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중강의 현장과 현상 사이] 문일지 안무 ‘멀리있는 무덤’ 그리고 문일지류 살풀이춤
[윤중강의 현장과 현상 사이] 문일지 안무 ‘멀리있는 무덤’ 그리고 문일지류 살풀이춤
  • 윤중강 평론가/연출가
  • 승인 2024.04.17 10: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윤중강 평론가/연출가
▲윤중강 평론가/연출가

‘법고창신 - 근현대춤 백년의 여정’이란 이름으로 ‘2024 세실풍류’가 펼쳐지고 있다. 한국의 창작춤 100년의 역사가 8회로 정리된다. 배구자, 최승희, 조택원으로 대표되는 1930년대 신무용을 시작으로(4. 4), 김백봉, 송범, 김진걸, 황무봉, 최현 최희선 등 1950년대를 거쳐 1960년대로 이어지는 한국춤으로 흐름을 읽을 수 있었다.(4.9) 

1970년대는 한국춤의 변곡점 

1970년대는 한국춤의 새로운 변곡점의 시기였다. 김매자, 김현자, 문일지, 배정혜의 4인의 여성의 안무작품이 한국춤의 새로운 동력으로 급부상했고, 국수호, 정재만, 조흥동, 채상묵의 4인이 한국춤의 세대교체를 확실하게 성취해냈다. 

2024세실풍류의 세 번째 무대인 ‘춤의 새로운 도화선 – 1970년대 이후 : 한국창작춤의 `등장’에선 김매자, 배정혜, 문일지, 국수호의 춤을 만날 수 있었다. (4..11) 작년 국립정동극장에선 국수호, 김매자, 배정혜의 3인의 춤세계를 다룬바, 여기선 문일지에 집중하겠다. 문일지는 현재 목회자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 

1945년생 문일지는 해방둥이다. 한국전쟁기 부산에서 춤을 배우게 된다. 환도 후 돈암초등학교에 입학한다. 발레를 배우기 시작했고, 초등학교 5학년 때 당시 ‘고전무용’이라고 불린 한국춤에 집중하게 된다. 문일지의 스승은 김진걸과 김백봉이다. 

돈암동이란 지역은 고전무용과 고전음악과 관련해서 매우 중요한 지역인데, 김진걸 무용연구소도 거기에 있었고, 김소희 박귀희 등이 중심이 된 국악학원도 돈암동에 있었다. 당시 문일지를 비롯한 ‘돈암동 키즈’들은 그 어떤 지역의 아이들보다도 전통음악과 전퉁무용을 일찍부터 접하게 되었다. 

국악의 1960년대, 무용의 1970년대, 둘의 접점을 찾아낸 1980년대 

일찍이 춤을 잘 춘 문일지였지만, 1964년 서울대 국악과에 진학(가야금 전공)한다. 1960년대, 국악분야에서 개인독주회, 학교정기연주회를 비롯해서 창악회와 같은 서양음악 작곡가동인의 작곡발표회까지, 장구의 반주자로서 큰 활약을 했다. 1970년대,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 부설로 무용단이 조직이 되었고, 서울시립무용단으로 정식 발족, 문일지는 최연소 무용단장으로서 화려하게 등장한다. 

1974년 송범 안무 ‘호동왕자’ (이성천 작곡, 이진순 연출) 에 최현, 국수호, 정재만 등과 함께 출연했다. (1974년 11월 24일~12월 1일, 국립극장) 문일지창작무용공연 "처용"은 연출 안제승, 안무 문일지, 대본 무세중, 음악 이상규) 스승인 김진걸이 특별출연했고, 국수호, 강대진이 출연했다. (1976년 12월 14일, 국립극장) 

1976년 8월 12일 ~ 20일, 덜험에서 열린 동양음악제에 한국의 전통예술인 7인이 참가했다. 영국 일간지 ‘더 가디언’은 문일지의 춤에 집중했다. 장구춤, 승무를 비롯해 여러 역할을 한 그를  ‘장미꽃 봉우리같은 입술을 가진 매우 아름다운 문일지양’로 소개했다. 

1980년대의 문일지는 1960년대 국악 경험과 1970년대의 무용 경험을 결합해서, 그만의 독특한 영역의 춤을 확립한다. 국악과 시절 지방을 돌면서 경험했던 토속음악과 토속춤을 자신의 작품에 효과적으로 반영을 한다. 

이 시기의 주요 작품으로 창작무용극 ‘땅굿’을 꼽겠다. 이강백 대본, 김영동 음악으로, 유관순 일대기를 다룬 작품이다. (1980. 6. 20~21. 세종문화회관) 2 년 전, 세종문화회관 개관기념 작품 중의 하나였던 ‘바리’와 비교하게 된다. (1978. 6. 22 세종문화회관) 박용구 대본, 황병기 음악인 작품보다 문일지만의 자기 색깔이 드러나는 작품이었다. 
문일지가 한국무용사적으로 해낸 의미있는 역할 중에서, 서울시립무용단의 ‘한국명무전’을 뺄 수 없다. 1982년 문일지단장의 기획으로, 최현, 박금슬, 김문숙, 이매방, 김천흥, 강선영, 정인방이 출연했다. (1982년 6월 3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멀리있는 무덤 : 김영태 시 x 김영동 곡 x 문일지 안무 x 윤시내 노래 

1980년대의 문일지는 무용뮤지컬에 관심이 많았다. 노래와 춤이 공존하는 형태였다. 가수 윤시내를 주목했고, 김영동에게 작곡을 맡겼다. 이번 세실풍류에서 오랜만에 다시 보게 된 ‘멀리있는무덤’은 1981년에 초연한 작품이다. 춤평론가이기도 한 시인 김영태가 친구인 시인 김수영을 생각하면서 쓴 시를 김영동이 작곡했다. 

윤시내의 노래에 기타와 대금이 함께 한 이 곡은, 이후 김영동 음반에선 김영동 자신의 노래로 담겼다. 그 시절 ‘멀리있는 무덤’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윤시내의 노래로 작품을 만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사실 이 춤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김영동의 노래는 음악적으로는 더 윗길일지 모르나, 춤과는 거리감이 크다. 

문일지는, 김수영과 김영태 사이에 존재하는 ‘남성서사’를 윤시내의 목소리를 등장시켜서 여성서사로 반전했기에 그렇다. 40여년 만에 윤시내 노래를 다시 듣게 되니 얼마나 반가운가! 여기에 음악과 안무를 누구보다도 가장 잘 이해하는 계현순의 춤으로 만나다니. 이런 거의 기적적인 확률일지도 모르겠다. 서울시립무용단에 입단해서 문일지를 만나게 된 계현순은, 문일지처럼 훗날에 국립국악원 무용단 예술감독을 지냈다. 두 사람에게는 ‘여장부기질’ 면에서도 통하고, 뭔가 사회적 관습을 초월하면서 삶을 구가하는 묘한 에너지가 내재되어 있다.  

문일지 안무의 ‘멀리있는 무덤’은 매우 독특하다. 전반부와 후반부가 확실히 다르다. 전반부에는 여성 또는 인생에 있어서 한을 그려내는 클리세라면, 후반부는 확실히 반전한다. 치마저고리 속에 감춰진 일곱빛깔의 무지개속고쟁이 드러내면서, 관습과 자아가 부딪히면서 긴장감과 해방감을  만끽하게 한다 문일지가 국악과 시절, 지방을 돌아다니면서 민요채집이라는 이름으로 만났던 여러 여성의 모습이 작품에 잘 투영된 것이 아닌가, 개인적으로 짐작한다. 

문일지의 마지막 안무작품은 언제인가? 30년전이다. 창작무용극 ‘파도’로 광복 50주년기념작이다. 차범석 대본, 문일지 안무, 김철호 작곡, 유경환 연출이다. (1995. 08. 18,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문일지류 살풀이춤, 누군가에 의해 재현되길 

문일지의 전통춤에서 독특한 건 ‘살풀이춤’이다. 문일지의 살풀이는 기존의 살풀이와 꽤 다르다. 일단 호흡이 땅으로 가라앉는 ‘정중동’의 느낌은 덜하다. 반면에 귀기(鬼氣)가 느껴진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떠다니는 혼’ 같다고 해도 좋을까? 이런 분위기 속에서, 그의 살풀이춤은 요염한 기운이 넘쳐난다. 

나는 지금까지 그런 살풀이를 문일지 이전에도 본 적이 없고, 문일지 이후에도 본 적이 없다. 한국전통 속에서도 살로메나 세라자데가 있었다면, 바로 이렇게 살풀이를 추지 않았을까? 문일지 자신이 이런 살풀이를 출 일은 없겠지만, 누군가 ‘문일지류’라는 이름으로 해서 그의 독특한 살풀이춤을 잘 이어주었으면 하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