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미술시장 침체 지속...국내 아트페어 BIG3 어땠나
[기획] 미술시장 침체 지속...국내 아트페어 BIG3 어땠나
  • 김연신 기자
  • 승인 2024.12.03 17:37
  • 댓글 0

3분기 낙찰총액 작년 대비 26% 감소...침체 지속
불황 속 아트페어…저마다 新전략으로 활로 모색
키아프 약진…프리즈는 실속 챙겼다
화랑미술제 in 수원 신설…젊은 층에 집중
캡션 미비・스펙타클 부족…아쉬움 남는 관객들
단기 판매 실적보다 지속가능한 생태계 구축 필요

[서울문화투데이 김연신 기자] 올해 3분기 국내 미술 경매 시장의 낙찰총액이 지난해 대비 약 26% 감소한 와중에 ‘아트페어 위기론’이 화두에 오르고 있다.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 기업부설연구소 카이가 내놓은 '2024년 3분기 미술시장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3분기 국내 9개 미술 경매사의 낙찰총액은 237억5천여 만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321억7천600여만원보다 26.2% 감소했다.

주된 요인으로는 홍콩이나 서구 미술시장에 비해 미약한 제도적 기반과 갤러리를 빙자한 사업체의 폰지 사기 등이 지목되고 있다.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 기업부설 EMI연구소는 “회복세를 보인 홍콩시장이나 다양한 현대작가 포트폴리오와 트로피 작가군을 보유한 서구 미술시장과는 달리 제도적 기반이 미약하다”는 점과 “미술품 투자 플랫폼 ‘갤러리 K’의 폰지 사기 사건은 한국 미술 시장의 구조적 취약성을 또다시 보여준 사례”라는 점을 지적했다. 

국내 미술시장은 그야말로 최악의 3분기(7, 8, 9월)를 보냈으며, 시장 내부에서의 체감은 더 비관적이며 이런 추세라면 당분간 회복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것이 총평이다. 

미술 시장의 침체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 속 올해 아트페어들의 분위기도 사뭇 달랐다. 지난 9월 개최된 키아프(Kiaf)와 프리즈 서울(Frieze Seoul)은 미술시장의 이러한 흐름을 반영한 모습이었다. 출품작 중 대작의 수는 눈에 띄게 줄고, 중저가 작품 위주로 선보이는 전략을 취했다. 

올해 키아프는 전시 수준을 향상시킨 반면 프리즈는 실속을 차렸다는 평가도 있었고, 두 행사 모두 신생 아트페어가 아니다보니 매년 개선되거나 바뀌는 요소가 크지 않은 것 같다는 의견도 있었다. 화랑미술제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속되는 경기침체 속, 아트페어들은 저마다 새로운 전략으로 돌파구를 모색하고 있지만 여전히 풀어야 할 과제들도 함께 남아 있는 상황이다.

▲Kiaf SEOUL 2024 전경
▲Kiaf SEOUL 2024 전경

키아프(Kiaf), 토종 아트페어의 약진

키아프는 2002년 처음 문을 연 한국 최초의 국제아트페어다. 프리즈와 차별화되는 지점은 ‘토종 아트페어’라는 점이다.

올해는 키아프의 약진이 두드러진 해다. 전시 수준을 높이는 데 역량을 집중했다. 

두 행사가 한 지붕을 공유했던 3년 간, 키아프는 ‘토종 행사’임에도 출품 작품, 전시 공간, 참여 갤러리의 다양성, 인지도 등 여러가지가 프리즈와 비교하면 다소 아쉬웠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특히 큰 문제점으로 지적 받던 것은 작품의 퀄리티와 답답한 동선이다. 그러나 올해의 키아프는 변화를 선포했다.

전체 참여 부스 수를 줄이되 심사 기준을 높여 참여 갤러리의 수준을 높이고 부스 디자인과 관람객 동선 등을 개선했다. 건축가 장유진과의 협업을 통해 부스 배치 디자인을 개선, 다소 답답하다는 지적을 받던 공간을 확장했다. 조명과 디스플레이도 개선된 모습을 보여줬다. 

이번에 참가한 206여개의 갤러리 중 3분의 1 이상이 해외 갤러리로, ‘국제 아트페어’라는 이름값을 했으며, 심사를 강화해 국내 갤러리들의 전시 퀄리티도 향상되었다는 평가다. 한 갤러리 관계자는 “경기 불황으로 판매 실적 측면에서는 다들 아쉬워하는 분위기였지만, 기획 면에서는 발전이 있었다고 본다”라고 전했다.

올해 키아프는 5일간 8만 2000명의 관람객 수를 기록했다. 8일 하루에만 1만2,000여 명의 관객을 모았으며, VIP 방문객도 전년 대비 6% 증가했다. 

판매된 작품 중 가장 주목받은 작품은 Sundaram Tagore Gallery(뉴욕)에서 선보인 Hiroshi Senju의 Waterfall on Colors (2024)로, 거래가가 약 5억 6천만 원 (USD 420,000)에 달했다.

국제갤러리는 김윤신의 회화와 조각이 조화를 이루는 솔로 부스를 운영, 다양한 크기의 캔버스 작품을 2천만 원에서 1억 5천만 원 (USD 15,000-90,000) 사이의 가격대에 판매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프리즈와 ‘체급 차’가 컸지만, 올해는 해외 갤러리 참여를 높이고 국내 갤러리 심사를 강화해 출품작 수준이 전반적으로 향상됐다는 것이 전반적인 평가다. 그럼에도 프리즈와 비교하면 작품 수준에는 큰 차이가 있다는 의견과 큰 규모의 전시 공간에 비해 부족한 휴게 공간이 아쉽다는 지적도 있었다.

키아프 관계자는 “올해 3년 차가 되면서 키아프도 프리즈와의 경쟁에서 차별성을 보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고,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고 본다”라고 밝혔다.

▲Frieze Seoul 2024 전경
▲Frieze Seoul 2024 전경

프리즈 서울(Frieze Seoul), ‘실속’ 챙겼다

프리즈(Frieze)는 영국 미술 잡지 <프리즈>가 신진 작가와 동시대 작가에게 전시 기회를 주기 위해 2003년 만든 아트페어다. ‘프리즈 런던’은 기존 아트페어보다 실험적이고 젊은 아트페어를 표방하며 리젠트 파크의 허름한 천막에서 시작됐다. 현재 스위스의 아트바젤(Art Bassel)과 함께 세계 2대 아트페어로 불리우고 있다. 런던, 뉴욕, LA의 성공을 거쳐 아시아에서는 서울에 첫 상륙했다. 

올해 프리즈에는 나흘간 46국에서 7만여 명이 다녀갔다. 36국에서 7만 명이 다녀간 작년보다 성장한 수치다. 광주비엔날레와 부산비엔날레가 아트페어 기간에 맞물려 열리면서 컬렉터뿐 아니라 해외 미술 기관 대표와 큐레이터 등 미술계 인사들의 방한이 늘었다. 프랑스 퐁피두센터, 구겐하임 아부다비, 미국 LA카운티미술관(LACMA), 루브르 아부다비, 홍콩 엠플러스(M+) 뮤지엄, 미국 뉴욕현대미술관(MoMA), 일본 모리 미술관, 미국 뉴뮤지엄, 네덜란드 스테델릭 미술관, 영국 테이트 모던 큐레이터와 관계자들이 프리즈와 키아프 현장을 찾았다. 

참가 갤러리 수는 작년에 비해 줄었으며, 수십 억 원을 호가하는 ‘간판 작품’의 수는 눈에 띄게 적어졌다. 해외 유명 갤러리들은 수백억 원대 대작으로 존재감을 과시하던 지난 행사와 달리 팔릴 만한 중저가 작품을 선보이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같은 작가의 작품에서도 수십억 원에서 수백억 원을 호가하는 대작보다는 수억 원 수준의 중저가에 속하는 작품을 선택하거나, 해외에서 주목받는 한국 작가들의 수억 원대 작품을 골라 대거 소개했다.

지난해 14개에 불과하던 한국 화랑 수를 31개로 늘렸다는 점은 주목할 만 하다. 올해 선정된 갤러리가 총 110개 가량인 것을 고려하면 적지 않은 수다. 패트릭 리 대표에 따르면, 올해 참여 갤러리 중 아시아 갤러리는 63%에 달한다. 아시아 미술 시장을 향한 방향성을 공고히 하는 듯 하다.

미술 시장의 불황의 영향인지 초고가 작품은 보이지 않았지만, 대중적인 작가, 판매가 보장된 작품들이 출품돼 고루 팔렸다. 최고가를 기록한 작품은 스위스 갤러리 하우저앤워스에서 선보인 니콜라스 파티의 ‘커튼이 있는 초상화’다. 약 250만달러(약 33억5000만원)에 판매됐다. 독일계 화랑 스프루스 마거스는 조지 콘도의 ‘자화상’을 아시아의 개인 컬렉터에게 195만달러(약 26억원)에 판매했다. 페이스 갤러리는 이우환의 회화를 120만달러(약 16억원)에, 타데우스 로팍은 게오르그 바젤리츠의 회화를 100만유로(약 15억원)에 판매했다.

올해 프리즈 서울을 찾은 관객들은 ‘프리즈’의 위상에 걸맞는 대형 작품이 나오지 않은 것에 대해 아쉬움을 표했다. 올해 프리즈는 “실속을 차렸다”는 평가가 있다. 컬렉터들 입장에서는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고가의 대작보다는 ‘적절한’ 가격의 좋은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는 자리였지만, 눈길을 끌던 마스터즈 섹션도 유명무실해지며 관람객 입장에서는 볼거리가 적어졌고, 오히려 장외전들이 더욱 볼만했다는 지적이 있었다.

참가 갤러리들이 중저가 작품에 집중해 판매고를 올린 전략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전망도 있다. 한국 중견 작가를 내세워 활로를 모색하는 국내 중소 갤러리 입장에서는 체급 차이가 월등한 해외 갤러리와의 경쟁 구조가 심화되는 것이 상당한 부담이기 때문이다. 

연계행사들이 여전히 대중보다는 미술인과 컬렉터들을 위한 네트워킹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 역시 지적 받았다. 한 관객은 “캡션에 작품 설명이 제대로 표기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았고, QR코드로 연결하면 온통 영어로만 쓰여있기도 했다”라며, “최소 작가 이름과 작품명, 재료 정도는 작게라도 표기해주면 감상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아쉬움을 표했다.

▲2024 화랑미술제 전경
▲2024 화랑미술제 전경

화랑미술제, 젊은층에 집중

화랑미술제는 (사)한국화랑협회 주최로 올해 42회를 맞이한 국내 최장수 아트 페어다. 매년 상반기에 개최돼 국내 미술 시장의 현황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바로미터로 꼽힌다. 

올해는 특히 ‘화랑미술제 in 수원’을 신설해 관심을 모았다. 광교호수공원을 배경으로 나흘간 펼쳐진 행사에는 95개 갤러리와 600여 명의 작가가 참가, 3만 여 명의 관람객이 방문했다. 한 참가 갤러리 관계자는 “신설 행사임에도 불구하고 관람객들이 많이 찾았고, 판매도 많이 되어 첫 회치고 성공적이었다고 본다”라고 전했다.

올해 개최된 화랑미술제(서울)는 경기 불황의 양극화를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VIP 프리뷰에 예상 외로 작품 판매가 이어져 기대감이 높아졌지만 주말 기간 매출 실적은 높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닷새의 행사 기간 동안 총 방문객 수는 5만8000여 명을 기록했다. 지난 해와 비슷한 수준이다. 

참가 갤러리들은 경기 불황 여파로 대체로 고가의 대형 작품보다는 젊은 작가들의 작품이나 소품 위주로 판매가 이뤄졌다. 화랑협회는 “소셜 미디어를 기반으로 리테일 시장의 강력한 소비층으로 떠오른 MZ세대 컬렉터들의 취향에 맞는 신진작가들의 합리적인 가격대 작품 판매가 호조를 보인 것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한 관객은 “대중성에 기대 지나치게 잘 알려진 캐릭터를 그대로 사용하며 유행에 편승하려는 작품들이 많이 보여 피로했다”라며 아쉬운 점을 꼽기도 했다. “지난 해에 비해 발전한 부분이나 변화지점이 있다고 느껴지지 않았다”는 평가와 “지속되고 있는 미술시장 불황으로 갤러리, 작가들이 참신함과 도전정신보다는 안정성을 추구하게 된 것도 한 몫 한 것 같다”는 의견도 있었다.

전반적인 매출은 200만~500만원 대인 신진 작가 작품이 호조를 보였다. 갤러리 BHAK의 순재, 갤러리가이아의 심봉민, 갤러리조은의 성연화, 갤러리우의 한충석, 리서울갤러리의 김자혜, 맥화랑의 이두원, 본화랑의 김종규, 스페이스 윌링앤딜링의 박노완, 인사갤러리의 루시 드로잉, 키다리 갤러리의 최형길 등 80~90년대 생 젊은 작가들이 높은 판매고를 기록했다.

안정적인 작품을 구매하려는 경향은 여전했지만, 젊은 에너지를 강조한 이번 화랑미술제의 선전에 신진작가에 대한 수요가 크게 증가했다. 분명한 것은 최근 몇 년 새 미술품 구매와 향유에 대한 인식이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었다는 점이며, 이는 국내 미술 시장의 확대와 발전을 보여주는 긍정적인 변화라는 평가가 있었다.

화랑협회 황달성 회장은 “개막 후 오픈런과 같은 과열 양상은 사라졌지만 관람객들이 작가와 작품에 대해 다양하고 깊이 있는 질문을 던지는 등 적극적으로 참여해 현대미술에 대한 이해와 관심은 전반적으로 높아졌다는 평가가 많이 나왔다”라고 밝혔다.

아트페어 홍수, 올해 성과는...

올해 국내 주요 아트페어들은 각각의 특성과 전략으로 어려운 시장 상황 속에서 일정한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여러 긍정적인 면모에도 불구하고 비판의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미술 시장 침체로 인해 고가 작품 대신 중저가 작품이 주류를 이루는 판매 전략은 안정적인 실적을 기록했으나, 예술적 다양성과 도전 정신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피하지 못했다. 특히 국내 중소 갤러리들은 해외 대형 갤러리와의 체급 차이로 인해 경쟁의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이러한 구조적 문제는 시장 전반의 장기적 성장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일부 아트페어는 매년 유사한 기획과 구성으로 새로움과 창의성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으며, 신진 작가 발굴에 집중한 행사들은 작가들이 시장에서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체계가 부족하다는 한계를 드러냈다.

국내 미술 시장은 단기적인 판매 실적에 안주하기보다 장기적이고 지속 가능한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 컬렉터들 뿐만이 아니라 단순 관람객들 역시 만족할 수 있는 양질의 전시를 꾸리고, 경기 침체와 구조적 한계를 넘어 창의적인 기획과 국내외 작가, 갤러리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국내 아트페어와 미술 시장의 미래를 위한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