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진섭의 비평프리즘] 김석환, 새로운 퍼포먼스의 지평을 열어가는 행위예술의 사제(司祭) II
[윤진섭의 비평프리즘] 김석환, 새로운 퍼포먼스의 지평을 열어가는 행위예술의 사제(司祭) II
  • 윤진섭 미술평론가
  • 승인 2024.12.26 14: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윤진섭 미술평론가
▲윤진섭 미술평론가

<지난 호에 이어>

Ⅴ.    

 김석환은 다재다능한 작가이다. 회화를 전공하여 즉석에서 그림을 그리는가 하면 애드리브가 강해 몇 명만 모이면 금세 흥겨운 잔치마당이 이루어진다. 가수 뺨치게 노래를 잘해 기타 하나면 흥이 철철 넘친다. 예술과 일상이 하나가 된 축제지향적 인간, 그러면서도 자연과 인간친화적인 인물이 바로 김석환이다. 얼마 전에 쓴 칼럼을 통해 나는 그를 다음과 같이 묘사한 바 있다.    

 “김석환은 예술에서의 금기와 기존의 관행에 도전하는 것을 인생 최대의 목적으로 삼고 있는 전위예술가이다. 골수 행위예술가이기도 한 그는 얼마 전 아마존의 밀림지대를 찾아가 벌거벗은 원주민들과 예술적 교감을 나눈 바 있다. 원주민들보다도 더 원주민답게 생태계의 오염으로 얼룩진 지구의 회복을 위해 토해낸 김석환의 절실한 몸짓들이 이제 그 해석을 기다리고 있다. 온몸이 기(氣) 덩어리인 이 사나이를 어쩔 것인가? 예술에 영혼을 바쳐 그 제단에 몸을 사르는 사제 김석환. 일찍이 내가 ‘진귀한 버섯들의 군락지’하고 부른 양산박 두령 가운데 빛나는 1인이다.” (서울아트가이드, 2024년 7월호)

Ⅵ.

 김석환은 부산에 있는 복합문화예술공간 머지(Merge?)의 초대전 [김석환의 잡화엄식(雜華嚴飾)]전(2024.6.1.-6.10) 개막행사에서 퍼포먼스를 발표했다. 그는 자신이 직접 제작한 모형 M16 소총이 장착된 첼로를 연주했다. 흰옷을 입은 여성 춤명상가 고영한이 첼로를 연주하는 김석환의 주변을 돌며 춤을 추는 가운데 퍼포먼스가 진행되었다. 이때 첼로를 연주하는 김석환은 물이 담긴 투명 아크릴 상자 속에 발을 담갔다. 그때 이변이 일어났다. 상자 속에 든 물이 서서히 붉은색으로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피를 연상시켰다. 다시 칼럼에서 몇 줄을 인용한다. 

 “물론 실제로는 물감이지만 붉은색이 주는 느낌은 제의적인 분위기로 인해 생생한 원초적 느낌으로 다가왔다. 이 작업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90년대 중반 생고기를 먹고 얼굴을 노끈으로 칭칭 감은 그로테스크한 모습의 퍼포먼스와 만난다. 그 후 김석환은 전시기획자로서 평택호 프로젝트 ‘해(日), 비(雨), 뫼(山), 달(月)’을 기획하는가 하면, 작가로서 맹렬히 활동해 왔다.”

 1992년에 쓴 서문 <자연을 향해 던지는 끝없는 몸짓>에서 나는 당시 김석환의 작업에 대해 “생태계를 둘러싼 환경의 문제, 탄생과 죽음 등 인간의 삶을 통해 드러나는 순환(circulation)에 관한 것으로 집약된다.”고 평한 바 있다. 이러한 입장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다만 변화가 있다면, 시간이 지나면서 스케일이 더욱 커져 지구촌 전체를 상대할 만큼 보폭이 넓어진 것이다. 대표적인 것을 들면 다음과 같다. [평화통일 대한민국 철의 실크로드](블라디보스톡에서 리스본까지 13개국 순회 퍼포먼스/2015), [사라예보 겨울 예술축제 초대](보스니아/2017), [상파울로 비엔날레 특별전](브라질, 상파울로 Casa/2018), [삼일절 100주년 프로젝트 ‘하늘에 고하고’](히말라야 칼라파트라/2019) 등등이다. 이 일련의 행위를 통해 김석환은 자유에의 희구와 피폐해진 영혼의 치유를 위해 온몸을 불살랐다. 아마도 김석환의 퍼포먼스를 직접 접해본 사람들은 예술에 대한 그의 남다른 열정을 느꼈을 것이다.  

Ⅶ.

 예술적 ‘끼’를 온몸에서 발산하는 김석환은 영락없는 샤먼이다. 1996년에 경기도 안성의 무봉산 자락에 작업실을 마련하고 창작을 하던 그는 외출한 틈을 타 덮친 대홍수로 인한 산사태로 작업실이 크게 파손되는 사고를 당했다. 4년간에 걸친 무봉산 시대를 마감하고 2000년에 이사한 곳이 현재의 마안산 여선재 터인데, 이곳은 원래 무당이 살던 집이었다. 손재주가 좋은 김석환은 직접 카페 겸 작업실을 짓느라 무리를 한 탓에 천식에 급성폐렴이 걸려 사경을 헤매다 극적으로 살아났다. 노자의 도덕경 33장에 나오는 “비록 몸이 죽어도 그 정신은 죽지 않는 사람이 진정으로 장수하는 사람이다(不失其所者久 死而不亡者壽)” 중에서 ‘죽어도 죽지않는다’는 의미의 ‘사이불망(死而不亡)’을 삶의 신조로 삼은 배경이다.   

 김석환은 스케일이 큰 퍼포먼스 작가다. 수원 장안공원에서 열린 컴아트쇼(Com-Art Show)에서 발표한 퍼포먼스들은 축구장만한 크기의 바닥에 물로 대형 나무를 그리고 수백 개의 과일을 뿌려 대중에게 나누었던 <땅위에 기쁨 1990>, 대형 중장비에 매달려 30m 천에 그네를 타고한 드로잉 퍼포먼스 <색즉시공1991>, 그리고 드럼통 수십 개를 피라미드 형태로 높게 쌓아놓은 상태에서 흰 천을 길게 늘어트리고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올라 붉은색 연막탄을 피어 올리는 작품 <문명의 탑 1993>이 그러하다. 또한 한국동란을 비롯하여 보스니아, 발칸반도, 캄보디아의 킬링필드, 소련내전 등로 인해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영령들을 위로하는 퍼포먼스 위령제를 지내기도 했다. 이 일련의 퍼포먼스는 인류애가 발현된 영적 스케일이 큰 퍼포먼스였다. 

Ⅷ.

 불교의 화엄경에 나오는 문구로 “불법이 광대무변하여 모든 중생과 사물을 아우르고 있어서 마치 온갖 꽃으로 장엄하게 장식한 것과 같다”는 뜻이다. 1957년 생인 그는 연륜이 깊어지면서 세상을 관조하며 포용하는 쪽으로 기울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폭넓은 의식의 지평을 보이는 김석환은 오랫동안 자연 속에 파묻혀 살면서 자연을 통해 우주만물의 이법(理法)을 터득해 간 것으로 짐작된다. 그는 작가노트 형식을 빌어 다음과 같이 소회를 밝히고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수만 가지 꽃으로 꾸며져 있는 아름다운 꽃밭과 같다. 지난해 꽃 진 자리에서 다시 꽃이 피어나니 윤회의 길이요, 그것이 바로 생성과 소멸로 이어지는 우리의 인간사다. 어쩌면 우리는 이생의 하루하루를 꽃잎으로 만들고 있는지고 모른다. 이지러진 꽃잎, 생채기가 난 꽃잎도 있지만, 언젠가는 멀쩡한 꽃잎을 피워 아름답게 장식하기 위해 노력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그러한 삶을 살다 보면 우리는 후회 없는 삶에 이르게 될지도 모른다. 그 끝자락은 과연 어디인가. 글을 끝내려는데 김석환의 퍼포먼스 한 장면이 떠오른다. 알루미늄 호일로 자신의 몸을 떠서 허공에 분신을 만든 뒤, 그 분신과 한 몸이 돼 즐겁게 놀던 김석환의 밝은 모습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