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년 새해가 시작되면 창작 음악계에서 중요한 행사가 열린다. 지난 1월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열린 ARKO 한국창작음악회(아창제)도 그중 하나다. 올해로 16회를 맞은 아창제는 국악·양악 부문 창작 관현악곡을 공모해 기획 공연으로 선보이는 프로그램이다. 국악 부문 공연은 지난 1월 18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열렸으며, 양악 부문은 이번 달 20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릴 계획이다.
그동안 160여 편의 선정작을 발표하며 한국 창작 음악을 이끌어 온 대표적 공모이자 축제인 아창제는 올해부터 유료 공연으로 전환했다. 그럼에도 공연장 로비에는 많은 관객이 모여 공연을 기다렸다. 이날 연주는 국립극장 국립국악관현악단이 맡았으며, 지휘는 중앙대학교 김성국 교수가 담당했다. 개인적으로 애정을 가진 연주단과 지휘자인 만큼 기대감이 컸다. 공연은 다섯 곡으로 이뤄졌으며, 각 작품은 흥미롭게도 서로 다른 시대적 배경과 가치를 추구하는 작곡기법을 보여주고 있었다.
작품 스케치
첫 곡으로 연주된 김신애의 《걸리버 여행기》 서곡은 제목 그대로 독특한 이미지 형상화에 집중한 작품이었다. 네 개의 큰 장으로 이루어진 이 곡은 각 장의 이미지를 소리로 충실히 구축하였는데, 음악적 재료의 참신함과 소리의 즐거움을 탐색하는 과정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로운 음악이었다. 다만, 기승전결이 더 뚜렷했다면 완결된 인상을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아직 서곡일 뿐이며, 앞으로 이어질 연작을 구상 중이라고 하니, 음악이 어떻게 발전할지 기대되고 있다.
두 번째 곡, 김상진의 《정악대금과 국악관현악을 위한 〈청공의 소리〉》는 표제를 은유와 상징의 음향으로 풀어낸 아카데믹한 작품이었다. 나는 이 곡을 듣는 내내 ‘전통에서 출발해 이를 현대적으로 풀어내는 작곡가’와 ‘현대적 작품을 위해 전통을 차용하는 작곡가’의 차이를 곰곰이 생각하게 되었다. 작곡가의 프로그램 노트를 보면 전자에 가깝지만, 실제 음악은 후자처럼 느껴졌다. 다만, 이런 구분은 감상의 과정에서 떠오른 것일 뿐, 작곡가의 의도와 관계없이 결국 작곡 환경과 시대상이 음악을 만들어 낸다는 점에서 본질적 차이 구분은 의미 없을지도 모른다. 음악적으로는 많은 아이디어를 담았으며, 단편적인 구현에 그치지 않고 전통의 색채와 질감을 살려 국악관현악으로 개성 있는 소리를 잘 구현해 냈다.
1부의 마지막을 장식한 최지혜의 첼로 협주곡 《미소》는 이날 작품 중 가장 선율적이었고, 보편적인 감성으로 표현한 곡이었다. 그가 작곡한 선율은 명확했고, 관객들에게 어떻게 들릴지, 어떤 표현이 효과적인지, 그리고 자신의 강점인 민속음악의 요소를 어떻게 풀어낼지를 잘 아는 노련한 작곡가임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특징 덕분에 그의 작품은 여러 악단에서 레퍼토리로 자주 연주된다.
2부의 첫 곡, 최윤숙의 《도롱이를 쓴 그른새》는 작곡가의 독창적 표현 방식도 있었지만, 그보다 1980~90년대 국악 관현악 전성기에서 자주 쓰이던 전통적 창작 기법이 짙게 나타난 곡이었다. 이 곡을 들으며 자연스럽게 오늘날 창작 음악 지형도가 떠올랐고, 작곡가가 살아온 시대와 그 시대 작곡가들이 만들어낸 음향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어쩌면 다소 묵직하고 오래된 음악적 어법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결국 이런 작품도 오늘날 창작 음악의 한 형태임을 다시금 실감했다.
마지막을 장식한 이정호의 《아부레이수나》는 이상적인 국악 관현악곡이라 할 만했다. 하나의 주제적 테마(Fixed idea)를 일관되게 유지하며 완결성을 갖췄고, 다채로운 음향과 국악 관현악의 고전적 어법을 따르면서도 작곡가의 개성이 묻어나는 편곡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과거 국악 관현악 작곡 기법에 대한 존중과 함께, 어떤 소재든 국악 관현악으로 구현할 수 있다는 작곡가의 자신감이 느껴졌다. 후반부에 등장한 토속적이고 투박한 돔소소리 선율도 이질감 없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었으며, 오히려 반갑게 다가왔다 그의 활동이 기대되는 이유이다.
아창제가 나아갈 길
아창제 사무국은 아창제를 ‘작곡 콩쿠르가 아니라, 오늘날 창작 음악계의 현 단계를 진단하고, 이 시대 작곡가들의 다양한 작품을 보여주는 페스티벌’이라고 밝힌다. 이날의 공연은 다양성이라는 기획 의도를 분명히 드러냈다. 사실 작곡가는 다양성이나 균형을 고려해 작품을 쓰지 않고,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표현할 뿐이다. 그런 각각의 작품을 한데 모아 특정 방향에 치우치지 않고 다양한 가치를 보여준 아창제의 프로그램 구성은 분명 칭찬할 만하다.
아창제가 '광장'이 되어 주기를 바란다. 누구나 무대에 올라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은 소란스레 의견을 나누며, 담론이 확장되는 열린 공간 말이다. 오늘날의 최신 현대 기법을 집약한 음악, 서양 음악과 전통 음악 사이의 음악, 전통에 충실한 음악, 메시지를 음악보다 중요히 여기는 음악, 음악 내부에서 완결성을 추구하는 절대음악 등. 이 모두가 오늘의 음악이다. 아창제가 이러한 중간자의 역할을 맡아, ‘광장’이 되어준다면, 다양한 영역의 창작 음악이 각자의 방법으로 더 자신있게 성장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번 호부터 김석순의 <우리시대 공연과 문화>가 연재 됩니다. 독자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격려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