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혜의 조명 이야기] 우리나라 문화재를 위한 ‘한국형’조명 가이드라인이 필요한 이유
[백지혜의 조명 이야기] 우리나라 문화재를 위한 ‘한국형’조명 가이드라인이 필요한 이유
  • 백지혜 건축조명디자이너/디자인스튜디오라인 대표
  • 승인 2023.12.14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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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혜 건축조명디자이너/디자인스튜디오라인 대표
▲백지혜 건축조명디자이너/디자인스튜디오라인 대표

또 한해가 지나고 있다. 빛전문가로 일한지 벌써 20년이 되어간다. 처음에는 그저 일하는 즐거움에 밤낮으로 ‘밝히는’ 일에 몰두했었는데, 시간이 흘러 이런 저런 프로젝트를 해내고 나니 ‘하고 싶은’ 프로젝트가 생긴다.

그 중에 하나가 ‘문화재를 위한 조명 가이드라인 만들기’이다.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인데 이 프로젝트는 나의 소원이 된 지 이미 오래다. 

처음 창덕궁의 달빛기행에 참가했을 때는 바쁘고 복잡한 도시 서울에서 고고하게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문화유산이 도시의 경관으로서 시민에게 친근해지고, 새로운 가치를 갖게 되는 것에 큰 박수를 보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후 경복궁에도 야행프로그램이 생기고 창덕궁에서 ‘자제’한 듯 했던 조명이 사방을 비추고 화려한 빛이 비추어지는 거대한 행사가 진행되는 것을 보며 알지 못할 겁이 났던 기억이 있다.

본격적으로 문화재 가이드라인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은 경주를 여행을 하면서 부터 였다. 사진으로 본 아름다운 경주의 야경을 직관하고는 참담했다는 표현이 적절할 듯하다. 지금 우리가 오용, 남용하는 빛이 다음 세대에는 다른 모습으로 전해지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오래 전에 마음먹은 이 일이 아직 소원인 이유는 여러 가지이다. ‘내 것’이 아닌 것에 ‘공공의 자’를 들이대는 일은 그리 쉽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님을 모두가 알 것이다. 더군다나 야간관광이라는 키워드로 지방에서 체류형 관광상품을 개발, 톡톡히 경제효과를 누리고 있는 마당에 빛을 제한하자는 내용의 가이드라인은 누구도 반길리 없다. 가이드라인을 마련한다는 것이 제한의 목적 보다는 오용, 남용을 막자는 취지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이드라인을 규제, 제한으로 오해하고 있는 듯하다. 대구의 근대문화유산 조명계획 프로젝트를 하면서 빛의 오용이나 과용을 걸러내는 어떤 장치도 없어 놀랐고, 상시가 아닌 일시적인 행사이긴 하지만 수원화성 미디어아트 프로젝트를 하면서 200년 역사를 가진 사적이며 팔달문, 화서문등 여러 개의 보물을 포함하고 있는 수원화성을 비추는 일에 조명 관련 어떤 지침이나 가이드가 없다는 것도 놀라웠다. 심지어 조명기구를 설치하기 위해 성곽 주변을 마음껏 이용하는 것에 화가 날 지경이었다. 

‘관광’이라는 이름으로 조명을 비추는 문화재들에 대한 프로젝트의 자문을 가보면 보존을 이유로 무조건 어떠한 조명도 설치하면 안된다는 완고한 사람들과 야간관광을 위해 ‘은은한 빛’을 비추라는 사람들이 팽팽한 대립을 한다. 나는 당연히 ‘은은한 빛’의 편을 들며 모든 조명이 훼손으로 바로 결과되어 지는 것은 아니며 적당한 빛은 모두가 이익을 얻을 수 있는 해결책이 될 것이라고 답한다. 나름 조명 전문가가 하는 이야기이니 수긍해 주는 분들이 있어 다행인데 나 역시 사업주체가 ‘은은한 빛’을 할지 장담하기 어렵다. 

그래서 사업주체에게 질문 하곤 한다.

“은은하게 하실 거지요?”. “네”
“어떻게 하는게 은은한 걸까요?”
“....”

빛에 의해 사물이 손상된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인공광원이 보편적으로 사용되기 이전, 이미 영국에서는 이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졌는데 Russell과 Abney가 ‘수채화에 대한 조명의 작용’이라는 보고서에서 사물이 빛의 자외선과 가시광선의 단파장에 의해 손상되며 빛에 노출되는 시간도 영향을 미친다고 하였다. 그 후 인공광원이 사용되면서 조도가 높아지자 손상을 방지하려는 노력으로 정량화가 시도되었다.

이에 대한 정식의 연구는 1950년에 미국 국회도서관에서 의뢰하여 이루어졌는데 헌법이나 독립선언서등의 역사적인 문서를 전시, 공개하면서 손상이 진행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이후 1981년 Thomson이 그의 저서 ‘the museum environment’라는 책에서 사물의 재질에 따른 조도 기준을 제시하였고 1991년 독일 Aydinli은 적외선에 의해 발생되는 열이 밀폐된 환경에서 빛에 의한 온, 습도의 변화가 손상을 초래한다고 하였다.

이러한 연구는 대부분 유럽에서 이루어졌는데 비교적 빛에 덜 민감한 대리석이나 청동과 같은 금속으로 만들어진 외부 유물보다는 실내에 보관되는 유물에 국한한 연구를 진행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목재에 색을 입힌 문화재가 많아 이들이 제시하는 조도나 노출시간은 기준이 될 수 없다. 물론 이미 태양광에 의해 오랜 세월 동안 손상된 색이나 재질이 인공조명을 제한한다고 더 좋아지거나 보존에 큰 영향을 주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주변 환경과의 조화. 광원의 특성을 고려한 파장의 제한, 적절한 빛의 밝기, 조사 방향에 대한 지침등은 보존해야할 소중한 자원으로서 문화재의 손상을 늦추려는 최소한의 노력이면서 문화재가 가진 의미와 가치를 잘 표현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우리나라 문화재의 고유한 특성을 고려한 한국형 문화재 조명에 대한 가이드라인은 체류형 야간관광이 점점 중요해지는 이 시대에 더 이상 미루면 안되는 우리 모두의 숙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