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t Issue] 지역 예술 ‘살린다는’ 지원사업의 ‘숨 막히는’ 공모 일정
[Hot Issue] 지역 예술 ‘살린다는’ 지원사업의 ‘숨 막히는’ 공모 일정
  • 진보연 기자
  • 승인 2024.05.09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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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체부, 대대적인 지역예술 지원사업 개편…“급발진 변화” 비판 목소리
예술인 ‘촉박한 통보식 일정’ㆍ지자체 ‘계획 없던 예산 확보’ 어려움
현장 전문가 “‘소액다건 지원’의 무조건적 배제 지양해야”

[서울문화투데이 진보연 기자] 문화체육관광부가 수도권과 지역 간의 문화 불균형을 해소하고자 전국의 광역ㆍ기초지자체, 문예회관 그리고 민간 예술단체를 대상으로 다양한 지원사업을 내놓고 있다. 

유인촌 문체부 장관은 지난해 10월 취임사를 통해 과거 재임 시절 가장 아쉬움이 남는 일로 ‘지역 간 문화 불균형을 획기적으로 개선하지 못한 것’을 꼽았다. 실제로 대한민국 문화예술계는 현재 세계적인 성취를 이뤘지만, 지역의 문화예술 기반은 여전히 취약해 수도권과의 격차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10월 취임한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기자간담회에서 정책추진 방향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취임한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기자간담회에서 정책추진 방향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이에 유 장관은 지난해 12월 28일 ‘문화예술 3대 혁신전략, 10대 핵심과제’를 발표하면서 국민의 문화 향유 환경을 혁신하는 전략의 일환으로 지역 대표 예술단체를 육성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또한 지난해 12월, 문체부 문화예술정책실장 주재로 ‘지역 공연예술 진흥 현장 간담회’를 열어 문화로 지역소멸 위기를 극복하는 대응 방안을 모색했다. 당시 간담회에 참석한 16개 광역시도 문화예술 관계자들은 다채로운 예술단체가 각 지역을 연고로 견고하게 뿌리내릴 수 있도록 적절한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그리고 지난 3월 18일, 문체부는 현장 간담회 당시 지자체 문화예술 관계자들이 가장 큰 관심을 보인 신규사업인 ‘지역 대표 예술단체 육성 지원사업’의 구체적 내용과 공모 일정을 발표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예술경영지원센터와 함께 3월 18일부터 4월 24일까지 서울특별시 및 자치구를 제외한 전국의 광역·기초지자체에 기반을 둔 예술단체를 대상으로 ‘2024 지역대표 예술단체 육성지원사업’을 공모했다. 순수예술 분야 클래식 음악(오페라 포함)ㆍ전통ㆍ무용ㆍ연극 등 4개 부문에 걸쳐 10개 안팎의 예술단체를 선정, 지방비와 1대1 매칭을 통해 최대 20억 원(지방비 1:1 분담)을 지원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나홀로 준비된 문체부, 20억 원 지원금에도 예술인ㆍ지자체 ‘난색’

단체 신설, 기존 민간단체 유치, 수도권 기반 활동 단체 지역 유치, 수도권 기반 축제 지역 유치 등 운영 방식도 다양하게 열어뒀고 지원금 규모도 크지만, 정작 사업 진행은 수월하지 않은 상황이다.

가장 큰 걸림돌은 갑작스러운 공지와 매우 빠듯한 공모 기간이다. 연말 정책 발표를 통해 해당 사업을 언급하긴 했으나, 구체적인 날짜나 사업 진행 방식을 안내한 것은 3월 중순을 넘긴 시점이다. 「2024 순수예술을 통한 전국 공연장 활성화 사업」 민간예술단체 우수 공연프로그램ㆍ공공 공연장 대상 공모의 경우도 상황은 비슷하다. 공연프로그램 공모 일정은 4월 3일부터 23일까지, 공연장 공모 일정은 5월 3일부터 21일까지다. 

한 민간 예술단체를 운영하는 대표는 “한 달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예술단체들은 심사기준을 따져보고 지원 양식에 어긋나지 않는 서류를 갖춰 제출해야 한다. 큰 규모의 사업일수록 단체들은 신중하게 논의한 후 결정할 수밖에 없는데, 이렇게 쫓기듯 공모를 준비하면 제대로 지원할 수 있는 단체가 얼마나 되겠나. 더불어, 이런 지원사업의 특성상 중복 지원/선정이 불가능하니 더 세심하게 따져볼 시간이 필요하다”라고 한탄하며 “기존 단체들이 지원하는 경우도 있지만, 새롭게 단체를 꾸려 지원해야 하는 예술인들에게는 더욱 터무니없는 마감일이라고 생각한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지자체도 입장이 난감하긴 마찬가지다. 문체부는 지자체 대상 공모를 통해 선정 과정을 거쳐 보조금을 교부하며 사업을 시행한다고 밝혔다. 강원 지역의 한 시 관계자는 “예술단체가 선정되면 국비와 지방비 1대 1 분담을 통해 사업을 진행해야 하는데, 사전에 예정된 사업이 아니었기 때문에 미리 마련되어 있는 예산이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지역 예술단체의 선정 여부는 결과가 공지되기 전까지 알 수 없으니 여러 경우의 수를 생각하느라 머리가 아프다. 선정이 되면 지역 문화예술 발전에 도움이 되는 것이니 환영할 일이지만, 예측하지 못했던 상황이라 당황스럽기도 하다”라고 전했다.

이처럼, 성급한 사업 개시 및 공모 방식의 변화에 모두가 혼란한 상황이다. ‘2024 지역대표 예술단체 육성 지원사업’의 경우 보도자료는 문화체육관광부와 예술경영지원센터가 함께 진행한다고 배포되었으나, 예경 담당자는 “해당 사업은 문체부 소관이니, 관련 문의 사항은 문체부에 해달라”고 선을 그었다. 사업 계획이 담긴 공고문을 다시 살펴보니, 예경은 사업 추진 과정에서의 사업 계획의 심사 및 보완 과정에서 협조한다고 안내되어 있었다. 행정기관 별 사업 구분과 안내도 명확하게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미리 정해놓은 데드라인에 맞춰 사업을 진행하려다 보니 소통의 부재는 당연히 발생하게 된다. 이는 예경뿐만 아니라 지자체, 예술단체, 문예회관과도 마찬가지다. 3월부터 4월 사이 공모를 거쳐, 4월 중 사업제안서 사전심사를 진행한다. 이어 5월에는 발표 평가, 선정 평가, 사업 추진의 단계가 모두 이뤄져야 하는 일정이다.

▲2024 공연예술 유통사업에 선정돼 김해문화예술회관 무대에 오르는 연극 <템플> (해당 이미지는 기사 내용과 무관함)

뿌리째 뽑아 옮겨 심는 ‘문화정책’, 다져온 땅 붕괴 우려 목소리도

유인촌 장관은 지난해 10월 취임사를 통해 소액 다건의 지원사업을 개편해 단순 생계보조형 직접지원보다는 창작공간 지원, 공연장 대여 등 간접지원 방식으로 예술인들의 창작 활동을 돕겠다고 밝힌 바 있다. 

소액 다건의 사업을 통폐합하여 예술인들과 지자체, 문예회관의 편의도 높이고 사업 집중도 및 효율을 올리겠다는 취지인데 정작 날짜에 사업을 끼워 맞추는 식의 진행 방식으로 모두가 곤란한 상황에 놓였다. 변화를 맞는 첫해인 것을 감안하더라도, 그 피해는 결국 문체부가 정책의 변화로 ‘살리겠다’고 말했던 지역 예술인들이 떠안게 된다. 문체부의 자체적인 판단 후 행정기관과 문화예술인 그리고 지자체에 통보하는 정책 추진은, 문제 해결이 아닌 공치사를 위한 쇄신으로 비칠 수 있다. 

지방에서 활동하는 한 예술인은 “올 초부터 이어지고 있는 문체부의 문화정책 변화를, 사실 내 주변 예술인들은 적응하지도 크게 공감하지도 못하고 있다. 그간의 지원사업에 문제점이 보였다면 기간을 두고 순차적으로 수정ㆍ보완하며 기관과 예술인, 지자체가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왔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며 “유 장관은 6개월 동안 190여 회 현장을 다니며 목소리를 듣고 정책 변화를 이뤄왔다고 언론을 통해 자랑스레 말하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너무 힘들어하고 있다. 하루아침에 굵직한 사업들을 전부 뜯어고치려 하니 당연히 준비할 시간도, 적응할 시간도 부족하지 않겠나. 급발진 변화가 능사는 아니라는 걸 알아줬으면 한다”라고 고충을 토로했다. 

성연주 한국방송통신대 문화교양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창작지원의 근간인 문예기금이 고갈 위기인 현 상황에서 지원방식의 개선은 필요해 보인다. 그러나 사업 개편에 앞서, 지금의 ‘소액 다건’ 방식의 운영이 자리잡게 된 역사적, 정책적 이유에 대한 파악이 선행돼야 한다”라며 “소액 다건 방식 지원은 지난 20년 동안 수직에서 수평으로, 권위에서 참여로, 중앙에서 지역으로 변화해 온 예술 지원 역사의 상징과도 같다. 지원금을 대규모로 지급하게 된다면 지원기관은 지원 대상으로 예술인 개인보다 협·단체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 예술 협·단체는 대개 행정 인력을 보유하고 있고, 대규모 예산으로 연중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밝혔다.

이어 “청년예술인이나 신진예술인을 지원하는 사업이라면 처음부터 큰 금액을 지원받아 운영의 어려움을 겪기보다는 소액 지원을 통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실험하는 ‘과정’을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하며 “장르의 융합, 예술과 지역의 만남을 실험하거나 리서치에 집중하는 등 새로운 사업은 소액 다건 방식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실험적 시도였다. 소액 다건 방식의 창작지원사업의 의미가 재해석되고 평가·환류되는 계기가 먼저 만들어져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