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한국의 행위미술가들 ⓼김광철
[특별기획]한국의 행위미술가들 ⓼김광철
  •  이혁발 /예술연구소 육감도
  • 승인 2024.12.26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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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의 초상을 드러내는 고독한 육체동력기관

타고난 행위미술가(신체미술가)
1993년, 대학 시절 담소를 나누던 선배의 우발적인 권유에 15분 생각해보고 그 자리에서 당장 시작하게 된 김광철의 첫 행위가 세계를 종횡무진하며 30년 넘게 활발히 활약하는 지금의 김광철이라는 행위미술가(작가는 ‘신체미술가’라 칭한다)를 있게 한 씨앗이었다.

 “시작하기 전의 증폭되는 긴장감, 시작 후 마치기까지의 평온감, 마친 후의 이완감이 너무 강렬”했었다던 그는 스스로 퍼포먼스를 기획하고 대학 주변 공간을 무대 삼아 게릴라퍼포먼스의 형태로 펼쳐나가게 되었다.
작가는 첫 시작인 1993년부터 2000년까지의 작업 시기를 ‘동적 명상화’ 시키는 데 주력했다고 회고했다. 즉 “내면에 쌓인 분노와 생각, 감정, 세계관이 밖으로 표출”하는 것이 중점이었다고 했다.

▲'메모리 로딩', 2011, 그레이스 익히비션 스페이스, 뉴욕, 미국.
▲'메모리 로딩', 2011, 그레이스 익히비션 스페이스, 뉴욕, 미국.

2001년부터 2004년까지에는 시각적인 면과 설치미술적 요소를 신체와 결합시키거나, 퍼포먼스를 공연과 접목시키는 시도도 해본 시기였다 한다. 접목하는 과정의 갈등 상황을 겪으며 퍼포먼스아트와 공연예술은 접목하기 어려운 분명한 다른 영역임을 확인하였다.

김광철은 2005년부터 퍼포먼스와 ‘자아’에 대한 글쓰기 작업을 통해 행위미술과 행위미술을 하고 있는 자신에 대한 ‘살펴 바라보기’, ‘돌아보기’, ‘성찰’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 한다. 그때까지의 자기 작업에 대한 회의감까지 드는 시기였다 한다.

그런 ‘돌아봄’의 과정을 거쳐 2006년부터 자기 작업의 표현에 대한 이해가 왔고, 자기 작업에 대한 정체성을 깨닫게 되었다 한다. 그래서 나온 작품 <메모리 로딩 Memory Loading>을 필두로 이때부터 자신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완성도 높은 여러 작업들이 속속 펼쳐지게 된다.

다중 레이어 퍼포먼스
김광철은 2006년부터의 자신의 작업을 ‘다중 레이어 퍼포먼스’라고 칭한다. 포토샵에서 여러 레이어가 겹쳐져 있는 것 같은 것을 말한다. 우리 말로 ‘층’이 여러 겹 겹친 상태를 말하는 것이며, 그 층들의 투명도는 각양각색이어서 얼핏 매우 복잡해 보이지만 독특한 김광철만의 색깔, 시각을 보여준다.

▲'랭귀지 플라워', 2012, 인터렉췌 13, 폴란드.
▲'랭귀지 플라워', 2012, 인터렉췌 13, 폴란드.

그가 말하는 층(레이어)은 “공간, 시간, 상호적 긴장감, 색채, 속도 차, 길이, 인터렉티브, 물질의 속성, 심리 등 작품 구성을 이루는 구성요소 하나하나”를 말한다고 했다. 그래서 자신의 작업은 이 요소들 하나하나를 “의식하여, 배치”한다는 것이고 그 배치는 “‘균형’, ‘변화’, ‘통일’의 조형 요소를 적극 활용하여 시각화”한다고 한다. 그리고 완성하기까지의 버무림에는 “필연과 우연, 즉흥과 계획 등 상응적 요소들”을 “팽팽한 비율로 구성”하여 제작한다 했다.

이것은 복잡다단하고 표피화되고 파편화되는, 분열적인 현대사회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고, 사방팔방으로 모든 것들이 연결된 뉴런 같은 유기적 사회구조, 그 디지털시대를 살아가는 다중 자아의 표출이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다중 레이어 퍼포먼스’라는 작업은 현대인의 초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효과적인 수단으로 보인다.

고독을 넘어서 생생한 존재 증명
<메모리 로딩 스무 개의 담배>(2009)에서처럼 김광철은 일찍이 작품에서 담배를 직접 피우는 작업을 하곤 하였다. “담배는 마치 삶과 죽음 같고, 꽁초가 되어 버려지는 … 인생과 같다.”라고 했다. 그러므로 이 담배 피우는 행위는 존재의 허무함과 마주하는 것이다. 불완전한 인간이 수시로 맞닥뜨리는, 그 천형 같은 고독을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기도 하다. 이 동작은 고독하고 소외된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다. 냉소가 담긴 자학(존재의 무시)이기도 하다.

▲'캔디걸', 2009, [오픈페스티발], 오픈갤러리, 베이징, 중국.
▲'캔디걸', 2009, [오픈페스티발], 오픈갤러리, 베이징, 중국.

또 담배가 주는 짧은 쾌감은 바타이유가 말하는 “불연속성을 넘어서는 연속성에 대한 향수”의 발현이다. 죽음을 통해 완성되는 연속성은 에로티시즘을 통해 맛볼 수 있지만, 담배는 1~3초의 짧은 연속성을 맛보게 해준다. 담배 피우는 행위는 삶과 죽음이 한 몸에 있음을, 그 삶이란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다른 말로 연속성을 지향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어느 날 연기처럼 사라지는 우리네 삶 말이다.
 그래서 이 ‘담배 피움’은 죽음(연속성)을 경험하며 살아있음의 생생한 증명을 스스로 확인하고, 확인시켜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 존재가 정신이 아닌 몸으로 성립된다는 것을 살아있는, 성찰하는 ‘육체동력기관’(‘행위하는 몸’에 대해 작가가 붙인 말)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김광철의 “의무나 책임, 역할에서 비롯되는 어깨를 짓누르는 무게를 견디기 어려웠었다”라는 말에 의하면 공연장에서 담배 피우는 행위는 문명과 사회의 전통적 구조/틀에 대한 저항의 몸짓이기도 한 것이다. “예술은 기존 관계들에 대항하고 동시에 그것을 초월한다. 그로부터 예술은 지배적 의식, 즉 일반적인 경험을 파괴하는 것이다.”(H. 마르쿠제) 김광철은 이 사회가 가진 모든 지배적 인식의 틀을 파괴하는 숭고한 작업을 행하고 있는 것이다.

눈 감기고, 입 막는 육체동력기관
<메모리 로딩> 작업에서는 한쪽 눈을 막아버리고 종국엔 그 검은 테이프로 얼굴 전체를 칭칭 감아 버린다. 얼굴은 울퉁불퉁 기괴한 형태가 된다. <육체동력기관:스무 개의 담배>(2014, 안동)에서도 찢어 던졌던 사전 종이를 눈에 하나씩 붙여 한쪽 눈 전체를 가리고 행위 하였다. 이렇게 김광철은 여러 방법으로 눈을 가리고 입을 막는다.

▲'필더페이퍼', 2012, 인터렉췌 13, 폴란드.
▲'필더페이퍼', 2012, 인터렉췌 13, 폴란드.

세상을 인지하는, 세상이 들어오는 감각기관을 폐쇄한 것이다. 세상과의 열림/소통을 단절한 것이다. 눈감아버리는 것이다. 세상 모든 틀의 억눌림을 눈감음으로 방어하는 것이다. 또 사회의 모든 억압적 구조를 거부하는 저항이기도 한 것이다. 동시에 이 닫음은 그 감각기관의 중요성을 다시금 일깨우는 것이기도 하다.

또 감각을 닫음으로 현란한 이미지 난무시대의 이미지에 현혹당하지 않고 존재 그 자체로 침잠하려는 것일 수 있다. 눈을 감으면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자신의 ‘행’을 돌아보게도 하고, 그 내면 깊숙이 걸어 들어가 자아와 만나볼 수 있는 것이다. 수많은 레이어로 나눠지는 것처럼 분열하는 자아, 자기 안에 있는 여러 개의 자신과 만나볼 수 있는 것이다.

신체와 사물(세계)과의 교접
<예술 씨앗> 작품은 작가의 말처럼 “주제와 상관없이 이미지와 현장에서의 에너지, 그리고 조형적 신체와 다양하게 해석되는 사물과의 만남”에 주안점을 둔다. 이 작품은 탁자 위에 여러 사물을 올려놓고 사물들과 탁자를 중심으로 그 주변 공간을 확장하며 벌어진다. 등장하는 사물은 사과, 포도, 바나나, 종이테이프, 종이컵, 붉은색 끈, 빨래집게, 책, 가위, 커터칼, 향, 마카펜(매직펜) 등 그 현장에서 취득할 수 있는 것들로 유동적으로 준비된다. 

행위는 재고, 잰 부분에 선을 긋고, 자르고, 즙을 짜고, 마시고, 몸 떨림 같은 연속 동작으로 드로잉 하는 등을 행한다. 김광철은 행위 하는 공간 속에서 사물과 세계와 끈적끈적하게 접촉하고, 달라붙고, 미끄러지고, 엉기며, 포옹하고, 흐른다.

이 작품으로 볼 때 김광철은 몸철학적 관점에서 사물과 세상을 대한다고 보인다. 메를로 퐁티는 몸과 세계 간의 관계를 상호규정적인 삼투관계로 본다. 세계(사물)에 혼을 불어넣고 의미화함으로 세계와의 동질화를 시도한다. 그 세계(타자)를 자신의 실존을 위한 상황으로 변환시키는 것이다.

▲'로맨틱 매터리얼 다크니스', 2018, 딥인투, 전주.
▲'로맨틱 매터리얼 다크니스', 2018, 딥인투, 전주.

그래서 하나의 세계 안에 있는, 유기적으로 상호 침투하고 있는 세계 안의 몸으로 사물과 세상과 만나며 존재론적 원형과 마주하는 것이다. 메를로 퐁티가 말한 “몸과 세계가 함께 살아 오르는 근원적인 상태”로 경험되고 느껴질 때, 우리의 몸은 근원적인 존재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김광철은 몸이 사물의 존재론적 원형과 마주하는 상태를 행위로 시각화해 보여주는 것이다.

김광철은 그 공간 안에서 세계, 사물과 접촉하고, 스며들고, 너울거리며, 출렁이며 반죽 되고 솟아오른다. 교섭하고, 교접하는 것이다. 내가 거기에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예술 창작이 존재의 당위성인 신체미술가
김광철이라는 행위미술가가 쌓아온 30년의 행위업적은 한국미술사의 커다란 족적이라 할 수 있다. 16회(장소를 달리한 7개의 행위개인전의 총횟수)의 퍼포먼스아트 개인전을 펼친 작업량만 보아도 다른 행위작가들이 근접하기 힘든 정도이다. <정치의 눈물>(2013, 2014, 2015) 같은 작품은 이틀, 사흘씩 극장을 빌려서 진행하였다. 이런 업적은 활화산 같은 작업 열정이 있어서 가능했던 것이다.

한때 김광철은 자신의 오랜 고민이 “대체 왜 태어났는가?”라는 것이었다 한다. 지금은 왜 태어나는지 이유가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도 이르렀다 한다. 이런 존재의 본질에 대한 질문은 예술가의 특권이며, 그 질문의 결과는 이 세계가 우발성의 결과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예술씨앗 96-05', 2022, [아시안아트비엔날레], 다카, 방글라데시.
▲'예술씨앗 96-05', 2022, [아시안아트비엔날레], 다카, 방글라데시.

이제 영혼이 자유로워진 것이다. 그저 본능적으로 흘러나오는 예술충동(예술 재능)을 스스럼없이 펼쳐나가며 삶의 충만함을 즐기면 된다. 그럴 나이도 되지 않았는가? 사실 요즘은 예술 창작활동이 그의 존재 이유다. 예술 창작의 활화산 안에서 그의 존재는 빛을 발한다. 예술 창작이 존재의 당위성인 신체미술가 김광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