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진섭의 비평프리즘] 샘, ‘개념’에서 태어나 ‘개념’으로 돌아가다!
[윤진섭의 비평프리즘] 샘, ‘개념’에서 태어나 ‘개념’으로 돌아가다!
  • 윤진섭 미술평론가
  • 승인 2025.02.12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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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11일, 경기도 평촌에 있는 ‘2기적 팩토리’에서 요란한 장례식이 열렸다. ‘현대미술의 아버지’로 일컫는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1887-1968)의 저 유명한 오브제 작품 <샘(Fountain)>(1917-2024)이 죽은 지 근 2년 만에 드디어 장례식을 치르게 된 것이다. 

샘의 장례식 장면 ⓒ 박동욱 사진가
▲샘의 장례식 장면 ⓒ 박동욱 사진가

‘샘’이 누구인가? 사람이 아니라 남성용 소변기다. “2004년 BBC 방송사의 보도에 따르면 뒤샹의 소변기 ‘샘1917’은 앙리 마티스, 파블로 피카소, 앤디 워홀의 작품을 누르고 500명의 전문가들이 뽑은 20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예술작품으로 선정되었다. 유감스럽게도 그의 가장 대표적인 이 레디메이드 원본은 한 번도 공개되지 못한 채 분실되었다.” (토마스 기르스트 저 주은정 역, <예술가들의 예술가, 뒤샹에 관한 208개의 단어 뒤샹 딕셔너리>, 디자인하우스 발행, 2016, 96쪽.)
 
이번 장례식의 안내문에 수록된 미술사가 양은희 박사의 약력 보고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들이 나온다. “1917년 4월 뉴욕 미드타운의 마르셀 뒤샹 작업실에서 출생. 올해 107세. 당시 대량 생산된 남성용 변기에 뒤샹이 ‘R. Mutt 1917’이라고 사인을 하며 탄생. 출생 즉시 뉴욕의 ‘독립미술가협회’의 창립전에 참여하며 논란을 야기. 전시 준비 중 좌대에 놓인 모습에 반한 미국 사진작가 알프레드 스티글리츠가 사진을 찍어 탄생을 축하했고 그 사진은 이후 사라진 샘의 실존을 증명하는 사진이 됨. 이후 샘은 전시되지 못하고 버려짐. 그러나 샘을 사랑한 뒤샹은 미니어처를 제작해서 그의 <여행용 가방> 시리즈에 보관하기 시작......<중략>......

뒤샹은 1968년 사망할 때까지 샘의 쌍둥이 16개를 만들었고 현재 전 세계 미술관에서 ‘20세기 아방가르드 미술’의 아이콘으로 인기리에 전시 중. 1993년 작가 켄델 기어스, 브라이언 에노, 피에르 피노첼리가 각각 전시 중인 샘에 소변을 누며 애정을 표현. 1996년 포스트모던 작가 세리 르빈이 샘을 청동으로 카피한 작업 제작. 각각 ‘마돈나’와 ‘부처’라는 부제를 달았고 ‘차용’이라는 개념을 널리 알리게 됨. 2006년 파리에서 작가 피에르 피노첼리가 망치로 전시중인 샘을 구타해 8조각이 남.

샘의 장례식에서 필자인 윤진섭이 마르셀 뒤샹의 _샘_작품 아래에 제문을 쓰고 있다. ⓒ 박동욱 사진가
▲샘의 장례식에서 필자인 윤진섭이 마르셀 뒤샹의 '샘'작품 아래에 제문을 쓰고 있다. ⓒ 박동욱 사진가

2023년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중구 윤진섭의 자택에서 사망, 이후 1년 후인 2024년 12월 11일 경기도 평촌에 있는 2기적 팩토리에서 다수의 미술관계자들이 모인 가운데 샘의 사망을 공식화하고 장례를 퍼포먼스 형식으로 치름. 작성 : 양은희 장례위원/미술사학자” 
어랏? 샘을 죽인 사람이 바로 내가 아닌가? 그렇다. 내가 죽였다. 때는 장례일로부터 근 2년 전인 2023년 3월 23일, 나의 집에서였다. 살해 동기가 있다. 그날 나는 ‘아트인컬처’ 잡지를 보던 중 한 광고에 눈길이 머물렀다. 거기, 알프레드 스티글리츠가 찍은 ‘샘’의 사진이 있고 그 위에 손으로 쓴 붉은 색의 다음과 같은 문장이 보였다. “마르셀 뒤샹의 자리를 넘보다.”

그 글을 보는 순간, 갑자기 눈앞에서 번쩍하고 섬광이 이는 것을 느꼈다. 올커니, 드디어 ‘신의 한 수’가 당도했도다! 평소 운칠기삼(運七技三)- 어느 날 고스톱의 대가인 지인이 가르쳐 준 말로 아무리 고스톱의 도사라도 운이 따르지 않으면 내기에서 이길 수 없다는 뜻-을 믿는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됐다. 이참에 샘을 장사지내는 거다. 나는 기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빨리 샘의 영정사진을 만들자. 마침 집에는 얼마 전에 길에서 주어온 흰색 타일이 있었다. 타일 중앙에는 마침 담뱃갑 두 개를 합친 것보다 조금 큰 사각의 구멍이 나 있고, 그 뒤를 망사가 덮고 있었다. 나는 샘의 사진을 잡지에서 잘라 붙였다. 검정색 테이프로 타일의 앞면을 꼼꼼히 감싼 뒤 중앙에 베이지색 테이프로 ‘ㅅ’자 모양을 냈다. 드디어 영정사진 완성! -이와 관련된 자세한 내용은 아트인컬처 2025년 1월호 ZOOM IN Event <샘, 영면에 들다> 기사를 참고할 것-

샘의 장례식을 마친 뒤 펼쳐진 장례가두 퍼포먼스1 ⓒ 박동욱 사진가
▲샘의 장례식을 마친 뒤 펼쳐진 장례가두 퍼포먼스1 ⓒ 박동욱 사진가

집에서 향을 사르고 혼자 장례를 지냈으나, 이 사건을 미술계에서 공식화하기에는 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무엇보다 계기가 있어야 했다. 운칠기삼을 믿는 나는 행운이 찾아오길 바라며 어머니의 유품인 작은 소반에 샘의 영정사진을 모시고 향을 사르며 샘의 명복을 빌었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기회가 왔다. 2기적 팩토리의 이미경 대표에게서 ‘오브제’를 주제로 한 강연 요청이 온 것이다. “있는 게 오브제 작품인데 그냥 전시하면서 강연하죠. 뭐!” 그렇게 해서 성사된 게 바로 <사물의 언어-윤진섭 초대전>(2024.11.20.-12.11)이었던 것. 전시기간 중에 열린 2회의 강연에 이어 전시 마지막 날 장례식이 열렸다.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김정현 학예실장의 사회로 열린 장례식에서 양은희(미술사가)의 샘 약력보고(김정현 대독)에 이어 김병수(한국미술평론가협회 회장)의 조사(弔詞)가 있었다. 

이날, 약 30여 명에 이르는 미술계 인사들이 장례식장을 찾아 문상을 했다. 조의금을 보태고 분향을 하는 동안, 상주(윤진섭)를 비롯한 여러 문상객들의 아이고, 아이고 하는 곡(哭) 소리가 실내에 울려 퍼졌다. 김달진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장, 박승호 박서보재단 이사장, 이경호 광주미디어아트플랫폼 센터장이 보낸 근조 화환이 샘의 영정사진을 좌우에서 호위하듯 에워싸 엄숙한 장례식장의 분위기를 연출했다. 샘의 죽음은 그렇게 해서 공식화된 것이다. 

샘의 장례식을 마친 뒤 펼쳐진 장례가두 퍼포먼스2 ⓒ 박동욱 사진가
▲샘의 장례식을 마친 뒤 펼쳐진 장례가두 퍼포먼스2 ⓒ 박동욱 사진가

이어진 장례 퍼포먼스는 영정을 앞세운 장례행렬로 이루어졌다. 즉석에서 제작한 요령을 흔들며 특유의 입담과 소리를 과시한 행위예술가 김석환의 뒤를 영정사진을 손에 든 김정현 실장과 종이박스, 베, 색색의 종이테이프 등으로 분장한 문상객들이 곡을 하며 따랐다. ‘근조 샘(Fountain)’, ‘부러진 삽이여 영원하라!’라고 쓴 펄럭이는 만장들을 앞세운 행렬이 거리를 행진하는 동안 평촌의 학원가를 지나는 행인들의 다양한 반응이 쏟아져 나왔다. 경찰에 신고가 들어갔으나 다행히 출동하지는 않았다. 사실 경찰이 출동했어야 퍼포먼스가 더욱 사건화되는 건데 아쉬운 부분이다.

각설하고, 장례식을 참관한 김병수 한국미술평론가협회 회장은 퍼블릭아트 2025년 1월호에 기고한 리뷰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장례 복장을 꾸민 윤진섭은 마치 황제 혹은 교황처럼 연기한다. 그의 꿈일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뒤샹을 죽이고 자기가 대체할 수 있기를 원하는 것은 아닐까? 일종의 살부의식 같았다.

샘의 장례식을 마친 뒤 펼쳐진 장례가두 퍼포먼스3 ⓒ 박동욱 사진가
▲샘의 장례식을 마친 뒤 펼쳐진 장례가두 퍼포먼스3 ⓒ 박동욱 사진가

그런데 서양미술(사)를 이렇게 죽일 수 있을까? 퍼포먼스에 참여한 김석환이 힌트를 줬다. ”제주(祭酒)가 막걸리가 아니고 맥주라서 다행”이라고. 글로벌하게! 윤진섭은 뒤샹을 탄핵하는 것이다. 윤진섭은 어떤 파생이나 하위 구분(예술/작품)을 규정하지 않고, 예술 작품과 인간 주체가 위치하는 관계에 대한 단순한 구별이라는 주제를 제시한다. 그리고 다시 그것들이 무차별적이라고 농담처럼 주장한다.

어쩌면 이런 미해결의 해석학적 순환을 그는 유희처럼 즐긴다.” 이 문장에 대한 나의 답변은 중국의 식당에서 가져온 커다란 소뼈에 내가 쓴 다음의 문장이 적절할 것이다. “살불살두 살두살왕(殺佛殺頭 殺頭殺王)”-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뒤샹을 만나면 뒤샹을 죽여라. 뒤샹을 만나면 뒤샹을 죽이고 왕치를 만나면 왕치-왕치(王治/Wangzie)는 2009년 이후 윤진섭이 사용한 100여 개의 예명 중 최초의 것임-를 죽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