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지난호에 이어서
주지하듯, 2025 문예진흥기금 정시공모를 앞두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문예위) 비상임위원의 전담심의제 심의 참여 문제는 논쟁적이었다.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에서 엿보듯 어떤 논쟁에서 경험 만큼 중요한 논거는 드물다. 경험은 그 무엇과도 비견될 수 없는 유의미한 자산이며, 그만큼 당찬 호소력을 지닌다. 경험하지 않고 던지는 주장은 그져 공허한 메아리로 머물기 십상이다. 심의에 참여한 경험은 예술지원정책의 장에서 유의미한 자산이 된다. 이를 전제로 2025 문예진흥기금 정시공모에서 실시된 전담심의제 관련 논의를 이어가고자 한다.
전담심의제 적용사업 압도하는 비적용사업
알려진 것과 달리 2025 문예진흥기금 지원사업에서 실제 전담심의제 적용사업은 그리 많지 않다. 2025년 문예진흥기금 지원심의는 전담심의제 적용사업과 미적용사업으로 구분되어 심의가 진행되었다. 즉 전담심의제는 심의의 전문성 및 심의기준의 일관성 확보를 위해 일부 사업에만 적용되었다는 얘기다. 예술지원체계 개편에 따른 다년지원 확대 및 단계별 지원구조를 고려한 지원단체 및 프로젝트에 대한 연중 지속관리의 필요성이 감안된 결과라 하겠다.
전담심의제 적용사업은 사업의 성격과 특성에 따라 두 개의 그룹으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그중 [1그룹]으로는 ▲창작주체 ▲대한민국공연예술제 ▲청년예술가도약지원, [2그룹]으로는 ▲공연예술창작산실(올해의 신작, 2차 제작) 등이 해당된다. 2025년 문예진흥기금 지원심의는 모두 5개 사업이 전담심의제 적용사업으로 심의가 이루어졌다.
반면, 전담심의제 미적용사업도 상당수에 이른다. 예컨대 국제교류, 예비예술인, 현장예술인력지원 등은 기존과 같이 일반심의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예술지원 ▲해외레지던시참가지원 ▲국제협업지원 ▲ARKO사업 연계 해외진출지원 ▲문화예술 연수단원지원 ▲무대기술인턴지원 ▲예술대학의 예비예술인 현장연계지원 ▲예술단체 예비예술인 최초발표지원 ▲아르코예술극장-대학로예술극장 대관심의 ▲공연장 대관료지원 ▲지역예술도약지원 등 총 11개 사업에 달한다. 비율적으로 적지 않은 사업이 전담심의제 미적용사업으로 분류되어 심의가 진행된 것이다.

전담심의제 적용사업은 어떤 것이 있는가
우선, 전담심의제 적용, 미적용사업에 대한 구분은 문예위 사무처의 설계안을 토대로 제384차 문예위 전체회의(2024.11.29) 의결로 결정되었다. 2025년 문예진흥기금 정시공모사업 모두 전담심의제 적용사업으로 심의가 진행된 것이 아님을 강조하고자 한다. 전담심의제 적용사업에 대한 심의여부는 비상임위원 각자의 자율적 선택에 맡겨졌다. 필자의 경우, 전담심의제 적용사업 중 무용분야의 공연예술창작주체, 대한민국공연예술제, 청년예술가도약지원, 공연예술창작산실(올해의 신작, 2차 제작지원) 지원사업 심의에 참여했다.
[1그룹]으로 진행된 공연예술창작주체는, 공연예술 분야의 중추적인 역할과 활동을 수행하는 ‘핵심 플레이어’의 중장기적 활동여건을 보장하여 공연예술 생태계의 지속가능성 및 활력 제고에 방점이 있다. 세부적인 사업 유형은 세 가지로 공연제작, 창작공간, 공연비평 등으로 구분되어 심사가 진행되었다. 세부 사업별로 촘촘하고 정교하게 설계된 지원심의 방식은 국내 최고 예술지원기관으로서 문예위의 위상에 걸맞는 업무 전문성으로 손색이 없어 보였다.
한편, 대한민국공연예술제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기초 공연예술 행사의 지원을 통해 우수한 공연예술 발표 기회 제공, 공연예술 기반 구축 및 국민 향유기회 확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고유성과 독립성을 존중하는 기존 지원방식을 유지하는 한편, 7~8월 개최 가능한 행사는 ‘대한민국공연예술축제’라는 주제로 공모가 이뤄졌다. 전자는 개별지원 유형, 후자는 통합지원 유형으로 구분되었다. 특정 시기에 집중적으로 개최하여 통합 브랜딩과 홍보 기능을 강화함으로써 이른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공연예술제로 키운다는 야심찬 포부에도 불구하고 기계적 또는 인위적 묶음이라는 한계도 노정된다.
청년예술가도약지원은, 청년세대를 위한 지원정책에 방점이 있다. 청년예술가의 기획·창작·발표 지원 및 예술인 간 협업 활동을 촉진하고 창작과 발표과정을 병행하여 역량 증진 및 교류 활동 지원에 역점을 둔 지원사업이라 할 수 있다. 여타의 지원사업과 달리 청년예술가도약지원사업 심의는 2025년 1~2월경에 실시되었고, 최종 심의결과는 2월 말경에 발표되었다.
[2그룹]의 지원심의는 공연예술창작산실 지원사업이 핵심이다. 2008년부터 시행된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 신작 지원사업은 2025년부터 예술단체-예술극장 공동기획으로 설계됐다.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에서 올해의 신작 시즌제로 진행되는 사업으로 ‘보조금지원+공연장대관+통합홍보’ 등 3단계로 탄탄한 지원구조를 지니고 있음이 특장점으로 꼽힌다.
한편, 공연예술창작산실 2차 제작지원은,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 신작에서 호평받은 작품이 초연 이후 지속가능한 발전을 도모할 수 있도록 2차 제작 지원을 시행하는 사업이다. 2024년 시범 운영되었고, 2025년 본격 도입되어 예술단체-예술극장 공동기획 방식으로 진행된다. 초연에서 호평받은 작품이 사장되지 않고 보다 안정적인 창작환경에서 공연예술계를 대표하는 우수 레퍼토리로 안착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로 실효성이 높다.
전담심의제 심의 참여, ‘긍정과 부정’
2025년 문예진흥기금 심의에 도입된 전담심의제는 한마디로 획기적이라는 것이 세간의 평이다. 특히 비상임위원의 전담심의 참여는 주목도가 높았다. 비상임위원이 과연 몇 개의 사업을 심의하는가 여부도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심의 숫자를 최소화하여 위원의 권한을 분산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위원의 심의 참여 횟수가 많으면 불공정한 것이고, 적으면 공정하다는 얘기인데, 그다지 근거 있는 주장으로 보이진 않는다.
사무처의 설계안을 토대로 문예위 전체회의에서 의결한 전담심의제 대상사업은 총 5개의 사업으로 모아진다. 심의 참여여부는 위원들의 자율 의사에 따라 결정되었다. 따라서 비상임위원의 전담심의제 심의 참여는 선택적으로 그리고 제한적으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알다시피, 문예위 비상임위원의 전담심의제 참여에 대한 여론은 긍정과 부정이 공존한다. 우선 부정적 시선은 절차적 정당성이 의문시된다거나 전담심의 참여 위원에게 권력이 집중되어 공정성을 저해하고 결과적으로 블랙리스트 작동이 의심된다는 지적이다. 정작 심의가 시작되기도 전부터 불공정 내지 블랙리스트 작동 우려가 제기되면서 일방적 공격이 쏟아졌다. 전전담심의제 심의 참여 위원은 적법한 절차를 거쳐 심의에 참여하였음에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감내해야 하는 등 수모를 겪어야 했다.
강조하건대, 문예위 전담심의제 시행은 적법한 절차로 추진되었다. 이에 따라 비상임위원의 전담심의제 심의 참여 역시 절차적 정당성 확보를 바탕으로 자율적 결정에 따른 것이다. 이는 앞서 두 차례의 연재 글을 통해 여실히 확인되는 바이다. 【「공정과 불공정의 경계에서」(서울문화투데이 2025.2.11), 「전담심의제 제도의 실체적 진실」(서울문화투데이 2025.2.19) 참조】.
전담심의제 심의 참여의 특장점
경험자로서 말하자면, 전담심의제 제도에서 비상임위원의 심의 참여는 여러 층위에서 긍정적이라고 단언한다. 첫째, 전담심의제 심의 참여는 단지 문예진흥기금 심의 차원을 넘어 법령에 따른 문화예술위원회 위원으로서의 의무와 역할, 권한과 책임을 다하기 위한 필요충분조건(문화예술진흥법 제30조,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정관 제4조·제8조)으로 유의미한 경험이었다. 경험하지 않고는 알 수 없는 가치 재발견의 기회였다는 점에서 전담심의제 심의 참여에 따른 긍정의 요인은 한층 배가된다. 심의과정에서 체득된 다양한 경험은 향후 문예위 비상임위원로서 보다 충실한 직무활동에 보탬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둘째, 무용계 현장에서 펼쳐지는 창작-안무에 대한 예술미학적 경향성을 살피는 절호의 기회였다. 특히 장르, 세대, 지역 간 무용인의 활동 양상을 통해 창작활동의 흐름과 더불어 무용계 예술생태계의 양극화 문제도 보다 명료하게 포착할 수 있었다. 또 우리시대 무용가들의 안무철학과 창작정신, 작품 트랜드 파악을 통한 올바른 미학적 가치판단을 할 수 있는 유의미한 장이었다. 나아가 창·제작에 소요되는 예산편성의 합리성과 적합성 등도 폭넓게 통찰할 수 있었음도 특장점 중 하나로 부언된다.
셋째, 다단계 심의과정을 통해 지원사업의 의도와 취지, 사업내용의 우수성, 수행역량, 기대효과 등 사업수행적 관점을 비롯 지원목적의 타당성과 적절성, 파급효과, 지속발전 가능성 등 종합적 판단을 하게 된다는 점이다. 전담심의 참여는 향후 모니터링 및 환류 평가 등 후속이행에 있어서도 긴요한 경험으로 작동될 것이다. 전담심의위원에겐 단지 일회성 심의가 아닌, 작품 창·제작 과정과 이후의 자문 및 방향성 제시에 이르기까지 책임의 연속성 차원에서 참여하고 개입하는 책무가 주어진다. 이른바 연속적으로 ‘책임을 진다’는 점에서 전담심의제 본연의 취지를 제대로 살릴 수 있는 이상적인 심의제도라고 여겨진다.
넷째, 무엇보다 전담심의제가 적용된 무용분야 각 사업별 지원에 대한 입체적 통찰이 가능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보다 정교한 시선으로 중복지원 내지 다중지원에 대한 공평·공정의 효능감을 높이고 사각지대 최소화 등 무용분야의 창작환경에 걸맟는 이른바 ‘맞춤형’ 지원정책을 설계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다만 2025년 문예진흥기금 정시공모 심의에서는 무용만의 특화된 심의방식이 제한적으로 적용될 수 밖에 없는 한계가 노정되어 아쉬움이 남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용분야 전담심의제 적용 사업에 대한 완전체 심의참여는 중복지원·다중지원 또는 예산의 과다편성 등에 대하여, 비교적 관점에서 객관적으로 간파하는 등 심의의 공정성 구현에는 나름 기여했다고 판단된다.
전문성과 암묵지 토대한 심의, ‘공정의 가치’ 구현
예술지원 심의에 있어 공정의 가치 실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전담심의제를 도입하면서 문예위는 각 사업별 심의방식을 비롯 세부 지침을 마련하여 적용하고 있다. 전담심의제 도입에 앞서 적용사업과 미적용사업으로 구분한 것도 그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이해된다. 특히, 다단계 심의방식에서 고심한 흔적을 엿볼 수 있다. 1차 심의는 앤커스시스템 도입을 통한 온라인심의, 2차 심의는 심의위원 현장 대면 서류심의, 3차 심의는 예술가 현장 대면 인터뷰 심의로 이뤄졌다. 견고하게 설계된 3개의 허들을 넘어야 최종 지원이 결정되는, 소위 다단계 심의방식으로 고도화를 꾀했다.
2025 문예진흥기금 전담심의제 적용사업에 대한 심의는 문예위 사무처의 여러 부서에서 진행했다. 예컨대 [1그룹] 지원사업 중 공연예술창작주체, 대한민국공연예술제의 심의 진행은 예술지원본부 공연예술팀에서 담당했다. 청년예술가도약지원은 문화기반본부 예술인재양성팀이 맡았다. [2그룹]에 해당하는 공연예술창작산실(올해의 신작, 2차 제작지원)은 아르코예술극장 극장운영팀의 몫이었다. 문예위 사무처 3개의 부서가 동원된 셈이다.
[1그룹], [2그룹]으로 분류된 전담심의제 적용사업에 대한 심의를 모두 참여한 결과, 심의를 진행한 각 부서의 업무역량과 전문성, 직무에 대한 이해도는 부서별로 편차가 있음이 간파되었다. 1차 온라인 서류심의의 경우, 앤커스시스템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다. 심의를 통해 터득한 나름의 부서별 등급화한 기준이 앤커스시스템 작동에서도 여실히 투사되고 있음이 실로 흥미로웠다.
문예진흥기금 지원심의에 있어 앤커스시스템 도입을 통한 온라인 채점방식은 편리성, 신속성, 정확성 등에서 우위를 점유하고 있다. 그러나 맹신은 금물이고 향후 수정, 보완되어야 할 사항들도 적지 않다고 여겨진다. 미루어 짐작컨대, 이는 심의에 직접 참여한 경험자만이 포착할 수 있는 사안일 것이다.
결론적으로, 무용분야 전담심의제 적용사업 전체를 관통한 심의 경험이 가져다 준 효용적 가치는 차고 넘친다 하겠다. 전문성과 암묵지(경험과 학습에 의해 몸에 쌓인 지식)에 토대한 전담심의제 적용 사업에 대한 지원심의는 공정성 담보로 이어진다. 단지 일회성 심의에 끝나지 않고 모니터링과 평가 및 환류에 이르기까지 연속 책임성으로 순수예술 창작활성화에 기여한다는 점에서 전담심의제 도입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무용분야의 경우, 비상임위원의 전담심의 참여가 낳은 ‘공정의 가치’ 실현에 대한 평가는, 2024년과 2025년 문예진흥기금 정시공모 심사 결과치가 웅변한다. 공정의 영역에서 2024년과 2025년의 심의 결과를 비교할 때 2025년이 한층 우위에 있다고 단언한다. 적어도 편파지원으로 인한 양극화 문제 해소에는 나름 기여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문예진흥기금이 국민의 혈세로 충당된다는 점에서, 비록 ‘가는 길이 험하고 멀지라도’ 공(公)의 입장에서 ‘공정의 가치’ 실현을 위해 묵묵히 가야한다고 여긴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