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 장욱진, 박수근 등 34인의 작가, 100여 작품
[서울문화투데이 김연신 기자]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중 수채화만 모아 단독 장르로 구성한 전시가 열린다. 국립현대미술관(관장 김성희)은 청주관 소장품 기획전 《수채: 물을 그리다》를 오는 21일부터 9월 7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청주에서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대중에게 친숙한 장르인 수채화가 여전히 습작 또는 드로잉과 같이 유화 작품을 위한 전 단계이거나 아직 숙련되지 않은 시기의 창작물로 여겨져 왔음에 주목하고, 수채화만이 지닌 특성을 조망하여 독립적이고 완전성 있는 장르로서 정립하고자 기획됐다. 다양한 수채의 용법적 설명보다는 수채화의 가장 특징적인 속성인 물의 특징에 근거한 스며들기, 번지기, 투명성 같은 수채화의 특수성을 드러내는 데 목적을 둔다.
전시에서는 이중섭, 장욱진, 박수근 등 잘 알려진 우리나라 대표 미술가의 수채 작품뿐만 아니라 수채화 장르에서 뛰어난 작품 세계를 보여준 이인성, 서동진, 서진달, 배동신의 작품도 만나볼 수 있다. 아울러 수채화를 방법적으로 활용해 자신의 주력 매체적 특성을 그대로 발현하고 있는 류인, 문신 등 우리나라 미술가 34인의 작품이 소개된다.
전시장 도입부에는 전체 공간을 아우르는 윤종숙 작가의 현장 제작 벽화가 설치된다. 이것은 시급히 해결해야 하는 현안이기도 한 환경과 재생에 관한 미술관의 역할을 다시 되새기는 것으로, 기존의 전시장 구조물을 그대로 사용하면서도 전시를 새롭게 보여주고자 하는 방법으로 기획됐다. 밑그림 없이 순간의 생각을 필선으로 그려내는 작가의 내면 풍경은 전시장 전반에서 압도적인 풍경을 이룬다.

서양화 도입 초기…사생 중심 수채
전시는 1부 '색의 발현', 2부 '환상적 서사', 3부 '실험적 추상' 등 총 세 가지 섹션으로 구성된다. 첫 번째 섹션 '색의 발현'에는 수채화의 1세대로 일컬어지는 대표 작가들과 그 전통을 통해 이어 온 근대기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된다. 구본웅, 김수명, 박명조, 박수근, 서동진, 서진달, 손일봉, 이경희, 이인성, 이중섭, 장욱진, 전선택 등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서양화 도입 초기 수채의 등장은 외부에 나가서 직접 보고 그릴 수 있는 사생이 중심이었다. 최초 수채화 전시회를 열었던 서동진은 발달된 대구의 시가지를 그렸고,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수채화로 입선한 손일봉은 풍경과 정물을 소재로 한 서양화를 선보였다. 불투명 수채화 기법뿐 아니라 수채화 내에서 후기 인상주의적 표현을 모두 지닌 이인성은 우리나라 화단 내에서 다양한 표현 방식을 지속적으로 실험한 만능인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상징주의적 상상력으로 가족을 향한 그리움을 담아냈던 이중섭은 동양화의 몰골법을 수채 물감의 농담에 적용하여 간결하면서 힘 있는 필치로 대상을 표현했다.

내면으로 파고들다
두 번째 섹션 '환상적 서사'에서는 사생을 중점에 둔 자연환경의 묘사뿐만 아니라 내적 성찰과 정신적 상태를 표현하는 다양한 방식을 살펴볼 수 있다. 표현주의, 상징주의, 초현실주의 같은 미술사적 형태와 형상적으로 유사한 특징을 보이면서도 수채의 투명하고 번지는 형질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국내 미술세계가 점차 유화 중심으로 새로운 매체의 바람과 함께 이동함에 따라 전통적 양식의 수채화는 수채화의 양식적 기법 훈련과 일률적 교육에 묻혀 독창성을 잃어버리고 고답화되거나 기교화되었다는 선입견에서 벗어나 다양한 이론과 함께 발현되었던 작품을 선보인다. 강요배, 강연균, 강환섭, 김명숙, 김종하, 류인, 문신, 배동신, 유강열, 이두식, 전상수, 전현선, 정기호, 정상복 등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전상수는 대상을 사생하면서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생략과 과장을 조율하며 실제 풍경을 추상화했고, 류인이 지닌 존재와 시대의 불안은 야수파 같은 강렬한 색채에 반영되었다. 김명숙의 고통과 현실은 붓질의 날선 형태를 통해 표현주의적 전통 안에서 시각화되었으며 김종하의 과감하고 리듬감 있는 색의 음률은 초현실주의적 느낌을 준다. 이들은 강연균의 극사실주의적이고 정교한 묘사와 함께 다양하게 관찰된다.

수채화에 묻어난 단색화 경향
마지막 섹션 '실험적 추상'은 한국 동시대 미술에서 가장 일찍 지정학적 위치를 부여받은 단색화 경향의 작품을 선보인다. 1970년대 중반 등장해 우리 화단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쳤던 단색화 경향의 작품군은 수채화의 영역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미국 추상주의와 유럽 대륙에서 활발하게 이행됐던 앵포르멜 경향의 작품, 그리고 물성을 강조하는 모노하 형식의 작품은 단색의 화면을 구성하면서 명상적이고 수행적인 태도를 선보인다.
전체 화면을 색으로 덮는 올 오버 구도의 장발 작품, 물감이 번지고 흘리는 방법을 통해 화면 전체를 색의 감각으로 채운 김정자의 색면회화, 수채와 한지의 투명하고 비치는 성질을 사용하여 겹친 꽃잎을 표현한 곽인식과 긁고 미는 방식으로 물성을 극대화한 박서보의 검은 화면은 물질과 물질의 만남을 표면에 드러냄으로써 사물의 존재성을 나타낸다. 곽인식, 김기린, 김정자, 박서보, 양수아, 윤종숙, 장발, 정영렬 등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한편, 2층 보이는 수장고에서는 수채를 사용하여 작업하는 대표 현대 미술가 전현선의 작품 <나란히 걷는 낮과 밤>이 전시된다. 총 15폭으로 구성된 이 대형 회화는 관람자에 따라 조합을 바꾸어 가며 자유롭게 감상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이번 전시는 우리 미술관이 최초로 수채화 장르만으로 단독 구성한 전시”라며 “근대기에 도입된 수채화의 특징은 과거로부터 이어 내려온 과거와 단절되지 않는 영속된 지점에 있었고, 오늘까지도 그 맑음의 정신은 이어오고 있다. 수채화가 지닌 포용과 어울림의 특성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적용되길 희망한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