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올미술관, 《아그네스 마틴: 완벽의 순간들》·《In Dialog: 정상화》 동시 개최
솔올미술관, 《아그네스 마틴: 완벽의 순간들》·《In Dialog: 정상화》 동시 개최
  • 김연신 기자
  • 승인 2024.04.24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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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8.25, 솔올미술관 전시실 1,2,3, 세미나실
회화 및 실크스크린 프린트, 영상 등 총 68점

[서울문화투데이 김연신 기자] 지난 2월 개관전으로 약 2만 7천여 명의 관람객을 기록한 강릉 솔올미술관이 두 번째 기획 전시를 준비했다. 솔올미술관은 오는 5월 4일부터 8월 25일까지 《아그네스 마틴: 완벽의 순간들》展과 《In Dialog: 정상화》展을 동시 개최한다. 

▲아그네스 마틴, 〈무제 #9〉, 1990, 캔버스에 아크릴, 연필, 182.6 x 182.6 cm © Estate of Agnes Martin
▲아그네스 마틴, 〈무제 #9〉, 1990, 캔버스에 아크릴, 연필, 182.6 x 182.6 cm © Estate of Agnes Martin

《아그네스 마틴: 완벽의 순간들》

아그네스 마틴(Agnes Martin, 1912~2004)은 캐나다 출생의 미국 여성 미술가로, 1950년대 이후의 미국 미술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사람이다. 순수 추상을 추구했던 아그네스 마틴은 남성 중심으로 전개되던 전후(戰後) 미국 미술의 흐름 속에서 선불교의 명상을 창작 태도로 받아들였다. 작업으로의 완전한 몰입을 위해 스스로를 세상과 분리시킨 마틴은 모더니즘의 형식주의와 거리를 두며, 명상적이고 직관적인 작업세계를 펼쳐 나갔다. 

마틴의 주요 작품 54점이 소개되는 이번 전시에서는 미술가의 명상적 회화가 완벽의 단계에 도달하는 여정을 보여준다. 전시는 리움미술관, 일본의 오사카 국립국제미술관과 나고야시 미술관, 뉴욕의 휘트니 미술관과 디아 비컨 미술관을 비롯해 페이스갤러리, 조지 에코노무 컬렉션을 포함한 해외 소장자의 협력을 통해 이루어졌다. 런던 테이트 모던(Tate Modern) 관장을 역임한 프란시스 모리스(Frances Morris)가 객원 큐레이터로 기획에 참여했다.

전시 도입은 마틴이 대상의 재현과 모방에서 벗어나 명상과 성찰을 통해 고유한 표현 언어를 찾아가는 과정을 조명한다. 미국 뉴멕시코주(New Mexico) 타오스(Taos)에서 활동하던 마틴은 1954년 무렵 추상표현주의 형식에서 벗어나서 보다 기하학적이고 차분한 색조의 작품을 창작했다. 1957년 뉴욕으로 거처를 옮겨 로버트 라우센버그, 재스퍼 존스, 엘스워스 켈리 등과 교류했던 이 시기, 마틴의 회화에서는 기하학적 패턴과 고요한 색상이 나타나기 시작하며 이는 격자로 이어진다. 

▲아그네스 마틴
▲아그네스 마틴

1967년 돌연 작업을 중단한 아그네스 마틴은 뉴욕을 떠난 후 몇 년간 홀로 여행을 이어갔고, 1974년 다시 타오스(Taos)로 돌아와서 생애 마지막까지 30여 년 동안 동일한 방식의 작업을 이어갔다. 전시의 두 번째 섹션은 이 시기에 창작된 작품을 집중 조명한다. 명상의 과정을 통해 가장 순수한 정신적 상태로 예술적 영감을 표현한 작품들이다.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제작된 30점의 작품이 앙상블을 이루는 <어느 맑은 날에>(On a clear day, 1973)는 아그네스 마틴의 작업 생애에 있어서 중요한 전환을 암시한다. 

마틴은 1977년에서 1992년 사이 회색 모노크롬 작업을 지속했다. 전시에서 소개되는 여덟 점의 회색 모노크롬 작품은 형태, 색조, 질감의 무한한 변주를 보여주며 미학적 절정을 경험하게 한다. 이 작품에 대해 마틴은 “오브제도 공간도 선도 아무것도 없으며, 어떠한 형태도 지니지 않는다. 형태를 무너뜨리며 융합과 무형성을 다루는, 빛과 가벼움의 작품들이다“라고 말한다.

끝으로 전시는 아그네스 마틴이 삶의 마지막 10년 동안 몰입했던 시리즈를 소개한다. 1993년 건강상의 이유로 양로원에서 지내던 마틴은 매일 작업실을 찾았다. 몸이 쇠약해지며 작품 크기도 줄었지만 마틴의 가장 빛나고 아름다운 작품들은 생애 마지막 순간인 이 시기에 탄생했다. 1999년 제작된 연작 ‘순수한 사랑’(Innocent Love, 1999)은 아그네스 마틴의 마지막 작품들이다. 회색 모노크롬과는 다른 옅은 원색으로 청명한 광채가 깃들어져 있다. 아그네스 마틴의 예술 여정은 삶에 대한 기쁨과 예찬이 담긴 ‘순수한 사랑’(Innocent Love, 1999) 시리즈와 함께 끝을 맺는다.

이번 전시에서는 문학적 감수성이 담긴 마틴의 글도 소개된다. 아울러, 세미나실에서는 2002년 아그네스 마틴의 작업실을 찾아 그의 독특하면서도 매력적인 모습을 담아낸 메리 랜스(Mary Lance)의 다큐멘터리 영화 <세상을 등지고>(With my back to the world, 2002)가 상영될 예정이다.

▲정상화, 무제 98-3-12, 1998, 캔버스에 아크릴릭, 162.2 x 130.3 cm © 정상화, 이미지 갤러리현대
▲정상화, 무제 98-3-12, 1998, 캔버스에 아크릴릭, 162.2 x 130.3 cm ©정상화 (제공=갤러리현대)

《In Dialog: 정상화》

솔올미술관은 아그네스 마틴의 작품세계와 미학적 대화를 이어 나가는 전시 프로젝트 《In Dialog: 정상화》를 함께 선보인다.  ‘In Dialog’는 세계미술과 한국미술을 연결하기 위해 시리즈로 기획된 전시 프로젝트로, 지난 첫 번째 프로젝트에서는 루치오 폰타나와 곽인식의 만남이 이루어진 바 있다.

정상화(Chung Sang-hwa, 鄭相和, 1932~)의 작품은 한국의 단색조 추상 회화를 대표한다고 알려져 있다. 아그네스 마틴의 회화가 작가의 순수한 정신성을 절제된 언어를 통해 은유적으로 표현할 무렵, 한국에서는 아방가르드한 실험미술과 함께 수행성이 강조된 단색조 추상회화가 중요한 움직임을 만들고 있었다. 

생애 오랜 시간을 일본과 프랑스에서 보낸 정상화는 한국 현대미술의 추상회화를 대표하는 작가로서 1960년대 전위적이고 저항적인 미술 실험에 적극 동참했다. 오랜 기간 일본과 프랑스에서 활동하며 현대미술의 최전선에서 벌어지는 움직임을 직접 경험한 그는 1970년대 접어들어 자신의 작업세계가 집약적으로 농축된 백색의 기하학적 추상을 화면 위에 전개해 나갔다.

캔버스 천에 순백의 고령토(Kaolin)를 덮어 바른다. 꾸덕꾸덕해진 캔버스를 가로세로 주름잡듯 접고 꺾는다. 금이 가면 뜯어내고 그 자리를 아크릴 물감으로 메운다. 바르고 말리고 꺾고 접고 뜯고 메우는 과정이 반복의 반복을 거치며 정상화 고유의 평면이 드러난다. (...) 자칫 보면 지극히 단조로운 정상화의 화면에는 뉘앙스를 달리하는 색의 변주가 스며들어 있다. 

이번 전시는 197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정상화가 창작한 정제된 백색 회화를 조명함으로써 그가 도달한 예술적 성취를 아그네스 마틴의 작품과 함께 만나게 하고자 한다. 아그네스 마틴과 정상화의 작품은 솔올미술관에서 오는 8월 25일까지 만나볼 수 있다.