을 표현하는 것에 대한 부담은 없었는지.
이시다는 내가 정말 사랑하는 캐릭터다. 수많은 작품을 만들고, 춤추고, 연기하면서 느낀 건 악역이 매력적일수록 선역이, 주인공이 빛난다는 것이다. 나는 안중근을 출 수 있는 기회가 와도 이시다를 선택할 거다. 그만큼 이 캐릭터가 나에게 소중하고 애착이 간다. 2021년부터 올해 3월 공연까지 5년 연속 출연할 수 있다는 게 굉장히 뜻깊다. 그래서 더 잘하고 싶어 매년 새로워지려고 연구한다.
이시다는 역사에 없는 인물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지만, 안중근과의 대립 구조와 극적 긴장감을 위해 창조된 캐릭터이다. 오리지널이 없다 보니 더 활개를 칠 수 있었다. 사람보단 늑대와 같은 동물처럼 표현하려 노력했다. 안중근의 영웅적 면모가 더 부각될 수 있으려면, 이시다가 이에 대등한 캐릭터성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5년째 같은 캐릭터를 하는 만큼 조금씩이라도 다르게 표현하려고 노력을 정말 많이 한다. 캐릭터 자체는 바뀌는 게 없으니 눈빛이나 몸짓 등 큰 틀은 바꾸지 않되 그 안의 내용물을 바꾸는 것이다. 이를 알아차리는 팬분들도 있어서 더 재밌는 것 같다.

지난 2022년에는 ‘윤별발레컴퍼니’를 창단했다. 창단 공연은 지난해 6월 처음 선보이게 됐는데, 본격적인 발레단 활동은 언제 처음 시작된 것인지.
2022년 5월에 공연을 위해 단체명이 필요해 ‘윤별발레컴퍼니’라는 이름을 처음 사용했는데, 정식 창단은 지난해다. 나는 항상 새로움을 위해 노력하는데, 꿈을 실현하기 위해선 주변에 마음이 맞는 사람들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각자가 가진 꿈을 나와 함께 이룰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은 마음에 컴퍼니를 창단하게 됐다. 무용수는 은퇴 시기가 빠르고, 그중에서도 가장 빠른게 아마 발레일 것이다. 언젠가는 무용수 이후의 인생을 시작했어야 하는데, 기왕이면 활동력 있고 아직 뜨거운 시기에 빨리 만들고 싶었다. 그래야 은퇴한 후에도 현역 시기의 움직임을 담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지난해 공연은 프로젝트성으로 모여 진행했고, 올해 공연부터는 오디션을 통해 단원을 선발해 함께할 예정이다. 고정 단원을 뽑으면 책임감이 더 커지겠지만, 그럼에도 아직까진 설렌다. 단원들과 만들어갈 무대들이 기대된다.
창단 공연 <갓>이 전 회차 매진되는 등 매우 뜨거운 호응을 받았다. 한국 전통 모자인 ‘갓’과 서양 무용 장르인 ‘발레’의 조합이 이색적이다.
박소연 안무가가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을 보고 영감을 얻어 탄생한 작품이다. 처음 아이디어를 듣고 ‘발레와 갓, 이건 될 수밖에 없겠다’라고 생각했다. 문화적 배경에 대한 이해 없이도 하나의 오브제로서 어필이 될 수 있다는 게 신선하게 다가왔다. 한국의 전통 모자인 ‘갓’을 통해 계급과 상황에 따라 테마별로 작품을 구성했다. 흑립, 주립, 족두리, 놀부 등 총 4개 장으로 구성되며 한국의 역사와 전통을 담은 ‘갓’과 서양 무용 장르인 ‘발레’의 만남만으로도 관객에게 흥미를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던 초연 무대였다.
2025년 <갓>은 오는 4월부터 안동, 서울, 여수, 대전, 광명, 전주 등 6개 지역에서 공연을 선보인다. 지난해 공연에 함께했던 강경호, 김유찬, 정성욱 무용수가 얼마 전 Mnet <스테이지 파이터>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 STF무용단에서 활동하게 됐지만, 이와 별개로 올해 <갓> 공연에도 함께해줄 예정이다.
지난해 <갓>을 처음 올리며, 다음 해 목표를 전국 투어로 잡았는데 6개 지역에서 공연을 선보일 수 있게 됐다. 궁극적 목표는 이 작품을 해외에 알리는 것이다.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 등을 생각해보긴 했지만, 무용수가 20명 이상 나오는 작지 않은 규모인데다 스태프까지 움직이면 최소 30명이 움직여야 하는데 아무래도 예산 문제 해결이 고민이다. 아직 이에 대한 정보가 많지 않아 루트를 더 알아봐야 할 것 같다.

2023 한국발레협회 ‘신인발레리노상’에 이어, 2024 ‘당쇠르노브르상’까지 연달아 수상하게 됐다. 자신만의 컴퍼니를 만든 후 무용수 개인으로 활동할 때와는 또 다른 활약으로 주목과 인정을 동시에 받고 있는데, 스스로 생각하는 자신의 강점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지난해 받은 ‘당쇠르노브르상’은 역사가 30년가량 되는데, 국립발레단이나 유니버설발레단(UBC) 단원이 아닌 사람이 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하더라. 국립이나 UBC에 소속된 무용수보다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무용수가 훨씬 많다. 그리고 그들 중에는 기존 단체가 아닌 새로운 시도를 위해 프리랜서의 길을 선택한 사람들도 있고, 나 역시 그 경우였다. 건방져 보일 수도 있지만, 조금씩이라도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수상 자체로도 기쁘지만 이러한 의미가 더해지니, 미약하나마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느낌이라 더욱 감사하다. 혼자 개척만 하다가 끝나면 사실 힘이 빠지지만, 그 가운데 결과를 얻다 보니 더 과감하게 도전할 수 있는 원동력이 생긴다.
단체를 이끄는 일이 쉽지만은 않을 텐데, 무용단 대표로서의 목표와 무용수 개인으로서의 꿈은 무엇인가.
개인과 단체를 관통하는 목표는 “얼마나 많이 보았느냐 보다 얼마나 깊이 보았느냐”라는 우리 컴퍼니의 슬로건에 담겨 있다. 수많은 관객이 가볍게 내 춤을 보는 것보다, 한 공연에서 한 분이라도 내 춤을 보고 감동받길 바란다. 무대로 한 명의 인생이라도 뒤흔들 수 있다면 무용수로서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어린 날의 내가 <고집쟁이의 딸>을 보고 발레리노의 꿈을 키운 것처럼, 어린 관객이 나의 춤을 보고 발레를 시작해 꿈을 꾸고 내가 그 꿈 안에서 살 수 있는 선한 영향력을 지닌 아티스트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