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살아오는 근 한 세기 동안 세상은 많이도 바뀌고 있다. 산천도 바뀌고 문화도 바뀌고
사람도 바뀌니 세상이 안 바뀔 수 있겠나 말이다.
무엇보다도 인간의 수명이 길어지고 보니 삶의 대한 태도가 바뀌어가고 있다. 한편 오래 살게 되었으니 느긋해지고 행복해져야 할 텐데 오히려 그 반대가 되어가고 있다. 건강하고 싱싱한 젊음을 유지하며 오래 살며 행복한 가운데 생산적인 삶을 유지하면 더 바랄 것이 없건만 상황은 그렇지가 못하다. 나이 들어 쇠락하는 육체와 정신과의 균형을 어찌 잡아가며 길어진 생명줄 속의 생산적 싱싱함을 유지하며 사는 일이 그리 만만치가 않다.
그러한 우리 시대의 삶의 패턴을 보며 우리 선배들이 살아온 삶의 업적을 보며 그중에도 거인 같은 업적을 남긴 분들의 삶의 발자취를 보며 나는 감탄한다. 오늘은 그리하여 내가 만난 <우리 시대의 거인> 두 분을 거론하며 우리의 지금의 삶을 돌아볼까 한다.
"양혜숙 이사장님, 좀 갑자기 말씀드리게 되었는데 제가 지난번에 드린 우리 아버지 안호상 박사의 책을 돌려받을 수 있을까요?." 전화에서 나는 안박사님 아드님의 건강한 그리고 약간 흥분한듯한 목소리를 듣고 반가웠다. 그는 코로나가 한창이던 3년 전, 내게 안호상 박사님의 독일어로 된 박사논문을 비롯하여 한국 고대사를 독일어로 쓰신 귀한 책 5권을 주었다. 우리나라 초대 문교부 장관을 지내신 안호상 박사의 재조명하는데 앞장서 주기를 부탁한 참이다.
나는 극구 사양하며 안박사님과 우리 부부와의 관계를 설명하였으나 그는 막무가내로 그 귀한 자료를 내게 떠맡기듯 주고 갔다. 코로나로 온 세상이 들끓는 가운데 나는 그 책을 고이 모셔둔 채 들쳐볼 경황도 없이 내 일에 몰두하며, 책을 돌려드릴 일을 염두하며 미안한 생각을 하고 있던 터였다.
내가 한국공연예술원을 창립할 때 나는 안호상(1902~2007) 박사님과 김천흥(1909~2006) 선생님, 두 분과 많은 시간을 보내며 두 분과 많은 것을 의논드리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어 참으로 행복했다. 특히 안호상 박사님을 통해 내게 일깨워진 한국고대사의 정립은 김천흥 선생님의 전통의 ‘우리 몸짓’ 세우기와 쌍벽을 이루며 한국 공연예술의 정신적, 역사적 담론의 근저를 만들어주는데 큰 단초가 됐다.
독일 Jena 대학 철학박사인 안호상 박사님은 역시 독일 München 대학 공학박사 출신인 내 남편 김재관과 Tübingen 대학 출신인 나를 너무도 가깝게 대해 주셨다. 특히 한독협회 회장과 사무총장 관계로 의논할 일도 많았다. 안 박사님의 뒤를 이어 조선일보 방우영 회장님이 한독협회 회장을 맡은 후에도 우리는 안 박사님을 독일대사관저에서 열리는 파티에도 함께 모시고 갔다. 명륜동에 사시는 안박사님을 청운동에 사는 우리가 픽업해서 성북동으로 모시고 간 것이다.
박사님은 자가용이 없어 택시나 버스로 다니며 대학 강의로 생활을 하시는 가운데 모윤숙 여사와 헤어진 후 세 번째 부인은 보험영업을 하시며 생활을 이어가신 것으로 안다. 그러는 가운데도 독일서 온 귀한 손님은 명륜동 자택에서 맞이하시며 우리 부부를 가족 같은 느낌으로 늘 초대해 함께 손님맞이를 했다. 그 덕분에 나는 안박사님의 인품을 가까이서 뵐 수 있는 영광을 누릴 수 있었다.
안박사님은 오늘날 세계 굴지의 기업을 이룬 삼성과 LG의 근원을 두고 있는 의령시의 한 명문가 출신으로 거의 최초의 독일 철학박사가 된 명문가 출신이다. 그의 생각의 테두리는 한문과 독일어 일어와 영어를 넘나들고 있었다. 반면 서울 남산의 가까운 마을에서 한 목수의 아드님으로 태어난 김천흥 선생님은 형님과 함께 궁중연희를 익힘으로 해서 생계를 해결할 수 있었던 대조적인 두 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한국공연예술원을 창립할 때 내 의지와 목적을 갈파하신 두 분은 너무도 적극적으로 응원해 주시며 그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내게 힘을 실어주셨다. 1996년 전후 그 두 분들의 나이는 8순을 넘으셨건만, 나의 모임과 행사에 참석하셔서 응원으로 버팀목이 되어 주셨다. 두 분은 거의 100수를 바라보며 돌아가실 때에도 병상에서 조차 <한극> 정립에 대한 관심을 이어가셨다.
이 두 분의 거인같은 생애를 돌아보며 나 또한 후배들에게 거인같은 후원자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