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문화투데이 김연신 기자] 목판화 거장 김준권 판화가의 작품이 전주를 찾았다. 한국소리문화의전당(대표 서현석)은 오는 3월 30일까지 신년 첫 기획전시 《김준권의 국토-판각장정》를 개최한다.

돌이켜보면, 나의 창작 여정은 70년대 말 비판적 현실주의 형상유화와 민중목판화로 시작되었다. "우리 땅-우리의 진경"이라는 아주 고전적인 명제에 충실하며 목판화 기법을 깊이 연구했다. 해인사 팔만대장경, 용주사 부모은중경, 古목판화들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고, 특히 고 이중호 선생의 인체 제작법과 먹판인출법을 전수받던 일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 목판화는 죽은 나무를 살리는 작업이지만, 나는 진정 무엇을 살려냈는지 되돌아보며 나의 길을 계속 걷고 있다.
- 김준권,『김준권 판각장정』, '작가의 말' 中 -
김준권 작가는 1980년대부터 40여 년간 목판화를 중심으로 작업을 해왔다. 1980년대 한국 현실에 사회적으로 기능하는 민중미술을 시작으로, 90년대에는 국토와 사람들의 삶을 담은 리얼리즘적 풍경을 작품에 담아냈다. 이후, 한국과 일본, 중국의 전통적인 목판화를 연구하며 본인만의 방식을 종합한 수묵ㆍ채묵 목판화를 창안해내기도 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김준권 판화가가 1985년부터 지난해까지 제작한 목판화 250여 점을 만나볼 수 있다. 1985~1991년까지 제작한 흑백목판화 25점, 1992~2024년까지 제작한 유성목판화 약 125점, 1995~2024년까지 제작한 수묵ㆍ채묵목판화 약 100점이 출품된다.

나에게 있어 사생을 한다는 것은 잠녀가 물질을 하다 수면으로 올라와 큰 숨을 쉬는 것과 같다. (...) 색이 적당히 감춰진 새벽이나 아침 사생을 좋아한다. 이때가 수묵 목판기법으로 표현하기에 적합하기도 하거니와 자연이 그에 적절한 시선을 만들어 주기 때문이기도 하다. (...) 내 작품은 그 여정에서 만난 사생과 사색의 기록들이고, 그 현장을 가슴에 담아 작업실에 앉아 되새김하여 그려낸 “있는 풍경”, “있을 법한 풍경”, “있어야만 하는 풍경”이 내가 그린 판화세상이고, 내가 그린 꿈인 것이다.
- 김준권,『김준권 판각장정』, '작가의 말' 中 -
출품작은 지난 40여 년간 우리 국토의 아름다움과 이웃들이 살고 있는 공간을 김준권 작가의 시선으로 바라본 당대의 일반적인 특징들을 담아 채묵ㆍ수묵ㆍ유성 목판화로 구성됐다.
색채가 있는 채묵(동양화 안료)과 무채색의 수묵(먹)을 따로, 때로는 함께 구사하면서 이뤄낸 ‘스밈의 미감’은 조선시대 그림 같으면서도 현대적인 느낌을 준다. 프린팅을 통해 한지에 스며든 수성은 잘 건조돼 가슬가슬한 질감의 매력을 뽐낸다. 붓질이 아닌 프린팅 압력에 의한 동양화 안료물성의 자연스러움을 통해 문인화같은 분위기도 나타낼 수 있다.
유성목판화는 재료와 기법 특성상 색채가 강렬하게 나타난다. 전통적 원근과 명암법 사생에 의한 풍경의 사실성과 함께, 원색분해기법의 분판에 의한 정교한 실험 사진에 비견되는 이미지는 목판화의 표현적 평면성을 원천적으로 배제한 느낌을 준다.

작가의 작품에는 작가의 시선으로 관찰하고 분석한 국토에서 이웃들의 삶의 모습이 나타나 있다. 대한민국 남단에 위치한 가파도부터 휴전선을 아우르다가 북한 땅을 건너뛰어 요동에서 본 북녘 풍경까지 사실적으로 재현했다. 작가가 의도적으로 강조한 안료의 집적이 발색하는 시각적 힘이 더해져 풍경은 더욱 생생해진다.
전시 기간 중에는 ‘작가와의 대화’, ‘판화 찍기 체험’ 등의 연계 프로그램도 함께 운영될 예정이다. 이번 전시와 함께 화집 『김준권 판각장정』도 발간됐다.
전시는 무료로 진행되며,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관람 가능하다. 휴관일은 매주 월요일과 설날 연휴이다. 문의 063-270-8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